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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 여름, 그 뜨거운 들판 여기저기에 피어나는 흔하디 흔한 꽃이 있다. '계란프라이꽃'이라고도 하는 '개망초'가 그 주인공이다. 뜨거운 햇살에 자글자글 프라이가 된 듯한 꽃모양, 꽃잎이 자그마치 100개는 족히 넘는다.
이 꽃은 민중을 닮을 꽃이다. 흔하디 흔한 꽃, 그 의미는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도심의 보도블럭 사이 혹은 단단해서 뿌리를 내릴 수조차 없을 것 같은 곳에서도 여름이면 어김없이 꽃을 피운다.
온갖 잡풀들 속에서 단연 큰 키로 자라 하늘을 향해 꽃을 연다. 너무 흔해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꽃이지만 자기 안에 들어 있는 온 생명을 피워내기 위해 뜨거운 햇살 아래서 축 처진 상황에서도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이른 봄, 봄나물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면 여느 봄나물들보다 풍성한 싹으로 밥상을 풍성하게 해준다. 맛이야 다른 봄나물에 비해 밋밋하지만 풍성함이야 다른 어떤 봄나물보다 넉넉하다. 배고픈 시절에는 맛보다 풍성함이 더 맛난 것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봄이 깊어지면 이내 이파리가 억새지면서 봄나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린다. 더 이상 사람들이 눈길을 주지 않는 틈을 타서 여기저기에서 무리지어 피어난다. 주로 밭두렁이나 논두렁 같은 곳이 끝나는 지점이 그들의 삶의 터전이며 뒷동산이나 양지바른 풀밭도 그들의 삶의 터전이다. 겨울에도 로제트형으로 바짝 땅에 붙이고 피어난 것들이 있어 어릴 적 그들을 낫이나 칼로 숭덩 베어 제기차기를 하며 놀기도 했던 추억이 있다.
6월이 시작되자마자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스팔트는 지글지글 복사열을 어지러이 올리고 있었고, 풀밭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심에 노출되어 있는 흙, 그 곳에도 어김없이 푸른 생명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러나 무더위에 화들짝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은 단연 개망초였다.
그들은 화사하지 않다. 그래서 그들을 찾아온 손님들을 더욱 화사하게 만들어주는 꽃이다. 주인공이 되지 못해 안달하는 시대에 찾아온 이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마음이 예쁘다. 물론, 그로 인해 자신도 더 아름다워지는 것은 물론이다.
<밀양>이라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보기 전에 밀양을 찾았고, 다음 날 영화관을 찾아 <밀양>을 봤다. 주인공 신애가 밀양으로 내려가는 길의 배경은 초여름인 듯했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얼핏 달개비와 개망초가 보인다. 그렇게 여름날 어디를 바라봐도 흔하게 보이는 꽃이 개망초인 것이다. 시장이나 거리를 화면에 담으면 흔하게 보이는 그 사람들처럼 보이는 꽃이 개망초다.
허영과 탐욕, 나는 그 영화에서 그것을 보았다.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아야 하는 신애는 돈많은 여인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의 허영심은 급기야 돈많은 과부쯤으로 보이게 했고, 탐욕의 노예가 된 학원원장이 아이를 유괴했다. 신앙을 갖게 된 신애는 이제 신앙의 허영심에 빠져든다. 그것은 감옥에서 하나님을 영접하고 평안을 얻었다는 유괴범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본 사람들마다 느낌은 다르겠지만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바로 신애의 심정이라고 말했다. 신애가 가진 신앙의 허영심을 보지 못한 까닭이기도 하지만 극명하게 드러난 유괴범의 신앙의 허영심이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왜 보지 못하는 것일까?
감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그 심중을 다 읽을 수는 없지만 어쩌면 속물 취급을 받는 종찬을 통해 신의 비밀스러운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다. 영화 <밀양>은 피해자의 고통에는 관심도 없는 가해자의 죄만 씻어주는 값싼 속죄의 은총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비밀스러운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그것은 눈에 보여지는 속죄나 용서, 인간의 탐욕과 허영 가운데 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비밀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Secret Sunshine(밀양), 비밀의 햇살인 것이다.
영화 <밀양>은 따로 세트장을 만든 것이 아니라 밀양이라는 도시 그 자체를 세트장으로 사용했다. 출연자들의 대다수도 유명배우가 아닌 무명배우(?)들을 출연시킴으로써 영화의 밀도를 더 깊게 했다.
무명배우, 민중, 개망초. 이 행간에서 나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허영과 탐욕을 생각했다. 허영과 탐욕에 빠져 사는 것보다 더 큰 죄는 값싼 구원의 확신이라는 허영을 가지고 살아갈 뿐만 아니라 자기의 탐욕을 신의 은총의 이름으로 합리화 시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것은 너무 흔하디 흔한 것들이다. 여름 들판에 피어난 개망초처럼 말이다.
뜨거운 햇살에 개망초가 축 늘어졌다. 그러나 이내 해가 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생생해진다. 그렇게 타는 목마름을 겪고 또 겪으면서도 끝내 피어나는 꽃, 그래서 나는 흔하디 흔한 꽃인 개망초가 좋다. 예쁘지도 않고, 때론 징그럽게 많은 것 같으면서도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그 꽃이 좋다. 허영과 탐욕에 빠져 살아가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