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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강, 돌틈에 뿌리를 내리고 활짝 피어난 기린초
해금강, 돌틈에 뿌리를 내리고 활짝 피어난 기린초 ⓒ 김민수
해금강은 고성평야를 끼고 있는 양지마을을 지나 차량으로 십여분 거리에 있었으며 천천히 걸어 삽심분 남짓이면 돌아볼 수 있는, 걷기에도 편안한 동해바다였다. 금강산을 바다에 옮겨 놓은 듯 풍광이 수려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해금강'이다. 언젠가 소금강으로 여행을 가서는 "강은 어디 있는 거지?"했다가 '작은 금강산'이라는 의미로 '소금강'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머쓱했던 일이 생각났다.

여행객들에게 해금강은 오전 한 차례만 출입이 가능하다. 해금강을 둘러본 후에 삼일포를 들르는 것이 대체적인 순서인 듯했다. 주차장에서 해금강을 향해 가는 길에는 찔레꽃이 피어 향긋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고, 붓꽃도 바다를 보고 피어났다. 잘 익은 산딸기도 있길래 두어 개를 따서 몸에 모셨다.

바다가 보인다.
그리고 그 곳에 돌 틈에 뿌리를 내리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기린초가 보인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들이 땅에서 빛나는 듯하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들이 땅에서 빛나는 듯하다. ⓒ 김민수
바위채송화, 돌채송화, 땅채송화, 돌나물, 주걱비름, 기린초는 꽃만 보면 거의 비슷해서 보통 사람들은 그 꽃이 그 꽃인가 보다 할 정도로 닮았다. 구분은 못할지 모르겠지만 "꽃이 뭘 닮았지요?"하면 이구동성으로 "노랑별이요!"할 것이다.

그렇다.
기린초의 꽃은 밤하늘에서 빛나는 별을 닮았다. 밤하늘에 빛나던 별이 그 누군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별똥별이 되어 떨어진 곳에 피어난 꽃이 기린초가 아닐까? 아니면, 그 별똥별과 관련된 사람이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자 그가 걸었던 길, 발자국이 남아 있는 그 곳에 떨어져 피어난 꽃들이 기린초같이 별을 닮은 꽃들이 아닐까?

아이들에게 그 어디에도 없는 기린초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바다를 바라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 김민수
먼 옛날, 꽃이 되고 싶은 별이 있었단다. 그 별이 바라보는 땅에는 갖가지 꽃들이 피어 있었는데 그에게는 그들이 별 같았던 것이지.

"하나님, 나도 별이 되고 싶어요. 땅에서 피어나는 저 꽃 말이에요."
"그래?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과 같은 아픔을 겪어야만 한단다."
"그것이 어떤 것이지요?"
"누군가를 위해서, 누군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너를 버리는 일이지?"

그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단다. 그러나 이내 깨닫게 되었지. 간절한 소원을 간직한 사람들이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것을. 그래서 간절한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그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별똥별이 되어 땅으로 떨어지며 "당신의 소원 들어드릴게요!" 신호를 보내는 것이지. 여름 밤 긴 꼬리를 남기며 땅으로 떨어진 별들은 이 땅에 살아가는 그 누군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한 것이었단다.

그도 결심했어.
그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리고 마침내 어느 여름 밤 한 소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기로 했고, 그는 별똥별이 되어 땅에 떨어졌단다. 그 소녀가 그를 바라보던 그 곳에 떨어져 그는 꽃이 되었지. 그게 기린초야.

해금강 모래밭에 피어난 모래지치
해금강 모래밭에 피어난 모래지치 ⓒ 김민수
기린초와 해금강은 잘 어울렸다. 바다쪽으로 가니 그 언젠가는 큰 바위였을 작은 모래들이 돌들과 어우러져 있고,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 사이사이에 순백의 모래지치가 피어 있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들뿐 아니라 현삼도 있었고, 기린초도 제법 많았다.

'타는 목마름으로 피어나는 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전에 바닷가에서 만난 보랏빛의 반디지치는 사구둑에 피어 있었고, 제법 많은 들풀들과 어우러져 있었기 때문에 '타는 목마름으로 피어나는 꽃'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는데 해금강 모래지치가 피어난 그 곳에는 오직 그만 듬성듬성 피어 있을 뿐이었다.

순백의 아름다움이 각별했던 꽃, 우리 백의민족을 닮았을 것이다.
순백의 아름다움이 각별했던 꽃, 우리 백의민족을 닮았을 것이다. ⓒ 김민수
'타는 목마름으로 피어난 꽃', 그곳에서 그는 피어났다.
왜일까? 이유는 없다. 꽃이기 때문에 피어난 것이다. 꽃은 어느 곳이든지 피어날 수 있으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니까.

때론 꽃을 피우지 못하기도 하지만 자기 안에 들어 있는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 꽃이다.

뜨거운 햇살에 타는 목마름으로 피어난 꽃
뜨거운 햇살에 타는 목마름으로 피어난 꽃 ⓒ 김민수
북한 땅에서 만난 꽃들은 남한 땅에 피어난 꽃들과 다르지 않았다. 분단의 세월 동안 사람들은 달라졌을지언정 그들은 하나였다. 분단의 세월은 그들에게 없었다. 그저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를 피워내며 살아왔을 뿐이다. 그것이 이렇게 소중한 것이구나,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를 피워내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구나 생각하니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지도 못하면서 늘 남의 허물을 들추는 데만 열중하는 우리네 삶이 씁쓸해진다.

자기의 삶에 충실한 사람은 남의 허물을 들춰내 가타부타할 시간이 없다. 자기의 삶 충실하게 살기에도 부족한 삶인데, 그리고 자기를 돌아보면 남의 허물만큼 적은 허물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아닌데 '저 사람이 저만큼 나쁘니까, 내가 더 선량입네'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들꽃은 분단의 세월 동안에도 하나였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이번 여행길은 참으로 행복했다. 머지않아 마음만 먹으면 배낭 메고 금강산이며, 해금강이며 몇 날 며칠 머무르며 그 곳의 신새벽을 맞이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북한에서 만난 우리꽃 마지막회입니다. 6월 초, 그 곳에서 만났지만 사진으로 담지 못해 소개해 드리지 못한 꽃들의 이름은 노랑제비꽃, 금마타리, 금강애기봄맞이, 처녀치마, 금강국수나무 , 돌양지꽃, 찔레꽃, 붓꽃, 현삼, 떼죽나무 등이었습니다. 평화통일이 되어 북녘땅에 피어난 꽃들도 마음껏 담을 수 있는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기린초#해금강#분단#소금강#별똥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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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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