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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시구(詩句)처럼 사람들은 각각 이름으로 불리지 않으면 그 존재 의미가 없다. 이름으로 불릴 때 그의 빛깔과 향기에 맞는 존재 가치를 지니게 된다.
우리 마을 어른들은 본명으로 불리지 않고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여인네들은 다른 시골처럼 출신지를 딴 택호로 불리는데, '산음댁', '구어댁', '원당댁', '한국댁', '수국댁', '의성댁', '성산댁', '토산댁', '내선댁', '기정댁', '양산댁'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출신지역이 이곳에 가까운 지역일 경우에는 그 택호를 사용하지 못할 경우가 있다. 즉 같은 마을에서 먼저 온 선배가 쓰고 있으면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그 예로 우리 땅의 옛주인인 '산음댁'이라 불리는 할머니는 석읍 출신이었건만, 예전에 먼저 시집 온 다른 할머니께서 그 '석읍댁'을 사용하고 있는 바람에 다른 택호를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여자들을 택호로 부르면, 남자들은 택호 뒤에다가 '어른'이나 '양반'을 붙여 부르면 된다. 예를 들어 산음댁의 남편인 할아버지는 '산음 어른'이나 '산음 양반'으로 부르면 그만. 같은 나이의 어른들끼리는 '어이, 산음이!'하고 부르신다.
달내마을에서 택호로 불리지 않는 사람들은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우리와 친하게 지내는 혼자 사시는 아주머니는 특이하게 아저씨 성씨를 따서 그냥 '최씨 아줌마'로, 된장을 만들어 파는 아주머니는 '된장 아줌마'로, 또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아주머니는 '교회 아줌마'로 불린다. 이들은 비교적 젊지만 그래도 환갑이 다 지났다.
마을에서 나를 부르는 호칭은 '정 선생' 혹은 '정 주사'인데, 아내는 남편 직업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사모님'이라 불리나, 여기서는 '새댁'으로 불린다. 새댁이라니? 결혼한 지 25년이 지났고, 사위 볼 때가 다 된(딸이 스물다섯) 나이에 새댁이라니? 이미 아내 친구들 중에는 사위와 며느리 본 집도 있는데 말이다.
아내가 '새댁'으로 불리는데 대한 내 속마음은 두 가지다. 기분으로나마 젊은 아내랑 사니까 나도 젊어지는 것 같아 좋지만, 다른 한편으론 젊은 사람 하나 없는 시골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그래서 솔직한 바람은 아내에게 '새댁'이란 호칭은 너무 심한 것 같고, 우리 집에 백 년 넘은 큰 감나무가 있으니까 '감나무댁'으로 불러줬으면 어떨까 한다. 그러나 더 큰 바람은 진짜 '새댁'이 우리 달내마을로 오는 거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의 울음소리, 웃음소리가 끊어진 이 마을에 다시 들리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