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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홈페이지
KBS1 TV의 저녁 일일드라마 <하늘만큼 땅 만큼>을 보다 보면 요 몇 년 사이 세상 참 많이 변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몇 년 전에만 해도 9시 뉴스 전 30분 동안 펼쳐지는 이 시간대 드라마를 볼 때면 저건 아닌데 싶을 때가 많았다.

그것은 주로 며느리와 시댁과의 관계를 다룰 때나 남편과 아내간의 불평등한 말투 등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할 경우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두루두루 흠잡을 데 없이 현실을 반영해주고 있다고나 할까.

아니, 현실반영을 넘어서 너무 심한 것 아냐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앞질러 가는 대목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안타까운 대목도 있었다. <하늘만큼 땅 만큼>을 예로 들자면, 극중 '상현 부부'는 상현의 처가살이가 부부싸움과 장모와 아내 싸움으로 이어져 이혼을 하였다.

서로가 싫어서 이혼을 한 게 아니라 주변 환경 때문에 그리했던지라 그들은 이혼 후에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졌고 가끔 만나기도 하였다. 그런데 한동안 못 보다가 간만에 이 드라마를 보니 아니 이 헤어진 부부 아닌 부부가 그 새 아기를 가진 것이 아닌가.

싫어하던 사이도 아니었으니 아기를 가졌으면 당연 재결합이 수순일터.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당사자들인 상현과 은주 그리고 상현 모, 은주 모의 입장이 다 달랐다. 그들의 입장을 요약해 보자면 대강 다음과 같다.

상현: 은주씨, 우리 원룸 얻어서 우리끼리 독립해서 우리 아기 우리 둘이 키워요. 내가 도와줄게요. 힘들더라도 우리가 키우면서 살아요(정 힘들면 약간의 주변 도움을 받으면서).

은주: 아니 입덧이 이렇게 심한데 그리고 이 입덧이 언제 가라앉을지도 모르는데 그 좁은 집에서 어떻게 살아요(엄마 집을 떠나기 싫어요, 나 혼자 애 키울 자신도 없어요).

상현 모: 내 (금쪽같은) 아들을 두 번 다시 처가살이라는 불행에 빠지게 할 수 없어요. 불을 보듯 첫 번째의 상황이 재현될 것이 뻔해요. 상현이 말대로 원룸에서 시작한다면 말리지 않겠어요(그리고 내 삶의 지혜로 고기도, 고기 낚는 법도 여러모로 가르쳐 독립된 삶을 살게 해 주겠어요).

은주 모: 저는 딸들을 아주 귀하게 키웠어요. 그저 귀하게 키우면 나가서도 귀함을 받을 줄 알았는데…. 제 잘못이 커요. 입덧이 가라앉을 때까지만 제가 데리고 있고 또 이제부터라도 이것저것 살림살이를 가르칠까 하는데…(아니, 예전의 당당함은 어디로 가고 내가 왜 이리 작아지죠?ㅠㅠ).


그러니 해결책은? 각자의 입장이 팽팽한데 작가는 어떤 식으로 풀어갈까? 물론 예고편을 보니 상현이 아기와 아내를 위하여 잠시 자신의 어머니에게 등을 돌리고(처가로 들어가면 다시는 얼굴 안 봐, 인연 끊어!) 처가로 들어가면서 갈등을 증폭시킬 것이라 운을 띄웠다.

엄마의 그늘이 아무리 좋아도 결혼했으면 떠날 준비를...

난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제일로 답답한 게 극중 은주였다. 아니 똑똑하고 자기 주장 분명한 사람이 결혼을 했으면 내 살림은 내가 살아야지 그걸 왜 그리 무서워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회사생활이 힘들기 때문에 집에 와서는 정돈된 환경에서 그냥 푹 쉬고 싶은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아무리 돼지 우리 같아도 내 집에 누워야, 나만의 공간, 둘만의 공간에 누워야 편한 게 정상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의외로 극중 은주처럼 친정엄마의 편함을 뿌리치기 싫어하는 여성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 첫째 이유가 육아 때문이기도 한데 가만히 보면 육아만이 아니라 독립 되어야 할 부분도 기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리고 친정엄마 또한 자식이 한둘뿐이니 그 자식이 삼십일 때는 물론 사십이 되어도 아직도 품안의 어린 양인 양 걱정하고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듯했다. 말하자면 두 쪽 다 전혀 분리(독립)할 생각들을 하고 있지 않은 듯했다.

극중 은주의 경우는 시댁이 구체적인 스트레스를 주지 않아도 시댁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과중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듯했다. 그런가 하면 그와 반대로 엄마집 밖은 두려워해도 너무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극중 은주가 시어머니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걸까 ?

시어머니께: 어머니, 원룸은 아무래도 좁은 것 같아요. 제가 저축한 돈도 좀 있고 하니 좀 큰 데로 얻으면 안 될까요? 그리고 저도 결혼했으니만큼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제가 알아서 해보려 노력할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우선은 못하더라도 차차 나아질 거예요. 믿어주세요.

친정엄마께: 엄마 그동안 나를 이렇게 공주로 키워준 것은 고마워요. 그렇지만 나도 이제 독립을 해야겠죠? 엄마가 알아서 도우미 아줌마 불러준다고 했는데 필요하면 제가 알아서 부를 게요. 그래도 엄마가 도움을 주시고 싶다면 전세금(?) 좀 대 주시던지. 물론 시어머니한테는 내가 저축(?)한 것이라고 하고 말이에요. 후후


사실, 시어머니로부터의 독립이 어렵지 친정엄마로부터의 독립은 언로가 트여 있기에 하기로 들자면 무척 쉽다. 시어머니의 경우는 혹 호의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독립하는데 경우에 따라 시간이 좀 걸리기도 한다. 그러나 친정엄마의 경우 말 돌릴 것 없이 '화끈하게' 얘기하면 만사형통이거늘. 당사자들이 그럴 의사가 없으니 답답할 노릇.

젊은 부부 둘 다 독립의지가 없고 '힘센' 장모도 딸을 내 놓을 생각이 없다면 처가살이도 일시적으로는 괜찮을 수가 있다. 그러나 그 관계가 영원이 좋게 지속되기는 어렵다. 언젠가는 파토가 나게 된다. 사위에게 독립의지가 생기든가, 장모가 딸 내외가 지긋지긋해지든가.

또, 육아 때문에 친정과 가까워야 된다면 지척에 살면서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맡기듯이 되도록 시간을 지키면서 불필요한 일로 친정엄마의 기운을 빼지 말아야 될 텐데 현실들은 그렇지가 못했다.

별 권력 없이 몸뿐인 친정엄마는 육아에다 살림까지 도맡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몇 년 봉사하고 나면 삭신이 녹아나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함께 한 일상이 주는 피로에 사이도 멀어지는 것 같았다. 단물 쓴물 다 빼먹은 상태에서 사이 멀어져 봐야 불쌍한 것은 노인네뿐.

남자고 여자고 컸으면 독립 좀 하자

나에게 국수 한 그릇 얻어먹은 이웃의 서른을 앞둔 한 여성이 말하기를.

"어머, 국수는 어떻게 삶아요?"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예요? 엉?"
"한 번도 삶아본 적이 없어서… 먹기는 해도. 호호(긁적긁적)."

특별히 공주로 크지 않아도 요새 이런 여성 많다. 물론 내가 아는 이 여성도 사회생활은 똑 소리 나게 한다. 그만하면 다달이 월급도 짭짤하기에 어디 원룸이라도 얻어서 남자친구, 여자친구들도 좀 '끌어들이며' 재미있게 살아보라 해 보는데….

"혼자 산다는 게 너무 무서워요. 쓰레기 분리수거해 버리는 것도, 빨래하는 것도, 매끼마다 밥은 또 어떻게 해 먹어야 할지. 늦잠자면 또 아침엔 누가 깨워주고…. 그리고 가족들이 지겹기도 하지만 가족들과 떨어지긴 싫어요. 생각만 해도 외로워요. 생활비 이중으로 드는 것도 싫고."

내 참. 때문에 오늘(21일) 아침 신문에서 본 소설가 정이현씨의 말이 새삼 와닿았다.

'어릴 땐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 저절로 되는 게 어른인 줄로만 알았는데, 공무원 되기만 어려운 세상인 줄 알았는데, 어른 되는 것도 거저 먹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보다.'

맞는 말이다. 덩치만 크고 나이만 먹는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게 아니다. 철이 들어야 되는데 세상이 갈수록 철을 늦게 들게 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그런 시류에 자신을 맡기지 말고 젊은 비혼들, 일찍 철 좀 들었으면 좋겠다. 물질적으로가 힘들다면 정신적으로라도 먼저 독립하였으면 좋겠다.

또, 독립적인 생활을 할 물질적 능력은 되는데 독립적인 생활을 할 '일상의 기술'이 부족하여 독립을 못하고 쩔쩔 맨다면 라면은 기본일테니 우선 국수 삶는 법부터라도 배웠으면. 그리고 지금 오십대 부모라면 자신의 자녀들은 얼마만큼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지 한 번 점검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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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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