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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인정전
창덕궁 인정전 ⓒ 이정근
강무를 실시하여 무신(武臣)들의 군기를 다 잡은 태종 이방원이 문신(文臣)이라고 느슨하게 놓아줄 리 없었다. 종3품 이하 문신들에게 친히 시험을 실시했다. 과거에 급제한 이후 공부를 놓아버린 관료들에게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재교육시키겠다는 의도다.

좌정승 하륜, 대제학 권근을 독권관(讀券官)으로 하고 이조참의 맹사성, 지신사 황희를 대독관(對讀官)으로 한 친시(親試)에 108명이 응시하여 광연루(廣延樓)에서 시험이 치러졌다.

'사문을 연다(闢四門)'는 논제와 '안남을 평정한 것을 하례한다(賀平安南)'는 표제가 주어졌다. 국내 문제와 국제 문제다. 안남이라는 말이 말해주듯이 명나라는 안남(베트남)을 평정한 직후였다. 시험장에 아침과 저녁밥을 제공하고 주과를 내려주었다. 시험이 끝나자 태종 이방원은 합격자 명단을 친히 인정전에 붙였다.

예문관직제학 변계량, 이조정랑 조말생, 성균학정 박서생이 을과(乙科) 1등에 합격했다. 권지성균학유 김구경, 예조정랑 박제, 병조정랑 유사눌, 예문검열 정초, 성균직강 황현, 성균사예 윤회종, 전 사헌장령 이지강이 을과(乙科) 2등에 합격하였다.

변계량은 예조참의, 조말생은 전농부정 박서생은 우정언, 김구경은 봉상주부, 박제는 성균사예, 유사눌은 사헌장령, 정초는 좌정언, 황현은 경승부소윤, 윤회종은 성균사성, 이지강은 예문관 직제학에 승진하는 영예를 안았고 홍패(紅牌)를 받았다. 태종시대의 신 엘리트 출현이다. 변계량은 이후 권근에 이은 외교가의 명문장가로 성가를 드높였다.

빠르다 생각할 때 늦을 수도 있습니다

문무백관을 시험에 들게 하며 국정을 장악한 태종 이방원이 하륜을 조용히 불렀다.

"명나라 진하사(進賀使)에 누구를 보내면 좋겠소?"
"세자 저하를 보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너무 어리지 않소?"
"세자 저하께서도 이제 혼례를 올리셨습니다. 일찍이 명나라에 다녀와 견문과 학문을 넓히시는 것이 이로울 듯 싶습니다."
"그것은 알고 있소만 너무 빠르지 않소?"

태종 이방원의 눈동자가 섬광처럼 빛났다. 그 순간 하륜의 머리를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빠르다 생각할 때 늦을 수도 있습니다."
"으음, 경의 말에도 일리가 있구려."

태종 이방원은 괴로운 한숨을 내쉬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신이 먼저 사직하도록 하겠습니다."

왕심(王心)을 읽어 내린 하륜이 길을 비켜선 것이다. 걸림돌을 스스로 치워놨으니 치고 나가라는 뜻이다. 눈빛 하나로 왕심을 읽어내는 하륜은 역시 천하의 하륜이었다. 정도전이 주군을 끌고 가는 성격이라면 하륜은 밀고 가는 체질이다.

"하하하, 역시 하공이구려, 내 일찍이 한나라에 장랑이 있었고 송나라에 치규가 있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아직 조선에 그러한 인물은 없지를 않소?"
"황공무지로소이다."

태종 이방원은 하륜과 조영무를 면직시키고 그 자리에 성석린을 좌정승, 이무를 우정승에 임명하고 총사령탑에 해당하는 영의정에 의안대군(義安大君) 이화를 임명했다. 이들을 받쳐주는 자리에 성석인을 예문관대제학, 박신을 참지의정부사, 권진을 사헌부대사헌, 조원을 우부대언, 이승간을 동부대언, 최함을 좌사간대부에 임명했다. 진용이 갖춰진 셈이다.

하륜이 사임한 후 민무구, 민무질, 신극례의 죄를 청하는 상소가 올라왔다. 새로 취임한 영의정 이화가 올린 상소였다. 하륜이 사직했지만 보이지 않는 손은 움직이고 있었다.
#이방원#하륜#장자방#장랑#치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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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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