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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시대'라고 일컫는 요즘 사회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여러 산업, 기술 분야에 걸쳐서 '분업화'와 '전문화'를 이 시대의 특징으로 이야기한다. 확실히, 우리는 자신의 식량을 농사 지어 마련하지 않고, 필요한 물건들을 일일이 수공업으로 만들어서 쓰지 않는다.

생활의 필수품으로 자리를 잡은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만들어 쓰기보다는 다른 전문가들이 만들어 놓은 제품을 구입한다. 그러한 컴퓨터나 휴대폰의 부품들 또한 한 사람이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 제품을 구성하는 각 부품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만든다. 그리고 이제는 그 분야의 지식을 가지지 않고서는 필요한 제품을 만들 수도 없을 뿐더러, 만들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우리는 '분업화'를 이미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최근의 특징이라고 일컬어지는 '분업화'는 예전부터 존재해 왔었다. <로마인 이야기>의 고대 로마인들에게 분업화는 생활에 스며있는 것이었다. <로마인 이야기> 제 6권에 나오는 아우구스투스의 이야기에서 아우구스투스는 지휘관으로써의 재능이 뛰어났던 카이사르만큼 지휘력이 뛰어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연설에도 재능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군대의 지휘는 아그리파에게 홍보분야는 마이케나스에게 맡기었고, 그 결과는 자기 자신에게 부족한 분야는 다른 사람이 보충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아우구스투스라는 특정 인물만을 살펴보지 않아도 로마인들은 다른 민족이 잘하는 분야는 그 민족에게 맡기고는 했다.

로마는 지중해를 제패할 때에도 그 지역 민족의 문화나 풍속, 종교를 말살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 고유의 문화를 그대로 보존하는 쪽을 택했다. 이 책의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는 이러한 로마인의 특성이 로마가 그들의 제국을 오랫동안 이끌어 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로마의 특성을 분업화라고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우리 사회도 아마 여러 세월을 거치면서 자신의 잘 하지 못하는 분야는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는 편이 더 좋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아닐까.

분업화와 전문화라는 것은 그 분야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만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배타적이 될 수 있다는 단점을 가진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는 것이 현대 사회의 중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로마인들의 개방성과 협력성에 대해서

과거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이라는 말이 있는데 로마시대의 모습에서 이러한 점을 보완하는 그들의 개방성이 요즘 사회에서 분업화와 전문화로 인해 느끼게 되는 소외감에 대한 해결책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로마인들은 자신이 잘하는 분야가 아닌 분야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각 민족의 자치는 그들이 하도록 최대한 맡기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그 지역과 로마가 분리되는 형태가 되지는 않았으며 로마가 재패한 지역의 반기나 독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로마는 정복한 지역에까지도 로마가도를 건설한다. 로마의 도로는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물자를 나르는데도 편리하게끔 되었다. 수도 로마만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 반도 곳곳으로 뻗어나가는 로마가도는 로마인의 개방성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그 결과로 인해서 로마는 계속된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러한 개방으로 인해서 그들이 재패한 지역에 '로마화'를 더 쉽게 진행할 수 있었다. 오히려 자기들의 나라를 개방함으로써 다른 지역에 편리함을 줄 뿐 아니라 자신들도 국가 방어라는 이익을 얻게 된 것이다.

재패한 지역과의 마찰을 줄일 수 있었던 이유는 클리엔테스-파트로네스의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단순히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관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익을 돕고 도와주는 이 관계는 로마의 초기 시절부터 로마를 뒷받침해준 큰 힘이었다.

한니발이 로마에 침입해 왔을 때나 종종 로마에 불만을 가진 다른 나라에서(로마가 주는 자유는 다른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진정한 자유가 아닐 수도 있다) 전쟁을 일으켰을 때에도 로마의 클리엔테스-파트로네스 관계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클리엔테스는 파트로네스의 안전을 보장해 주고 파트로네스는 클리엔테스를 돕는 이러한 밀접한 관계를 현대 사회에서도 가질 수 있다면 현대인들의 소외감은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부상조하는 좋은 문화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최근 들어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화려한 싱글족'은 혼자서도 여가를 잘 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실제로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음악감상이나 영화감상, 또 혼자서 갈 수 있는 여행 패키지 등이 생겨나서 겉으로 보면 최근 우리 사회는 혼자서도 충분히 즐기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정말로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혼자서 잘 해나갈 수 있다고 해도 당장 우리가 입는 옷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먹고 있는 음식도 직접 농사지은 것이 아니다.

그 외에도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의 생활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는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정말로 먼 산골에서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고립된 채로 혼자서 사는 사람뿐일 것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더 이상 혼자만 잘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정보화 시대'에서 우리는 자신의 정보를 개방하고 또 다른 사람의 정보도 참고해야 한다. 서로간의 네트워크는 중요한 것이 되었다. 20세기 전 로마인들이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로마인 이야기> 제 2권에 나오는 한니발 전쟁에 관해 작가가 서술하는 이야기 중에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와 카르타고의 한니발의 인간관계의 부분이다. 시오노 나나미도 말하고 있듯이 한니발은 그 자신 외에 군대를 지휘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또 뭐든지 혼자서 처리했다. 한니발은 천재라고도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스키피오가 한니발과 달랐던 점은 곁에 지휘를 같이 하는 동료가 있었던 점일 것이다. 스키피오가 누마디아의 왕자와 맺은 관계는 나중에 그의 힘이 된다. 이처럼 사람사이의 네트워크는 중요하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좋은 관계는 단순히 나 자신이나 남에게만 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변화해 가는 세상에 대응하는 것

로마는 초기에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쳐서 공화정 체제를 이룩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앞을 내다보는 천재 카이사르를 통과점으로 제정으로 나아간다. 시오노 나나미의 말에 따르면 어떤 사람들은 로마가 제정으로 변화한 후부터의 로마를 전보다 낮게 평가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하는 그에게 나도 동의한다. 왜냐하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지 않는 것이란 극히 드물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지만 사람은 그 자리에만 머물러서는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카이사르에 대해 다루는 <로마인 이야기> 제 4, 5권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알렉산드로 대왕이나 한니발이 생각한 전법은 체계화 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누가 시행해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지만 카이사르는 그때, 그때 마다 대응해 나가는 방식으로 싸웠기 때문에 그가 한 전투를 표준으로 삼지는 않는다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전투뿐만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모두 똑같은 상황이란 없다. 공화정이라는 체제가 아무리 훌륭해도 상황에 따라서 훌륭하지 않은 체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점을 간파한 카이사르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천재로 평가 받는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속담이 있다. 정보화 시대의 세상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고 영상 매체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도 빠르게 이동한다. 매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모두 천재가 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천천히라도 그때마다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변화해 나가려는 노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최근 우리들은 다수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거리가 멀지도 모른다. 또, 자신만이 잘한다고 생각하거나 남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초기 로마의 시민들과 집정관들은 자신들의 가족이 살고 있는 국가를 위해 일하고 노력했다.

로마인들이 '팍스 로마나'를 확립하고 지중해를 재패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자신의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도 로마인에게서 배워야 할 중요한 점이다. 역사는 말하고 있다. 다른 이들과 더불어 협력해 나가는 것이 남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로마시민이 그러했듯이 내가 맡고 있는 분야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지며 다른 사람들과도 개방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서로 협력해 나아가는 것, 이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한다.

덧붙이는 글 | 로마인이야기 글쓰기 대회 응모작입니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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