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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리아누스 별장
하드리아누스 별장 ⓒ 한길사
로마의 상징인 트레비분수가 말라간다는 소식이 들린다. 로마제국 때 건설되어 2천년 가까이 물을 공급하던 지하수로 '처녀의 샘'이 주변공사로 막혔기 때문이다.

지하수로의 단절은 트레비 분수뿐 아니라 로마 중심부의 보르게세 공원과 콜로라 광장, 총리 관저와 판테온의 수도 공급에까지 차질을 미쳐 이것이 로마 전체를 이어주는 수맥의 역할을 해왔음을 뒤늦게 입증했다.
- '로마의 명소 트레비 분수가 말라간다', 뉴시스 6/13일자 기사 인용


이음새 하나가 천년을 결정한다는 한 명인의 말이 생각난다. 갑작스레 세상의 빛을 보게된 이 지하수로를 통해 로마인들이 제국의 진정한 장인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로마 전체를 물로 이었던 수로처럼 로마인의 정신 또한 로마제국을 단단히 잇고 있었다. 로마제국은 지중해 세계의 통합을 이뤄냈고 몰락해서는 지중해를 넘어 전 세계로 그 망을 뻗혀 왔다. 제국 전역에 남아있는 가도와 수로에서 지금도 이어져 내려오는 로마정신의 흔적을 발견한다. 유적의 잔해보다는 유적에 남아있는 정신의 잔해로 한때 그곳을 풍미했던 로마를 배운다.

로마제국은 인간중심과 합리성의 수원(水源)이다. 로마제국 멸망 후 중세가 암흑시대라 불린 것은 이 아름다운 정신적 유산이 빛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종교든 단 하나를 인간 위에 두기에 인간은 너무도 많은 가능성을 지녔음을 우리는 로마제국을 통해 이미 보았다. 르네상스가 복원하려 했던 것은 바로 맨 정신의 인간이었다. 맨 정신의 인간만이 사물을 바로 볼 수 있는 균형감각을 가진다. 카르타고나 그리스인과 비교해 학문과 해상기술 등에 특출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중이 분별력을 갖기 힘들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경우에 예외가 되지도 않았던 로마시민은, 다만 현실에 바탕을 두고 인간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정신을 활짝 열어두었다.

라인강변에 게르마니쿠스 신화의 영향력이 늦게까지 남아 있었던 것처럼, 이 극동의 '변방'에서도 한동안 로마인 신화가 지속될 듯하다. 우상에 얽매이는 것은 위에서 그토록 강조한 '맨 정신'에 어긋나지만, 우리와 다를바 없는 인간과 그 집단이 앞선 시대에 이룩해낸 영광은 깨어나기에는 너무 달콤한 꿈이 아닌가 한다. <로마인 이야기>의 한국적 변용은 한낮에 꿀 수 있는 꿈은 아니다. 한여름밤의 꿈 속에서나 보게 될까. 다만 <삼국지>가 전부인 줄 알았을 때도 <삼한지>의 등장은 아무도 생각치 못한 사건이었다. <로마인이야기>가 <한국인이야기>가 되는 시작도 한낱 여름밤의 꿈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로마인 이야기> 독후감 응모작입니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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