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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오바상(아줌마) 시민기자 노리코씨와 한국 아줌마 시민기자들
ⓒ 김혜원
제3회 세계시민기자포럼 공식일정 하루 전, 참가자들을 위한 환영 리셉션이 열린 서울 프레지던트호텔 19층. 연회장으로 들어오는 각국 참가자들 사이에서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지난해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렸던 '2006 한일시민 친구만들기'에서 만나 아줌마로서, 시민기자로서 우정을 나누었던 일본인 시민기자 노리코씨가 이번 포럼에 참가한 것이다. 우린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단번에 얼싸안고 반가움을 표했다.

"노리코상, 반가워요.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혜원씨, 반갑습니다. 만나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보고 싶었어요."


어눌하지만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한 듯 노리코씨의 한국말 실력은 예전보다 훨씬 좋아져 다른 한국인 시민기자들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일본 아줌마들 사이에 일고 있다는 한류의 원조격인 그녀는 일본에서 열렸던 권상우 팬사인회의 티켓 값이 지나치게 비싸게 책정된 것 아니냐는 비판 기사를 쓴 기자로도 유명하다.

그녀에게 요즘엔 어떤 한국 배우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니 영화 <왕의 남자>에 나왔던 이준기란다. 그녀가 좋아한다는 이준기와 에릭은 평소에 나도 좋아하는 연예인들이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같다는 이유만으로도 두 나라 아줌마는 마냥 즐거웠다.

공식 리셉션이 끝난 후 한국과 일본의 시민기자는 시청 근처의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좀 더 친밀한 시간을 나누었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시민기자들에게 보여준 극진한 우정에 많은 감동을 했던 터라 우리의 뒤풀이는 더욱 애틋했다.

그 자리에서 노리코씨는 그동안 이메일로 우정을 나누고 있던 박순옥 기자는 물론 일본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몇몇 시민기자를 위해 준비했다며 메모지나 손수건 같은 선물을 내놓아 또 한번 한국 시민기자들을 감동시켰다.

나 역시 물색 좋은 갑사 위에 작은 전통 문양을 수놓은 복주머니를 선물로 준비했다. 우리의 전통처럼 복을 불러오고 부자가 되라는 뜻으로 신권 천원짜리도 하나 넣었다.

▲ 오마이뉴스 사무실을 견학한 노리코씨
ⓒ 김혜원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노리코씨. 그녀에게 한국에 와서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찜질방에 가보는 거란다.

"찌므지르반(찜질방) 가고 시퍼요. 마사지? 목욕? 이렇게 하는 거 뭐에요? 그거 하고 싶어요."

한손으로 다른 팔뚝을 문지르는 시늉을 하면서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그녀. 목욕탕에서 때를 밀고 싶다는 뜻이다. 우리는 거의 포복절도하듯 웃고 말았다. 목욕 문화가 한국보다 발달했다는 일본에 사는 일본 아줌마가 한국에 와서 가장 해보고 싶은 경험이 찜질방에서 땀 흘리고 목욕탕에서 때 미는 것이라니….

사실 그녀와 나는 잠깐 동안 주최 측 몰래 포럼 시간을 빼먹고 찜질방에 다녀올 작전을 짜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 도망 나와 PC방이나 영화관에서 놀자는 전략을 짜는 학생들 마음이 그랬을까? 은밀히 작전을 짜는 것만으로도 우린 무척 즐거웠다.

하지만 공식 일정을 빼먹고 찜질방에 가는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녀나 나나 그럴 만한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럼 마지막 날 아침 노리코씨는 또 한 번 나를 놀래 주었다. 찜질방 계획이 무산되어 아쉽지만 언제든 한국에 다시 오면 그땐 꼭 함께 찜질방 체험을 하게 해주겠다고 아쉬운 마음을 전하는 나에게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조그만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다녀왔어요. 어제 저녁에 혼자, 택시로 갔어요."
"엥? 정말요?"
"때 밀었어요. 아팠지만 좋았어요. <거침없이 하이킥>도 봤어요."
"우하하하. 정말 대단해요. 오바상 스고이데스요. 일본에 가면 찜질방 체험기를 기사로 쓰세요."

정말 그녀가 내게 보여준 작은 수첩에는 박혜미, 정준하, 이순재 등 <거침없이 하이킥>에 등장하는 연기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찜질방에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 연기자들의 이름을 물어서 적어 왔단다. 소극적이고 소심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녀의 어느 구석에 그런 열정이 숨겨져 있을까?

▲ 아쉬움이 가득한 폐막 만찬장에서
ⓒ 김혜원
지난해 11월 한국인 시민기자들도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도쿄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때 우리는 호기심과 도전정신으로 단단히 무장한 뉴스게릴라였다. 한국에 온 그녀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은 뉴스게릴라였기에 그 모든 것들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한국의 집'에서 열린 마지막 날 만찬에서 우리는 2박3일의 짧은 일정에서 못다한 수다를 나누었다. 짧은 영어와 더 짧은 일본어, 필담은 물론 몸짓과 손짓, 발짓까지 섞어가며 유감없이 수다를 떨었지만 헤어짐의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작별을 해야 했다.

"혜원씨, 기사 보내주세요. 자동번역기로 번역해서 읽어볼게요.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도 보내주세요. 잘 지내세요."
"한국에 오면 연락하세요. 그땐 정말 편하게 서울거리를 돌아다녀보자구요. 저도 일본에 갈 일이 있으면 전화할게요.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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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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