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택시운전기사가 글을 써서 책을 낸다면?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인세가 택시기사의 수입보다 더 짭짤하다면? 무척이나 힘들고 고달프다는 택시기사 일도 조금이나마 덜 고생스럽지 않을까?

택시기사는 사회 곳곳을 다니며 여러 풍경을 접하고 다양한 사람과 만나는 직업인 만큼 이러한 것들은 글의 좋은 소재가 될 것이다. 손님은 모두 취재대상일 터이니 친절과 봉사의 마음은 저절로 우러날 것이다. 직업에 대한 자긍심도 많이 생겨 날 것이다.

생활글

▲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표지
ⓒ 출판사<보리>
얼마 전에 버스기사가 책을 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책이름은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다. 저자인 안건모씨가 20여 년 동안 버스 운전사로 생활하며 쓴 일터 이야기를 모은 수필집이다.

저자는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운전사의 고달픈 애환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시내버스 운전사가 난폭하게 운전을 하는 이유, 시내버스 파업에 대한 비밀, 운전사가 손님이 내는 요금을 회사 몰래 슬쩍 하게 된 배경 등도 이야기하고 버스를 운전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훈훈한 정도 독자들에게 전해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 책을 접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은 자기의 시선 또는 무관심에서 벗어나 버스 운전기사를 다시 보게끔 되었다는 점이다. 버스기사들이 왜 그렇게 손님을 무례하게 대하게 되었는지, 사고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난폭하게 운행하는지 그 숨은 배경과 구조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불친절과 난폭운전 등으로만 알려져 있던 버스기사에게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나름대로의 고충과 애환이 있다는 것을 많은 이가 알게 됨으로써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생활글'은 이런 점이 좋다.

옛날 중국 한나라 때에는 임금의 정사를 돕기 위하여 마을이나 길거리에 떠도는 이야기를 적어 올리는 패관(稗官)이라는 관직이 있었다. 이 뜻이 발전하여 이야기를 짓는 사람을 패관이라고 일컬었는데 요즘 '생활글'을 쓰는 사람은 그들의 글이 여론수렴의 역할을 하므로 현대판 패관인 셈이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글은 전문가의 몫이었다. 오직 전문가만이 글을 쓸 수 있는 능력과 지면을 가지고 있었다. 더우기 옛날에는 책이 워낙 귀해 접하는 것조차 일부 특권 계층만이 가능했다. 그러다 금속활자가 발명돼 책이 양산됨으로써 비로소 일반인이 책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

이제는 다르다. 매체가 무척이나 많아지고 다양화되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특히 현장에서 직접 일하는 사람들의 글이 생명력을 얻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글은 살아있다. 이런 글이 수없이 나와 일반인에게 생생하게 전달되야만 이웃 간, 계층 간에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세상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평양프로젝트>

▲ <평양프로젝트>의 표지
ⓒ 창비
이런 글이 모인 대표적인 매체가 <오마이뉴스>다. <오마이뉴스>의 글은 살아 숨쉰다. 재미난 글들이 날마다 쏟아지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재미있게 보았던 것 중 하나가 오영진씨가 연재한 만화 <신북한기행>이다. 저자가 의도하든, 아니든 이 만화는 '생활글'의 수준을 넘어 남북한이 화해하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제공한다. 이것이 책이 되어 나왔다. 책이름은 <평양프로젝트> '얼렁뚱땅 오공식의 만화 북한기행' 이다.

저자인 오영진씨는 한전 직원이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 건설 업무를 위해 오랫동안 북한에 머무르면서 각종 자료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만화를 그렸다고 한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글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 뺨치는 실력이다.

만화의 내용은 남한 작가인 '오공식'이 북남교류협력 사업으로 평양의 협력단에 파견 나가 취재활동을 벌이는 이야기다. 자본주의 물이 충분히 베인 오공식의 상대역으로는 북남교류협력단 생활·문화 분과의 총책임자인 조동만, 조동만 지도원동지의 부하직원으로 당성이 충실한 인물 김철수, 중학교 교원으로 북·남 교류 협력 사업을 위해 협력단에 파견 나온 인물 리순옥이다. 작가는 이들을 중심으로 북한사람들의 모습과 생활을 자본주의와 대비하여 실감나게 묘사한다.

ⓒ 창비
북한을 다녀 온 사람들은 보통 두 번 놀란다고 한다. 한 번은 우리와 너무 같아서 놀라고, 또 한 번은 너무 달라서 놀란다는 것이다. 남북한은 언어부터 풍속까지 너무나 같으면서 한편으로는 너무나 다르다. 여기에 갈등이 있다. 저자는 이 '놀람'을 남북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상식의 눈으로 해석하며 '틀리다와 다르다'의 차이를 말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다르다와 틀리다'는 엄연히 다르다.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함께 산다는 것은 다르다는 것 때문에 적대시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차이를 인정하며 사는 것이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화해의 시작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차이를 존중하는 것, 그것이 공존의 시작이다. 문화의 발전이란 이질적인 요소의 결합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시기에 남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어 본다는 것은 남북통일을 위해서, 동질성 회복을 위해서 필요한 예방주사를 미리 맞는다는 의미와 같기에 모두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안건모 지음, 보리(2006)


#오영진#안건모#평양프로젝트#버스기사#북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