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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먹기 위해 산다. 살기 위해 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그게 무슨 말이냐고 펄쩍 뛸지 모른다. 삶의 동기를 시답지 않게 생각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먹음으로 해서 비로소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 생활의 대부분은 먹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들이다.

생존문제와 직접 관계가 없어 보이는 차원 높은(?) 행위들도 사실은 먹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먹음으로써 가능한 모든 행위들을 먹기 위해 하는 짓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단식마저도 먹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뭘 먹느냐가 아니라 어떤 것을 먹느냐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존경하는 스님이 한 분 계신다.

제를 올릴 때나 법회를 할 때 제상 위에는 다리가 부러지게 음식들이 놓인다. 스님은 지레 선수를 치신다.

"이봐 휴강~. 이거 유기농산물 아니야. 시장에서 사 왔어. 괜찮아. 다 정성이지 뭐. 농약 좀 묻어 있으면 어때. 다 농약치고 농사짓는데 그 농민들 꺼도 팔아 줘야지" 하신다. 휴강은 내 법명이다.

나도 그런다. 괜찮다고. 정성이 지극하면 사약인들 어찌 이 한 몸 해치랴 싶기 때문이다. 이 스님의 정성과 기도의 간절함을 알기에 추호의 의심도 없이 그 말에 동의한다.

잘 아는 치과의사가 있다. 푸른치과 회원이면서 건치(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활동을 한다. 수돗물 불소화에 앞장서 있기도 하다. 그 분도 그런다. "수많은 도시 빈민들이 제대로 된 따뜻한 밥상 한번 차리기가 힘든 처지에서 그 비싼 유기농산물을 어떻게 사먹냐"고. 유기농제품에 대해 비판적이다.

좀 다른 예가 있다.

내가 회원으로 있는 정농회에 몇 년 사이에 회원들이 많이 들어왔다. 그들의 실망스런 넉두리는 "유기농을 했는데 제대로 팔리지가 않아서 결국 일반시세로 시장에 내다 팔았다"는 것이다.

화학농 보다 유기농이 요즘은 돈이 된다고 해서 너도 나도 시작하는 요즘 유기농 농민들 생각의 출발점이 대개 이렇다고 보면 된다. 이들에게는 유기농이나 화학농이나 돈 벌이 수단이라는 데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런 태도들에 대한 준비된 답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생협이나 유기농 생산자 단체에서 나오는 자료에는 한결같은 주장들이 있다. 생명운동과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동의하는 주장이다.

이른바 '교역외적 가치'라든가 '농업의 다원적 가치'에 관한 것이다. 시장가격만으로 그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 산업이 농업이라는 것이다. 농산물은 그 결과물이고 유기농산물의 특별한 값어치는 거기에서 나온다.

농민이 화학농을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저지르는 살생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저만 살기위해 뭇 생명을 죽이고서 밥상에 오른 이 음식물을 어찌 싸다는 이유로 환영 할 것이며 화학성분상의 유해성으로만 비판할 것인가.

농촌공동체의 붕괴와 농민들의 삭막해진 정서는 화학농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유기농을 하면 대부분 되살릴 수 있는 전통과 가치들이 많다. 사실 유기농이라는 말보다는 '자연농'이 더 적합하다.

농업생산량이나 농업노동력의 노령화 등의 이유로 이런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는다면 다음 말을 들어 보시기를 권한다.

농민들이 자기 생활은 성찰하지 않고 툭하면 '결사반대'를 외치고 관광버스 대절해서 술판을 벌이면서 서울까지 가서 불 지르고 거리 점거하고 하는 심성에는 일년내내 땅을 착취하는 시설농업(비닐집 농업), 정부의 온갖 지원금을 흥청망청 타 쓰는 행태, 농사짓는 전 과정이 자기 작물 아닌 모든 생명을 죽여 버리는 농법 등에 연유한다고 본다. 그렇게 짓는 농사니 빚은 쌓이고 몸은 병든다. 남는 것은 원망과 강력한 요구조건 뿐이다.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라는 화두는 없다.

한미 에프티에이를 죽음으로 반대한다면서도 우리농산물을 먹지 않고, 유기농을 하지 않으며 기계농과 화학농을 통해 지속적으로 미국에 예속되는 길을 가는 농민들이 수도 없이 많다. 비닐이나 농약, 각종 종자, 농기계, 기타의 농자재 등은 모두 거대자본과 초국적기업의 배를 불리는 행위이다.

농민에 기대어 먹고사는 농업관련 정부기관이나 농민단체나 농업학자 등은 그 누구도 이런 지적을 하지 않는다. 작년 상반기에 <녹색평론>에서 박승옥 선생이 신랄하게 비판 한 것이 유일하다.

유기농(자연농)은 그 농산물의 성분이 어떻다라는 차원을 떠나서 농사 과정에 깃든 만물공생의 정신과 세상을 살려내는 행위에 더 큰 값어치가 있다.

요즘 한창인 고추밭을 보셨는가?

온도와 습기와 영양만 기계적으로 공급되는 비닐집 속의 고추들은 그것이 유기농이라 해도 그것은 사기다. 햇볕과 하늘기운과 땅 기운을 자연그대로 흡수하지 못하는 작물은 살아있는 농산물이 아닐뿐더러 끊임없이 지구를 해치는 농사다.

화학비료와 제초제에 기대어 살아있는, 제 힘으로는 서 있지도 못해서 끈으로 동여매여져 있는 노지의 고추밭도 마찬가지다.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이상기온을 불러오며 지력을 고갈시키고 바다 녹조현상을 부추기는 그런 농사로 생산된 화학농산물을 거부해야 하는 이유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그 스님과 치과의사에게 할 기회가 오리라고 본다. 유기농산물을 사 먹는것이 까탈스런 중산층들의 선호식품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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