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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온 뒤의 모습은 마치 보석을 보는 듯했다. 방울토마토, 피망, 고추, 호박
ⓒ 정현순
"자 이거 먹어봐. 저녁에 당신이 따가지고 온 가지로 무친 거야. 싱싱하고 깊은 맛이 나네. 밥맛이 없더니 가지나물이 밥을 먹게 하는데."
"그럼 이 나물하고 고추장, 참기를 넣고 비벼 먹어봐."
"그래 볼까."

여름을 조금 타는 나는 이맘때가 되면 밥맛을 잃곤 한다. 남편은 2~3일에 한 번씩 퇴근길에 주말농장에서 못 생긴 호박, 등이 굽은 가지, 오이, 토마토 등을 따가지고 온다. 그중에 가지를 얼른 씻어서 나물로 무쳐서 저녁밥을 먹었다. 반 공기쯤 맛있게 먹고 나니 기운이 나는 듯했다. 그런 나도 처음에는 남편이 가지고 오는 농약을 치지 않은 채소를 먹지 못했었다.

▲ 오이, 파, 옥수수, 들깨(농약을 주지 않은 들깨 잎은 무슨이유인지 모르지만 모두 죽어 다시 심었다)
ⓒ 정현순

▲ 초록과 적당히 익어가는 토마토, 그중에 제일 잘익은 토마토를 실례를 하기도 했다
ⓒ 정현순

▲ 보라색꽃이 예쁜 가지가 주렁주렁
ⓒ 정현순

2년 전 주말농장을 시작하고 첫 수확으로 열무김치를 하라고 하면서 열무를 뽑아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얼른 보기에도 억세고 구멍은 숭숭 나 있어서 도저히 김치를 담가 먹을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없는 시간 쪼개어서 농사를 짓는 남편 앞에서 "이거 못 먹겠다. 버려야 할 것 같은데"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생각 끝에 끓는 물에 데쳐서 된장국을 끓였다. 된장국을 끓였지만 먹기가 힘든 것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억센 열무로 끓인 된장국을 한 번 정도 먹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물었다. "이거 먹을 만해?" "그렇게 먹기 힘들면 버려" 한다.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버려야만 했다. 그때 상황에서는. 아무리 몸에 좋은 유기농, 무공해라 해도 입맛에 맞지 않으니 먹지 못할 수밖에.

그 후로 남편은 고추, 상추 등을 가끔씩 가지고 들어왔다. 그 많은 고추를, 자주 따오는 상추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새로운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웃하고 나누어 먹기도 했다. 하지만 풋고추를 날로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거나, 상추, 치커리 등을 즐겨먹지 않는 나로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것들을 안 먹어서 늘 몸이 무거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먹으면서 "야 이거 내가 농사지은 거라 그런지 정말 맛있다" 또 상추에 밥을 듬뿍 담아 먹음직스럽게 먹는다.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고 나도 고추를 하나 먹어봤다. 처음에는 풋고추의 맛을 잘 몰랐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먹다보니 어느새 나도 풋 고추를 즐겨먹게 되었고 상추쌈도 즐기게 되었다. 요즘은 밥상에 풋고추가 항상 올라가고있다.

▲ 흐린날에도 계속되는 벌의 활동
ⓒ 정현순

그래서인가. 내 몸은 나도 모르게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 특별한 병은 없었지만 항상 만성피로에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만성피로에 젖어 있으니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기도 하고 외출도 잘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이 주말농장에서 수확한 농작물을 먹으면서 조금씩 활기찬 모습으로 찾아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내 변화에 난 남편의 주말농장이 보고 싶어졌다. 주말농장에 처음 가서 온통 진초록의 채소는 쳐다 보고만 있어도 내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남편이 주말농장에 가자고 해도 안 가던 내가 언제 갈 거냐고 먼저 준비하고 나설 지경이 되었다. 도시락 싸가지고 주말농장에 가서 그것들을 보고 수확하는 재미, 또 직접 따온 채소를 먹는 즐거움은 내 생활에서 빼놓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 가끔씩 마트에서 유기농 채소를 사먹곤 했었다. 어쩌다 먹던 그 맛을 난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꾸준히 직접 지은 채소를 먹다보니 그 맛을 느끼게 된 것이다. 6개월 이상 꾸준히 먹고 나니 내 몸은 나도 모르는 사이 편안하게 변해 있었다.

인스턴트식품을 즐겨 먹진 않았지만, 육식을 즐겨 먹진 않았지만 내 몸은 어느새 많은 공해식품에 노출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풋고추 100g에는 비타민C가 사과보다 50배, 귤보다 2~3배가 많다고 한다. 그 외에도 단백질, 당질, 무기질, 칼슘 등이 골고루 있다고 한다. 상추에는 특히 칼슘과 비타민A가 많고 피를 맑게 해주는 정혈제로 좋다고 한다. 고추와 상추에 대해서 알고 나니 내 몸이 가벼워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등이굽은 오이
ⓒ 정현순

그 외에도 고구마, 호박, 가지 등 남편이 농사 지은 농작물을 내 몸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작년에는 시기를 놓쳐서 주말농장을 하지 못했다. 그때 시중에서 파는 채소를 사 먹었다. 전에는 느끼지 못하는 무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도 똑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하여 올해는 작은 땅이지만 남편은 주말농장을 다시 시작했다. 주말농장이라기보다는 작은 텃밭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같다. 어제(20일) 저녁 식탁의 식단은 잡곡밥에 오이지, 호박전, 가지무침, 풋고추, 물김치,멸치고추조림 등으로 이루어졌다.

▲ 딸 줄 못 생긴 채소들, 하지만 맛은 끝내주지
ⓒ 정현순

그 덕에 요즘은 잠시 잊었던 밥상의 평화를 다시 찾게 된 것같다. 밥상에서 찾은 평화는 내 몸과 마음 모두에게 진정 평화를 주고 있다. 며칠 전 딸아이 집에 갔었다. 그때 딸아이가 "엄마 고추 집에 있어?" "있는데" "우진이 아빠가 고추 맛있다면서 하루에 5개씩 꼭꼭 먹어. 나도 먹어보니깐 정말 맛있더라" "알았다. 니네는 잘 안 먹는 줄 알았지. 다음에 가지고 올게" 입맛은 대부분 비슷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지난 일요일 남편의 주말농장에서 토마토를 내가 직접 따먹었다. 토마토를 한 입 깨물었다. 물이 가득 고이고 살이 꽉 찬 밭에서 바로 따먹는 그 맛이라니! 내가 그러고 있는 사이에도 남편은 풀을 뽑느라 바쁘기만 하다. 그런 남편에게 "고구마는 좀 더 있어야지?" "그럼 9월이나 돼야지" 한다.

▲ 2년 전 고구마밭에서 만난 지렁이들
ⓒ 정현순

2년 전 고구마밭에서 만났던 지렁이들이 생각난다. 남편은 "지렁이는 아무 곳에서나 있는 것이 아니야. 이렇게 농약을 치지 않는 좋은 땅에서 살 수 있어" 했다. 그 고구마를 동생과 손자놀이방 등 이웃과 나누어 먹던 일도 생각난다. 그들은 그런 고구마를 먹고 "야 고구마 진짜 맛있다" 했었다. 가을에 수확할 고구마의 맛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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