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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가 취미인 우리집 박농사꾼은 이른 봄 장날에 가셔서 고추 모종 70여개를 야심차게 구입하셨다. 그 외에도 가지, 박, 호박, 도라지를 텃밭에 심으셨고, 생강 싹 낼 거라며 집 안 가득히 생강냄새를 폴폴 풍기기도 하셨다. 그리고 우리집 작디 작은 화단의 절반의 나무를 뽑아 만든 흙공간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상추 씨앗을 뿌리셨다.

▲ 2007년 상추 씨앗 뿌리는 어느 봄 날
ⓒ 박경내

▲ 2007년 봄, 화단에 상추 씨앗 뿌리기
ⓒ 박경내

봄동안 모종 자라는 것 지켜보던 박농사꾼은 고추모종을 추울 때 조금 이르게 심어서는 얼어버린 건지 다른 밭에 비해 도통 자라지 않는다며 속상해 하셨다. 그러다가 그 후 어느 날은 보도 듣도 못한 '깔비'로 퇴비를 하셨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시며 연신 흐뭇해 하시기도 하셨다.

하도 생소해 물어본 '깔비'란 용어는 겨우내 나무에서 떨어진 잎들을 말하며 그것들이 썩어 좋은 거름이 된다고 하셨다. 실은 그 전에 어느 풍작을 이룬 할머니께 조언을 듣고는 처음 시도해 보신다는 설명도 덧붙이셨다.

날이 차차 더워지고 언젠가부터는 밭을 다녀오셔도 빈 손으로 돌아오시지 않으셨다. 그렇게 이제 수확의 시기가 돌아와 우려하던 고추농사도 이제 와서는 주위에서 "퇴비를 무얼 쓰셨길래 농사가 그렇게 잘 됐냐?"고 물어볼 만큼 주렁주렁 열렸다는 소식도 전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있자니 보지 않았어도 그 부러운 물음에 자랑스레 깔비를 썼단 대답을 하셨을 모습이 눈에 선하였다.

이번에 휴일을 맞아 가족들을 대동해 박농사꾼이 그간 애지중지해 온 많은 자식(수확물)들을 함께 보러 나섰다. 밭에서 농작물들을 설명하는 틈틈히 풀을 뽑아주고, 수확의 시기를 가늠하시며 바라보는 눈길에 애정이 그득하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사랑하는 건 바로 우리를 향한 사랑이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간 가족들이 먹을 음식이기에 농약 한 방울 뿌리지 않으며 자연퇴비를 이용해 농사를 지으셔서는 건강할 사랑을 손수 먹여주시니 말이다.

▲ 2007년 7월 17일 밭에서 수확물에 함박웃음 지으시는 박농사꾼의 모습
ⓒ 박경내

요즘은 단순히 농약 과하게 뿌린 것은 전혀 이슈도 아닐 수준의 음식에 관한 논란을 흔히 접할 수 있다. 일일이 찾아보지 않고 지나치며 들은 것만 나열해 보아도 음식물에 표백제 사용, 식용가축 관리문제, 농작물 수입 과정에서의 약물과다처리, 음식물 색소투입 등등 온통 가슴 섬뜩한 내용뿐이다.

▲ 2005 개심사 - 현대인들은 원효대사와 닮았다.
ⓒ 박경내

'어쩌면 우리 모두는 현대판 원효대사가 아니던가'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원효대사는 해뜨자 알아버린 단 한 번의 경험으로 큰 깨달음을 얻었지만, 현대인들은 도무지 알아차리기 어려운 수많은 경험으로 결국은 건강을 크게 잃을 것 같은 이 예감은 마냥 불길하기만 하다.

더 이상 '마음'은 생각하기도 전에 우선 '건강'부터 우려하게 만드는 먹거리에 대한 의심이 자꾸만 생겨난다. 이런 와중에 자연이 보내준 그대로 순수 유기농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편안한 기쁨이고, 즐거움임을 꼭꼭 되새김질해보고 새삼스레 감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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