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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기농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1920년 대부터 유기농 급식을 시작한 슈타이너 학교. 아이들은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주로 섭취한다.
ⓒ 한경미

1919년 독일 철학자 슈타이너는 스튜가트에 위치한 발도르프 담배공장으로부터 노동자들을 위한 강연을 부탁 받는다. 그리고 슈타이너의 독특한 강연에 감명받은 공장주가 노동자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할 것을 부탁하는데,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슈타이너-발도르프 자유학교다.

슈타이너는 자유로운 인간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야망·두려움·경쟁보다는 사랑·신용·장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생들을 교육할 때는 학생 스스로 삶을 주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자립교육을 생명으로 삼았다.

독특한 교육 철학과 함께 슈타이너 학교는 유기농 급식으로도 유명하다. 유기농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1920년대 이미 유기농 급식을 시작한 것.

이 슈타이너 학교는 처음 시작된 독일뿐만 아니라 영국·프랑스 등 유럽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 퍼졌으며 프랑스에도 20곳이 있다. 프랑스 파리 근교의 마을 베리에르 르 뷔송. 2만여명이 거주하는 이 조그만 마을에도 슈타이너 학교가 있다. 1955년 설립된 베리에르의 슈타이너 학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400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슈타이너 학교의 행정을 맡고 있는 다르메씨를 만나 유기농 급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래는 다르메씨와의 일문일답.

1920년대부터 유기농 급식

▲ 친절하게 인터뷰에 응해준 슈타이너학교의 다르메씨.
ⓒ 한경미
- 슈타이너 학교는 유기농 학교급식을 한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요?
"슈타이너 학교는 처음 독일에 세워질 때부터 유기농제품을 이용했습니다. 학교 창시자인 슈타이너가 유기농이란 단어가 쓰이지도 않았던 1920년에서 1923년 사이 이미 앞서서 유기농 개념을 도입하기 시작한 거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당시는 농업이 집중화되고 대량화되기 시작했는데 슈타이너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대량농업의 후유증을 미리 예상했던 거지요. 그래서 농업의 질을 강조하기 시작한 겁니다."

- 그럼 슈타이너 학교는 모두 유기농 급식을 하겠네요?
"그렇습니다. 모든 면에서 질을 강조하는 게 우리 학교의 원칙이므로 당연히 급식도 질 좋은 유기농으로 하는 거지요. 동시에 학생들에게 음식과 농업을 존중하는 교육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원예수업도 하는데 학생들이 실제로 밀과 감자, 여러 야채를 심고 가꾸고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과정에 이 수업이 있는데 퇴비 만드는 것부터 가르치지요. 유치원 과정에도 정원 수업이 있어 꽃이나 야채의 씨앗 한두개를 직접 심게 합니다. 그리고 중학생들이 경작하는 경작물은 학교 식당에서 이용하기도 합니다."

- 학교가 학생들에게 유기농업 교육을 하는 셈이네요.
"우리 학교가 농업학교는 아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유기농 교육을 하는 건 아닙니다. 대신 학생들에게 유기농에 대한 장점을 가르치고 실제로 이용하게 하는 거지요. 더욱이 학부모 대부분이 유기농 소비자라 가정과 학교에서 동일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 유기농을 이용하는 학부모들은 얼마나 되나요?
"70% 정도가 유기농 소비자가 아닐까 합니다. 유기농 가게에 가면 학부형들을 많이 만나거든요. 우리 학교 교사 70% 이상도 유기농 소비자입니다."

- 당연히 학부모들도 유기농 급식을 환영하겠네요.
"그렇지요. 유기농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불만족할 이유가 없고요. 혹 일반 급식을 하면 유기농 소비자 학부모들이 불만을 가질까, 우리 같은 경우는 불만의 소지가 하나도 없습니다."

- 중학교 3학년 때 농업 관련 연수를 받는 걸로 아는데 유기농 농업자들에게서 연수를 받는 건지요?
"100%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유기농업자들을 많이 알고 있어 가능하면 그쪽으로 유도하고 있기는 합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냠냠"... 밥상머리 교육해요

▲ 슈타이너학교의 식당. 벽에 걸린 그림은 학생들의 작품이다.
ⓒ 한경미
- 유기농 급식을 하는 슈타이너 학교 학생들은 다른 일반 학교 학생들보다 좀 더 건강한 편인가요?
"대답하기 좀 힘든 질문이네요. 우선 그런 연구가 행해진 게 없고 또 학생들의 건강 상태가 복합적인 요인에 기인하므로 단순히 유기농 급식만 갖고는 판단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 유기농 제품은 어디서 구입하나요?
"렝지스 도매시장의 도매상인에게 주로 구입합니다. 생선 같은 경우는 지방에 있는 도매상인에게 구입하고요."

- 유기농 생선은 없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렇지요. 양식어 대신 바다에서 직접 낚는 자연산을 구입하고 있습니다."

- 유기농 생산업체와 직접 일하시지는 않는 거네요?
"그러고 싶지만 일손이 너무 부족합니다. 또 우리가 구매하는 양이 대량이 아니어서, 예를 들어 40㎏의 고기를 구매해야 하는데 그 양으로 생산자들에게 배달을 부탁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요."

▲ 식당에서 1차로 점심식사를 하는 슈타이너학교 초등학생들.
ⓒ 한경미
- 일주일 단위로 주문하나요?
"기름처럼 1년 단위를 한꺼번에 대량으로 구입하는 것도 있고 곡식 같은 건 분기별로 구입하기도 합니다. 나머지 야채나 과일·고기·생선 등은 일주일에 한번씩 구입하고요. 도매상인이 직접 학교까지 배달해 줍니다."

- 식단은 어떻게 짜나요?
"어떤 구체적인 원칙은 없고 일주일에 두세번 고기나 생선을 먹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야채와 파스타 종류를 이용하고요. 그리고 채식주의자들을 위해서 매일 채식요리를 따로 준비하고 우유 등 특별한 제품에 알레르기가 있는 학생들은 그들만의 음식이 따로 준비됩니다. 이것도 일반학교와 다른 점이죠."

- 조리사가 식단을 짜나요?
"우리 학교는 조리사가 없습니다. 그냥 일반 교사 중에서 관심 있는 사람이 하는데 현재는 음악 교사가 식단을 맡고 있습니다."

- 그래요? 재미있네요. 학생들에게 필요한 하루 칼로리 같은 걸 생각하면서 식단을 짜나요?
"그렇게 구체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균형 있는 식사를 원칙으로 전식과 본식, 후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식으로는 야채나 곡식을 많이 이용하고 일주일에 3~4번은 치즈를 섭취합니다. 다른 일반 학교에 비해 야채를 많이 섭취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식당은 다른 학교처럼 자기 쟁반에 자기 먹을 것만 챙겨가는 셀프 서비스가 아닙니다. 점심식사도 교육의 연장으로 봐서 학생들은 자기 담임과 함께 한 식당에서 식사합니다. 음식도 같이 나누어 먹는 것을 강조해 식탁 하나 분량이 서빙되면 학생들이 같이 나누어 먹는데, 이건 공동체 의식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유기농 학교=부유층 학교? 학부모 선택일 뿐"

▲ 본식인 야채 파스타를 서빙하는 테레즈씨. 테레즈씨는 29년 동안 슈타이너 학교 식당에서 일했다. 그는 졸업생들이 그들의 자녀를 다시 슈타이너학교에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 한경미
- 슈타이너학교는 사립이라 일년 학비가 3000유로가 넘고 급식비도 일년에 790유로로 일반 공립학교에 비해 비싼 편입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주로 부유한 집 아이들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유층은 아이들을 우리 같은 특별학교에 보내지 않지요. 이곳 학부모들의 수준은 보통 중산층에 속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꽤 됩니다. 주로 예술계통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고 여유가 없는 가정도 자녀에게 특별한 교육을 시키려고 무리해서라도 우리 학교에 보내기도 합니다. 결국 학부모의 선택인 거죠.

학비가 공립에 비해 비싼 편이긴 해도 우리 학교가 협회 이름으로 되어있고 도(都)와 연결이 되어 있어 일종의 후원금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는 학비의 일부를 면제해 주고 있습니다. 현재 30여명의 학생이 이런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 한끼 식사 가격이 어떻게 되는지요?
"1인당 4.50유로로 이것은 실제로 들어간 재료값에 해당합니다. 학교에서 아무런 이익도 내지 않은 가격이죠. 일반 공립학교는 학부형의 경제적 수준에 따라 급식 가격이 다르게 배정되는데 그건 시에서 일부 보조금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우리 학교는 시의 보조금을 받지 못하고 있기에 모두에게 같은 금액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 경제력이 좋지 않은 학부모에게는 부담되는 금액이겠네요.
"그렇긴 하지만 질 좋은 급식을 한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지요."

- 그러면 부유층은 어떤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나요?
"주로 사립 가톨릭 학교로 보내지요. 우리 학교는 엘리트를 형성하는 학교가 아닙니다. 머리만 강조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머리와 가슴, 손'을 모두 이용하는 전인교육이 우리 학교의 목표입니다."

- 결국 슈타이너 학교의 핵심 교육방침이 되겠군요?
"그렇지요. 다른 말로 말하면 학생들에게 조화로운 발달교육을 행한다는 겁니다. 단지 머리에 지식만 주입하는 교육이 아닌 머리와 육체, 손을 이용해서 삶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을 형성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학교에는 예술, 실기 과목이 많습니다. 다른 학교의 일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거기에 이런 특별과목을 덧붙여 이수하기 때문에 사실 다른 일반 학교에 비해 30% 정도 수업시간이 많지요. 또 그만큼 교사 수도 많고요."

낙제도 교장도 없는 학교, 슈타이너

▲ 낙제도 교장도 차별도 없는 프랑스의 슈타이너 학교. 잔디에 누워 식사시간을 기다리는 학생들의 모습이 평화롭게만 느껴진다.
ⓒ한경미

1. 교장이 없다. 슈타이너 학교는 교장이 따로 없이 학부모와 교사의 결정 하에 모든 게 운영되는 자치 시스템이다.
2.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 한 교사가 한 학생을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지도한다.
3. 초등학교 1학년부터 2개의 외국어 교육 실시
4. 오이리트미(Eurythmie, 아름다운 리듬·동작이란 희랍어)라는 독특한 동작예술 교육
5. 낙제가 없다.
6. 월급에서 차별은 없다.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은 교사· 행정직원·식당 업무 등 하는 일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동일한 월급을 받는다.
7. 아이들을 위해 교사는 존재한다. 슈타이너 학교의 교사들은 일반 학교 교사보다 거의 30% 정도 낮은 월급을 받는다. 그래도 오로지 사명감으로 학생들을 지도한다.
8. 슈타이너만의 교육방식이 있다. 교육부에서 인정 받은 일반 교사들도 이 학교에 들어오면 슈타이너 교육과정을 따로 이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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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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