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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의 아들로 살아가겠다는 일념으로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영농후계자'로 들어선 동생이 어느 날,

"형님, 내 오리 농법으로 나락농사(벼농사) 한 번 지어 볼란다."
"오리 농법 나락 농사라꼬. 돈 많이 드는 거 아이가?"
"아이다 나라에서 다 지원해준다, 아이가."
"약 치면 되지, 힘드는데 무슨 오리 농법이고, 그냥 지어라."
"아이다, 3년 동안 오리 농법으로 나락농사 지으면 친환경 인증 받아서 직거래로 판매하면 된다."

2000년 벼농사는 결국 오리 농법을 쓰기로 했다. 동생이 짓는 벼농사는 약 3000평 정도 되었다. 막상 오리 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하니 손길이 여간 많이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쇠 파이프를 200개 이상 잘랐고, 그것을 5미터 간격으로 박았야 했다. 쇠 파이프만 박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철망을 쳐야 했다. 오리 집을 5채나 지었다. 오리는 500마리 정도 필요했다.

쇠 파이프를 5미터 간격으로 박으면서 올해는 무농약으로 지은 쌀밥 한 번 먹겠다는 생각에 땀이 비오듯 했지만 동생을 도와주면서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농약 중에 '제초제'가 가장 독성이 강하다.

오리가 벼 사이를 다니면서 풀이 자리지 못하게 하고, 멸구와 이화명나방 등을 잡아 먹게 하여 농약을 치지 않게 된다. 제초제의 독성은 가히 잔인할 정도이다. 모든 생명을 한순간에 끝내는데 제초제 만큼 확실한 농약은 없다. 제초제는 '독약'이다.

쇠파이프 박고, 철망 치고, 오리 집 지었다. 이제 오리만 들어오면 되었다. 이것만 하면 오리 농법은 끝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리들이 하루 종일 논에 사는 것이 아니다. 밤에는 자기 집에 들어가서 잠을 자야 한다.

아침에는 문을 열어주어 오리들이 벼 사이 사이를 다닐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저녁에는 그 많은 오리를 집 안으로 들여보내야 한다. 오리들을 집 안으로 들여보내는 방법은 '깡통'을 신나게 두드리면 된다. 일주일 정도 두드리면 오리는 자기 집으로 들어간다.

오리는 무럭무럭 자랐다. 오리 농법의 좋은 점 하나가 더 있는데, 이삭이 패기 직전에 오리를 팔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리 농법은 추수 때까지 하는 것이 아니라 이삭 패기 직전까지 하는 이유는 이삭이 팬 후에도 계속 오리를 두면 이삭을 다 먹어 버리기 때문이다. 오리는 약 50일 정도 논에서 산다. 그 정도 되면 '오리탕'을 만들어 먹기 가장 좋은 크기로 자란다. 일종의 부수입이다.

"애비야! 이게 무신 일이고."
"어머니 왜 그러세요?"
"나쁜 놈들이 오리를 다 잡아가 버렸다 아이가."
"……!"

오리탕을 해 먹을 수 있는 가장 알맞은 크기로 자란 오리를 어느 도둑들이 밤에 와서 다 잡아가버린 것이다. 도둑도 별 이상한 도둑들이 있음을 그 때 알았다. 오리를 다 도둑 맞은 기분은 정말 허탈했다. 어머니는 오리 도둑놈들을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친환경 농법으로 지은 쌀밥을 먹을 수 있었지만 '오리탕'은 맛도 보지 못했다.

동생은 그 때 너무 허탈했는지 오리 농법으로 벼농사를 짓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고 했다. 우리 가족이 먹을 양식만 조금 짓고, '한우'로 방향을 틀었다. 7년 전 오리를 훔쳐간 사람들이 누구인지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 아직도 어머니는 오리 도둑놈을 잡아야 한다고 하지만 잡기는 이미 틀렸다.

공소시효도 아마 지났을 것이고. 하지만 그 때 흘린 땀을 기억하면서 제초제 없는 농사 짓기는 생명을 살리는 일임을 마음에 새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태그:#오리농법, #친환경, #제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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