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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넘게 오락가락하는 비처럼, 어수선하기만 한 날들이 가고 있습니다. 대선후보 경선, 탈레반 인질사태, 남북정상회담 등. 뜨거운 여름을 식혀주고 답답한 마음을 씻어내 줄 정도에서 모든 게 순리대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결혼한 지 14년. 그동안 여름휴가 계획은 저에게 사실상 의미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1년에 두 번의 명절을 시댁에서 보내야 하기에 자연스럽게 여름휴가는 아내에게 선택권이 있었고 아내의 선택 또한 뻔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수원에서 목포를 거쳐 1시간 30분 동안 배를 타고 가야하는 곳, 신안군 도초도라는 섬이 저의 처가이자 아내가 태어나 20년 가까이 자란 곳입니다. 짐작하듯이 바다가 있고 해수욕장도 있고, 숙식문제 걱정 안 해도 되니 결혼해서 처음 몇 년 간은 여름휴가만 되면 제가 먼저 설쳐서 밤을 새워 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저도 모르게 시큰둥해지더니 어떤 의무감에 따라 나서곤 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이번 여름휴가가 결정타를 날리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4일간의 짧은 휴가의 절반을 길거리에서 더위와 모기와 싸우며 기다림으로 보낸 것도 억울한데 의식 없는 일부 얌체족들 때문에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수요일(25일) 근무를 끝내고 밤 9시 30분에 출발, 시원하게 뚫린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다음날 새벽 1시 30분경에 기분 좋게 목포 북항(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을 거라 어느 정도 예상했었지만 그래도 새벽 5시 30분 첫 배는 어쩌면 탈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2㎞가 넘게 늘어선 차량들을 보니 첫 배는 커녕 9시 30분 배마저도 탈 수 있다는 장담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1년에 한 번 가는 처가를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는 갈 수도 없는 일이고 아내의 마음을 알기에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기다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차안은 덥고 밖에 나가 벤치에 앉으니 모기들이 덤벼들고, 졸음은 쏟아지고, 시간은 더디게만 가고.

그렇게 한 숨도 못자고 뜬 눈으로 맞은 새벽 6시경, 출출한 속을 달래기 위해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과 우유를 사들고 오는데 저 멀리서 아내가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배가 5시 30분에 출발하고 나니 줄을 서 있던 차량들이 앞으로 이동하면서 생긴 공간에 얄밉게도 차량 3대가 제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끼어든 것이었습니다.

밤을 새워 기다린 사람들은 어떡하라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끼어들기를 한 사람들... 물론 자리를 비운 저의 잘못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잔뜩 화가 나 있는데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오더니 대뜸 쳐다보지도 않고 “당신 때문에 차량 3대가 끼어들었으니까 알아서 해”하고는 휑하니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끼어든 사람이 잘못이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오죽하면 그럴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교통정리에 한참 열중하고 있는 경찰관을 불렀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끼어들기를 한 차량 세대를 원래 위치로 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자리가 비어 있어 들어왔으니 자기들은 잘못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찰관은 한술 더 떠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과는 커녕 얼굴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뻔뻔함 앞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한바탕 해주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을 것 같은 생각도 들어 가까스로 참아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어렵게 도착한 처가에서 이틀을 보내고 반대로 목포행 배를 타기 위해 7월28일(토) 새벽 6시30분경에 서둘러 항구에 도착했는데 ‘역시나’였습니다. 끼어들기 때문에 이곳저곳에서 고성들이 오갔습니다. 결국엔 종이에 도착한 순서대로 번호표를 만들어 나누어주고서야 조금은 진정이 되었습니다. 또, 5시간의 기다림 끝에 겨우 목포를 거쳐 집으로 돌아왔지만 개운치 않은 감정들이 나를 슬프게 합니다.

조금만 양보하고 질서를 지키면 모두가 기분 좋은 휴가를 보낼 수 있는데, 상식이 통하지 않은 현실과 이 작은 사건이 우리의 현실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내년이면 또 다시 찾게 될 그곳에서 뭔가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덧붙이는 글 | <나의 여름휴가 실패기> 응모글


#휴가#끼어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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