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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30여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다. 1978년 까까머리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안면도 해수욕장에서 2박 3일을 보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맞으며 자주 어울리던 친구 다섯과 충청도 안면도 바다로 여행을 계획했다. 바야흐로 다음 해면 당시 말로 "인삼보다 더하다는 고삼이 되는"터라 방학 때 논다는 것은 언감생심 바랄 수 없었기에 거의 고교 마지막 여름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는 공감에 의기가 쉽게 투합되었다.

누군가인지는 가물가물하지만, 그 해 처음으로 개장되는 안면도 해수욕장이 지금 생각하면 꽃지 해수욕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좋다더라는 말에 당시 여행이라야 시골 친척집 수준이 다였던 우리들은 모두 동의를 했다. 섬까지 다리도 놓여 버스로 쉽게 갈 수 있고, 처음 개장한 곳이라 사람도 적고, 바다도 예쁘다는 말을 들었다는데야 누구도 다른 의견을 낼 수 없었다.

학기말 시험이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는 날이 왜 그리 길기만 한지. 우리 여섯은 매일 수업이 끝나면 모여 가지고 가야 할 장비도 나누고, 바다에서 보낼 2박 3일에 대한 끝없는 상상과 한없는 수다로 그 지겹도록 긴 열흘 남짓의 시간을 죽였다.

드디어 출발 당일, 저마다 한 가득 배낭을 짊어지고, 기타 하나 둘러메고 용산 시외버스터미널에 모였다. 지금이야 서해안 고속도로도 개통되었고, 국도도 반듯해 두어 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만, 당시 안면도로 가는 길은 충청권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꼬불꼬불 덜컹이는 시골길에 네 시간 정도 걸리는 그래도 먼 길이었다.

냉방 안 되는 시외버스라면 당시 우리 나이 때였을 지금의 우리 애들에게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여행길이겠지만, 당시 우리들은 우리 어깨를 짓누르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마냥 즐겁기만 했다.

안면도 해변에 도착하니 이미 주변은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곳이라 해변에 쳐 있는 텐트도 한산했고, 우리가 놀기에는 그저 적당한 곳으로 잘 왔다 싶었다. 부랴부랴 배낭을 풀고, 텐트를 치고 나니 어린 마음에도 꽤 대단한 일을 했다 싶을 정도로 근사했다. 출발하면서 간단히 요기를 떼운 터라, 잘 공간을 만들고 나니 배에서는 꼬르르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먹을거리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했는데, 주위를 둘러봐도 쉽사리 물 얻을 곳이 보이지 않았다. 물어 물어 물 얻을 수 있는 곳에 가 보니, 달랑 수도꼭지 하나에 물 얻으려는 사람의 줄이 길다. 섬이라 물이 충분하지 않고, 처음 개장된 곳이다 보니 편의시설이 그리 충분치 않다고 한다. 다만 민박을 하면 민박집 물을 얻을 수 있으나 야영족을 위해서는 물을 주지 않는다나.

어렵사리 구한 물로 이미 깜깜해진 밤에 익숙지 않은 솜씨로 지어내 반은 설익은 삼층밥에 꽁치 통조림 찌게로 저녁이 준비되고 나니 이미 열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돌을 씹어도 소화가 될 나이요, 시장이 반찬인 터라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비워버리고, 밤 늦도록 피곤함도 모른 체 노는데 빠져버렸다.

아침에 눈을 뜨니 이게 웬걸, 아랫배가 싸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몇 차례 화장실을 들락여도 나중에는 나오는 것 없이 배는 점점 요동을 쳤고,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이 영 말이 아니었다. 전날 설익은 밥을 급하게 먹은 탈이 단단히 난 것이었다.

한참을 헤매고 있는데, 같이 간 친구 중 하나가 조언을 했다. 의대를 다니는 형 책에서 보았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가며.

"물을 갈아 먹어서 탈이 난 거야, 물 마시지 않고 조금만 있음 괜찮아질 거야."

그러나 날은 점점 더워지고, 텐트 안은 누워 있는 것이 힘들어 질 정도로 뜨거웠다. 그늘 하나 없는 해변가, 기껏 그늘이라야 텐트 안인데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은 불가능했으니, 탈 난 몸은 그나마 가눌 힘조차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물을 마시지 않으면 곧 괜챦아 질 거라는 친구의 말에 입이 바삭바삭 타 들어가도 그저 꾹 참고만 있을 수밖에.

오후 한 낮의 찜통 시간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미욱하게 보냈지만, 몸 상태는 더욱 나빠지고, 급기야는 비몽사몽의 상태로 악화되기만 했다. 친구의 등에 업혀 읍내로 나갔다. 빠듯한 돈 털어 읍내 병원에 도착해 의사 선생님의 진찰을 받았다.

"탈수증이구먼. 주사 한 대 맞고 물 많이 마시면 괜찮아질거야."

태어나서 그리 큰 주사기는 처음 본 듯 했다. 제정신으로 보았으면 차마 맞기 무서울 정도의 정말 큰 주사기로 주사를 맞고, 병원에서 실컷 물을 마시고 나니 몸에 힘은 없어도 정신이 점점 맑아졌다. 이제 살았구나 싶어 주위를 돌아보니 좀 전까지 물 마시지 말라던 친구가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나머지 친구들은 물 마시지 말라며, 선머슴이 사람 잡았구먼 등등으로 그 친구의 고개를 더욱 떨어뜨리게 하고 있었고.

병원을 나와 해변가 민박집 마루를 빌렸다. 마루 빌리는 것도 얼마간의 비용을 내야했으니 온건히 방 하나를 빌리는 건 달랑 돌아갈 차비 정도만 남은 우리로선 그나마 사치였다. 지금 생각하면 마루에 누워있는 것도 비용을 받은 그곳의 인심이 야박하게 생각되지만, 당시는 얼마나 고마웠던지. 게다가 마음껏 물을 먹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밤이 되어 몸을 추스르고 다시 텐트로 돌아왔다. 몸이 편해지니 기껏 어렵사리 찾았던 그 곳이 왜 그리 아쉽기만 했던지. 밤바다의 시원한 바람도 맘껏 맞아보고, 아찔할 정도로 별로 가득한 밤하늘에 아쉬움을 달래기도 해보았다. 나 때문에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맘 고생만 했던 친구들에게 미안함도 나누면서 그렇게 마지막 밤을 보냈다.

▲ 최근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 삼십년이 지난 지금 피서를 즐기는 인파가 제법 많다. 당시 한적했던 그 곳은 이제는 추억속에만 있을 터다.
ⓒ 태안군청 웹갤러리
지난 두어해 전 언젠가 식구들과 안면도 해변을 찾은 적이 있다. 아들들에게 당시의 얘기를 전해주며 삼십년 전 텐트를 치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던 그 곳을 찾았으나 당시와는 너무나도 달라진 탓에 막연히 여기쯤이었을 거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러나 내 추억 속에 안면도 해변과 어설프게 쳤던 텐트 두 동과 어린 시절 친구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생생히 그려진다. 고통스러움보다는 아련한 아름다움으로...

덧붙이는 글 | 삼십년 전의 기억이라 일부 정황이 다소 헷갈립니다. 줄 서서 물을 얻었던 곳에 수도꼭지가 있었는지 하는 것들이 그러합니다. 정말 당시 안면도 해변가는 지금과는 너무 달라졌더군요. 그만큼 풍요로와졌기에 그러하겠지만, 제 추억 속의 그 곳은 여전히 따스합니다.


태그:#안면도, #친구, #탈수증,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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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여행과 느리고 여유있는 삶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같이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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