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종수 일당의 처형이 끝나자 형조에서 상소가 올라왔다. 임금의 총애를 믿고 교만에 빠진 이숙번을 함양에 부처하는 은전을 베푸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숙번은 공신으로 국가와 휴척(休戚)을 같이하여야 함에도 이심(二心)을 품어 전하를 저버렸으니 이는 불충입니다. 하지만 전하께서 특별히 관인(寬仁)을 베풀어 법에 두지 아니하고 성명(性命)을 보전케 하였으니 의당 개심하여 재조(再造)의 은혜를 생각해야 마땅한데 구종수와 내통하여 자기 사욕을 채우려 하였고 구종수와 사사로이 서로 교제를 맺어 숨기고 아뢰지 않았습니다. 그가 찬소(竄所)에 있으면서도 마음 씀이 이와 같으니 어찌 죄를 뉘우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이런데도 죄주지 않으시면 이것은 멋대로 악을 행하게 함이니 전하께서는 어찌 일부(一夫)를 아끼어 대의를 생각하지 않고 그를 자원에 따라 안치하게 하십니까? 더욱 이숙번의 사람됨은 교한부도(驕悍不道)해서 반드시 반측(反側)의 마음을 품어 뒷날에 불궤를 도모할는지도 알 수 없으니 전하께서는 종사를 염려하여 한결같이 전일의 소(疏)를 따르고 상형(常刑)에 두심으로써 그가 점점 더함을 막고 뒤에 오는 사람을 경계하소서." - <태종실록>함양에 자원 안치시키는 것은 부족하다는 내용이다. 더 엄한 형벌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태종은 형조와 대간의 주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의보다도 공신을 우선순위에 두어 이숙번의 함양 유배를 굳혔다. 자원안치 형식이다. 함양은 이숙번에게 낯선 고장이 아니다. 어머니의 고향마을 외가 동네다. 배려한 것이다.
유배 행렬을 뒤따라오는 의문의 말 한 마리이숙번의 유배행렬이 숭례문을 벗어났다. 저잣거리에 웅성거리던 백성들의 눈총이 따갑다. 힘없는 백성이 죄를 지어도 자신의 농장이나 외가 동네를 선택하여 유배갈 수 있느냐 하는 질시의 눈초리였다.
"이번에는 외가로 간다며?"
"아무리 외가라도 정승이 경상도 함양이라면 오뉴월 장마철에 처마 밑에 장닭이지."
"죽을죄는 짓지 않았다 하잖아."
"나라님이 꼭 죽을죄를 지었다고 사람을 죽이냐? 눈엣가시 같으면 뽑아내는 거지."
"다시는 한양에 돌아오지 못하겠지?"
"모 아니면 도겠지."
유배행렬이 청파역을 지나 한강진에서 거룻배에 올랐다. 바람에 흔들리는 뱃전에서 바라보니 삼각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잘있거라 백악산아, 다시 보마 삼각산아."
이숙번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의지를 불태웠다. 꼭 보리라 다짐했다. 동작 나루터에 도착한 일행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남태령에 올라서니 숨이 턱에 닿는다. 언덕 마루턱에서 땀을 식히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한양을 바라보며 예전에 임금과 사사로이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신은 지나치게 상은(上恩)을 입었습니다. 우매한 것이 많아서 설령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 성명을 보전하게 하여 주소서' 하니 임금이 '일이 종사(宗社)에 관계되지 않으면 너의 말을 좇아 보전하여 주겠다'라고 말했던 임금의 말이 번뜩 생각났다.
"이보시오, 도사! 그전에 주상께서 보전하여 주신다는 말씀이 계셨음을 늘 잊지 않고 있었는데 허무하오."
혼잣말처럼 넋두리를 풀어놨다. 휴식을 끝낸 일행은 남쪽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유배 행렬이 과천을 지나 금령역(金嶺驛)을 통과할 무렵이었다.
"죄인의 행렬은 멈추시오."
흙먼지를 일으키며 한 마리의 말이 달려오고 있었다. 말의 행장으로 보아 역마가 아니라 의금부의 준마였다. 이숙번은 가슴이 뛰었다. 주상전하께서 나를 용서하시고 돌아오라는 말을 보내셨다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어인 일이오?"
"유배 행렬을 돌리라는 어명입니다."
죄인 호송을 책임맡은 의금부 도사와 전령의 얘기다. 이숙번은 끼어들 틈새가 없다. 함양으로 향하던 유배행렬이 방향을 바꿔 한양으로 향했다. 따라만 가야하는 이숙번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답답했다.
"무슨 연유인지 심히 궁금하오."
이숙번은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물이라도 시원하게 한 바가지 마셨으면 좋겠지만 그럴 짬이 없었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가까스로 물었다.
"죄인을 잡아 오라는 어명입니다."
전령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순간 이숙번은 현기증을 느꼈다.
"같은 말이라도 '어' 다르고 '아' 다르다. 유배 가는 사람을 잡아 오라니 이게 웬 청천벽력인가. 기대에 부풀었던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단 말인가? 유배지로 향하는 죄인을 잡아 오라니 이게 무슨 곡절인가? 용서해주기 위하여 부른 것이 아니라 죄를 더 주기 위하여 잡아 오라했단 말인가?"
이숙번은 유배지로 향하던 죄인을 불러 세워 참형에 처했던 이무 사건을 상기하며 등골이 오싹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숙번은 생명의 위기를 느꼈다. 죽이기 위하여 불러들이는 것만 같았다. 가던 길을 거슬러 동작 나루터에서 다시 거룻배를 탔다. 살을 에는 강바람이 피부를 파고든다. 강바람이 세어서일까?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삼각산이 눈에 어른거린다. 다시 보마고 다짐했던 삼각산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반가움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한양에 도착한 이숙번은 의금부에 투옥되었다. 눈썹 같은 초승달이 의금부 용마루에 걸려있다. 싸늘한 냉기가 폐부를 파고든다. 밤은 깊어 가건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하늘에 별빛이 총총하련만 감옥에서는 볼 수 없다.
'피 끓는 청춘 스물다섯 나이에 주군을 만나 신명을 바쳤다. 사나이 대장부 여한은 없다. 주군이 용상에 있고 내가 감옥에 갇혀 있어도 후회는 없다. 이미 무인혁명에 목숨을 바친 몸. 내일 죽어도 여한은 없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그랬다. 이숙번은 이유를 모르고 옥에 갇혀 있는 것이 신체적인 형문보다도 더한 고문이었다. 이튿날 아침, 궁에서 임금의 하교가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