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관이 경고한 대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는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었다. 우선 청나라 병사들이 김억만과 청안을 보고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구조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김억만은 언젠가 호랑이가 옆에서 다가 왔을 때처럼 어디선가 살기를 느끼고는 했다. “억만이 이리 좀 와보게.” 배군관이 찌푸린 얼굴로 김억만을 손짓해 부르자 청안도 김억만을 놓칠 새라 붙어 따라갔다. “거참….” 배군관은 청안을 보며 혀를 차더니 김억만에게 고개를 숙여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저 여자를 포기할 텐가 목숨을 포기할 텐가?” “그게 뭔소리매?” 깜짝 놀란 김억만이 고개를 번쩍 들자 배군관은 손을 들어 김억만의 고개를 억지로 숙이게 한 다음 말했다. “통역관한테 얘기를 들었네. 자네가 저 여자를 보내는 걸 거부했다며?” “아 그 통역관 참 이상한 말을 퍼트리네! 저 여자가 지 발로 온 거 아닙매까! 참 내!” 배군관은 김억만의 등을 토닥거렸다. “알겠네 알겠어. 그런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네. 사구조다가 사냥을 가겠다고 하는데 우리 포수 한명을 데려가고 싶다고 하고서는 자네를 지목했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그 자식 참….” “괜한 일로 자네가 나쁜 일을 당하는 건 아무도 원하지 않네. 게다가 이는 자네만의 일도 아닐세. 요새 우리 대장과 사르프다 사이가 어떤지 알고나 있나? 적이 없어지자 이젠 그 놈이 심심한지 우리보고 트집을 못 잡아 안달일세. 사정이 이러하니 웬만하면 그 여자는 사구조다에게로 보내게나.” 김억만은 조금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배군관의 말이 틀린 것도 없어 바로 청안에게로 가 손짓 발짓을 하며 말했다. “넌 더 이상 여기 있을 수 없으니 그 청나라 쪼다인가 뭔가 하는 놈에게로 가라.” 청안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김억만을 바라 볼 뿐이었다. 김억만은 청안의 손목을 잡고 청나라 병사들이 서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 손을 놓았다. 그러나 청안은 마치 자철석 같이 김억만에게 다시 달려가 안겼다. “아 이거 이러면 안돼! 참내!” 김억만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청안을 밀쳐 냈지만 청안은 눈물을 흘리며 다시 김억만에게 안겼다. 사구조다가 다가오며 이 광경을 보고서는 쓴 웃음을 지었다. “이보게 조선포수. 오해는 말게나. 본시 내 저 여자를 데리고 가려 했던 것인데 자네가 가지 않으면 저 여자도 움직이지 않으니 어쩌겠나? 사냥할 채비를 차리고 나를 따라오게.” 김억만은 결국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심정으로 옷을 차려입고 화승총을 꺼내어 들었다. 그 모양새를 본 배군관이 버럭 화를 냈다. “이거 결국 일을 저지를 참인가! 이것 참 왜들 이러는가!” 배군관은 사구조다에게로 달려가 이를 따졌지만 사구조다는 오히려 차분히 배군관을 달래었다. “내 맹세하건데 조선 병졸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고자 함이 아니네.” “맹세라 하시었소?” “맹세하네.” “맹세를 쉽게 하시는 것 같구려.” 배군관은 김억만에게로 돌아가 주의를 당부했다. “사구조다가 아무 일 없으리라 말은 했지만 자네 혼자 보내는 게 못내 마음이 좋지 않네. 여차하면 앞 뒤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 오게나.” 김억만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무슨 일이나 있겠소.” 사구조다가 데리고 가는 인원은 총 12명이었다. 사구조다를 수행하는 두 명의 청나라 군관과 여덟 명의 청나라 궁수, 그리고 김억만과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청안이었다. 사냥을 떠나는 행렬치고는 수도 적거니와 묘하기 짝이 없는 구성이었다. “맹세는 꼭 지키시오!” 배군관이 강가에서 멀어져 가는 사구조다의 뒤에다 대고 힘껏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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