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그리 슬프니?” 김학령은 난데없는 여인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김학령의 눈앞에는 핏기 없는 얼굴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허리를 굽히고 쳐다보고 있었다. “으악!” 김학령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심장이 뒤집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여인의 모습이 너무도 생생했기 때문에 계속 공포에 질려 있지만은 않았다. “노, 놀랐지 않소.” 김학령은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며 여인에게 말했다. 여인은 괴괴한 웃음을 지으며 김학령을 노려보았다. “놀란 건 나야. 산 사람이 여기 왜 있니?” 김학령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여인의 말을 되물었다. “뭐…뭐라고?” “살아있는 사람이 여기 왜 있느냐고? 죽은 사람도 시끄러운 마당에 산 사람까지 울어대면 내가 어찌 편하게 쉬겠니?” 김학령은 혹시 자신이 꿈을 꾸거나 환각을 보고 있는 게 아닌지 싶어 스스로 뺨을 때려 보았다. “쯧쯧쯧…. 정신 나간 인간일세.” 김학령은 여인의 눈을 바라보고 저도 모르게 흠칫 뒤로 기어서 물러섰다. 여인의 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텅 비어 있었다. 김학령은 저도 모르게 새된 비명소리를 내었다. “으…으아악!” “거, 왜 그리 놀라나. 귀신 처음 보나?” “저, 저리 물렀거라! 훠이! 훠이!” 여인은 김학령의 모습을 보고 배를 잡고 웃어대었다. “으하하하. 진짜 귀신을 처음 보는 모양이네. 깔깔깔.” 김학령은 손에 집히는 데로 물건을 움켜쥐고는 여인에게 집어던졌다. 김학령이 잡은 것은 썩은 목침이었는데 여인의 몸을 맞추지 못하고 그대로 통과하고 말았다. 이로써 여인이 귀신이라는 건 김학령에게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너 아직 몰랐구나? 귀신은 누구 눈에나 보이는 건 아니야. 너 같은 사람의 눈에는 내가 보이겠지만 보통 사람의 눈에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거나 잘해야 오싹한 기분을 느끼는 게 다겠지.” 벽에 등을 딱 붙인 김학령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여인, 아니 귀신이 지껄이는 소리를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어쨌거나 내 목소리를 이렇게 잘 들어줄 수 있는 인간을 만난 건 하늘이 도왔다고 밖에 볼 수 없군. 귀신을 볼 수 있다고 해도 무당이 아닌 한은 자기가 헛것을 봤다고 여기고는 막상 얘기는 듣지도 기억하지도 않으려 하거든.” “그, 그래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냐?” “흐흣, 내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는 거냐?” 여인 귀신은 방안을 가볍게 한바퀴 돈 후 김학령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었다. 음습한 한기가 김학령의 얼굴에서부터 발끝까지 전해져오기 시작했다. “단지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는 안 될 텐데? 게다가 넌 얘기를 들어줄 자세조차 되어 있지 않아!” 김학령은 억지로 용기를 내어 뻗었던 다리를 접어 양반다리를 하고서는 귀신을 마주대하였다. “이, 이러면 되겠냐?” “그 덜덜 떠는 말투 좀 어찌할 수 없어?” 그 말에 김학령은 귀신 주제에 별걸 다 따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처음의 두려움이 다소간이나마 가시기 시작했다. 김학령은 크게 심호흡을 서너번 한 후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그래 네가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 “이제 좀 낫군 그래.” 귀신은 입가에 살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순간적이었지만 김학령은 그 웃음에서 귀신이 지닌 슬픔과 분노, 괴로움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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