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일), 갑자기 찾아온 겨울 날씨에 옷깃을 여미며 어깨를 움츠리면서도 전국 각지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출신 젊은이들은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았던 새벽부터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에 소재한 ‘용인시 축구센터’로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이기 시작한 인원은 1천여 명. ‘축구를 위해 태어났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달리 뭐라 설명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었다. 갑자기 찾아든 추위도 그들의 축구 열기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팀 중에는 멀리 대구에서 전세버스를 동원하고 올라온 팀도 있었고 가까운 평택에서 온 팀도 있었다.
전국 17개 팀 선수단과 서포터스들은 간혹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긴 했지만, 경기가 끝나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어깨를 다독거리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다들 시종일관 흥겨운 얼굴이었다.
이날 행사는 올해 2회째를 맞은 ‘이주노동자 메르데카컵(Migrant Merdeka Cup)’으로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되었다.
메르데타(Meredeka)는 인도네시아어로 ‘독립’이라는 뜻이다. 인도네시아는 우리나라와 같이 일본의 지배를 받다가, 1945년 8월 17일에 독립을 쟁취했다. 이번 대회는 인도네시아 독립을 기념함과 동시에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생활에서 겪는 아픔과 어려움을 서로 위로·격려하고 각국 이주노동자들과 연대와 친선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개최되었다.
“고국에 계신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제○○회 메르데카컵이 열리고 있는○○입니다.”지난 60~70년대 한국 대표팀의 단골 참가로 11번이나 우승하며 많은 축구팬의 기억에 남아 있는 메르데카컵. 늘 뻔한 멘트로 시작되었던 추억의 메르데카컵이 이주노동자들에 의해 한국에서 다시 열린 셈이다.
9시 인도네시아 대사관 측의 대회 축사를 시작으로 진행된 이번 대회는 야간 전광판을 켠 상태에서 결승전 승부차기까지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대회 MVP를 차지한 인도네시아 인천 FC의 완디(Wandi) 선수는 “일상에 지친 이주노동자들이 모처럼 애환을 달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며 소감을 대신했다.
이주노동자를 주축으로 한 팀들 외에 용인경찰서 축구동호회 등이 함께 한 이번 대회는 한국중부발전(주)의 협찬과 명선교회 의료 선교팀의 무료진료와 (사)한국해외봉사단원연합회(KOVA)의 통·번역과 진행 도우미 후원이 있었다.
앞으로 ‘이주노동자 메르데카컵’이 이 땅에 와 있는 40만 이주노동자들에게 좋은 추억을 안겨주는 대회로 더 큰 호응을 얻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번 대회는 용인이주노동자쉼터와 주한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공동체가 주최와 주관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