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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정상에 참성단이 있으며 기가 세기로 유명하다.
▲ 가을 마니산. 붉은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정상에 참성단이 있으며 기가 세기로 유명하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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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 단풍이 절정이에요! 당신, 일찍 퇴근할 수 있어? 오늘 산에 오르면 가을을 만끽하겠어!"

토요일(3일) 아침. 출근하는 나를 배웅하는 아내가 높은 하늘을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일에 쫓겨 산에 가자고 하면 늘 시큰둥하던 사람이 오늘은 별일이다.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우리 동네 뒷산인 마니산을 오르자는데 마다할 내가 아니다.

기대를 걸고 올라보자고!

우리는 간단한 배낭을 꾸려 마니산으로 향한다. 아내와 함께 하는 산행이 얼마만인가? 주말이라 도로 주변에 차량의 물결이 넘쳐난다. 동네 고샅길에도 노란 은행나무와 얼마 남지 않은 이파리 사이로 빨간 감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늦가을의 정취는 산 아래 마을까지 깊숙이 내려왔다.

아내가 발길을 재촉하며 시계를 보며 묻는다.

"너무 꾸물댔나? 벌써 3시네. 해떨어져 돌아오겠어요?"
"당신, 또 참성단까지 오르는 거 포기하려는 거지?"
"아냐! 너무 어두워지면 내려오기 힘들잖아요."
"해 지면 어때? 산 위에서 저녁노을 구경하면 더 좋지!"
"낙조요? 정말 그러네!"
"그러니까 싸묵싸묵 오르자고."

'저녁노을을 마니산 위에서 볼 수 있다?' 서해의 붉은 햇살로 가슴을 적실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발걸음이 가볍다.

가을 산행은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고 가는 또 다른 멋이 있다.
▲ 마니산 들머리. 가을 산행은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고 가는 또 다른 멋이 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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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 들머리 흙길에 낙엽이 수북이 쌓였다. 한걸음씩 옮길 때마다 낙엽 밟히는 소리가 부드럽다. 가을 산행의 매력은 곱게 물든 단풍을 보는 맛과 바삭거리는 낙엽 밟는 재미다.

늘 운동부족을 느낀다는 아내가 '단군로'를 따라 씩씩하게 앞서 나간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여보, 산은 기를 쓰고 오르는 것이 아니라고 하던데! 마니산이 어떤 산이야? 기(氣)가 세다고 하잖아. 천천히 쉬면서 기를 받고 가자고. 힘들지 않게!"

내 말 끝에 아내가 펑퍼짐한 바위에 앉으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훔친다.

마니산은 '민족의 영산(靈山)'이라 부른다.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해발 468m의 산으로 강화도에서 가장 높다. 기가 세기로 유명하여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정월 초하루에는 마니산 정상에서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새해 첫날, 마니산의 정기를 받아 일년 내내 행운이 가득하기를 염원하고 싶은 마음에서일 것이다. 붉게 솟아오르는 태양이 주변의 산과 바다와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산 아래 펼쳐진 산하가 한 폭의 그림

힘든 '깔딱 고개'를 넘어서자 시야가 확 트인 능선에 도착하였다. 산 아래 펼쳐진 산하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올 단풍은 유난히 색이 아름다운 것 같다. 마니산에서는 산과 들과 바다와 섬이 한눈에 보인다. 사진 속의 주인공이 아내다.
▲ 마니산 단풍. 올 단풍은 유난히 색이 아름다운 것 같다. 마니산에서는 산과 들과 바다와 섬이 한눈에 보인다. 사진 속의 주인공이 아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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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 화려함으로 채색된 산이 눈을 즐겁게 한다. 언제 이렇게 아름다운 색깔로 바뀌었을까! 한여름 짙은 녹색의 나무들이 저마다 색깔을 내며 화려한 색채 놀음을 벌이고 있다. 여태껏 제 속내를 숨겨놓고, 가을에서야 색깔을 드러낸 자연의 이치가 신비스럽다.

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골마을도 정겹다. 들판에는 어느새 가을걷이가 끝났다. 추수가 끝난 들판이 허허롭다. 이제 농부들은 수확의 기쁨과 함께 넉넉한 마음으로 편히 쉴 수 있다.

산 아래 펼쳐진 풍광이 눈을 즐겁게 한다.
▲ 들과 개펄과 바다와 섬. 산 아래 펼쳐진 풍광이 눈을 즐겁게 한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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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판처럼 정리된 들녘 끝으로 광활한 개펄이 보인다. 물이 빠진 드넓은 바다가 검은빛으로 반짝거린다. 강화개펄은 수많은 해양생물이 살고,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철새들의 기착지로 그 중요성이 인식되고 있다.

뭔가 소곤거리고 있을 것 같은 바다는 은빛 물결만 출렁이며 잔잔하다. 점점이 박혀 있는 작은 섬을 품어 안고, 오늘밤에는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조용한 바다에서 벌어질 이야기가 궁금하다.

산자락에 펼쳐진 들과 바다의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끝이 없다. 한참 넋을 놓고 있는데 아내가 길을 재촉한다.

"여보, 우리도 손잡고 갈까?"
"이사람, 남세스럽게!"
"저길 보세요! 손잡고 가는 보습이 보기 좋잖아요?"
"그럼, 당신 맘대로!"

아내가 슬그머니 팔짱을 낀다. 얼굴에 웃음이 묻어 있다. 졸지에 산행길이 수월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름다운 풍광과 바다를 바라보며 완만한 능선을 따라 참성단으로 향하는 발길이 마냥 즐겁다.

불쑥불쑥 나타나는 너른 바위와 모나지 않은 기암들이 가는 길을 멈추게 한다. 신이 능선에 잘 다듬어 놓은 바위를 제멋대로 박아놓은 듯하다. 어떤 신비함을 느낄 수 있어 살가운 마음이 든다.

발걸음에 힘이 들어가고 숨이 차오를 즈음, 계단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제 계단만 오르면 마니산 정상이 코앞이다.

사적 제136호이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철망으로 보호하고 있다.
▲ 참성단. 사적 제136호이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철망으로 보호하고 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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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니 참성단이 보인다. 참성단은 민족 시조인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았다고 전해지는 제단이다. 신령스런 마음이 담겨 있는 곳이라는데 창살 속에 갇혀 있어 애처롭다. 몇 년 전만 해도 참성단은 누구나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찾다보니 문화재 훼손을 우려하여 철망으로 보호하고 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산 아래 펼쳐진 풍광에 어찌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정상의 헬기장. 산 아래 펼쳐진 풍광에 어찌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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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 정상이 되어버린 헬기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산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또, 힘든 산행의 끝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묻어 있다.

마니산 정상 표시 팻말을 붙잡고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얼굴이 환하다.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저마다 부산하다.

하산 길에 바라본 낙조, 또 하나의 즐거움

"여보, 벌써 5시예요! 우리 내려가야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그러고 보니 해가 떨어질 때가 머지않았다. 길을 재촉하였다. 해는 아직 남아 있지만, 해거름에 산 속은 순식간에 어두워지므로 서둘러야겠다.

산에 오를 때의 기대감과는 달리 내려올 때는 허탈함이 있다. 뭔가 모를 쓸쓸함이 밀려온다. 땀이 식어 산바람에 한기가 느껴진다. 오를 때 못 느꼈던 다리도 팍팍하다.

그런데 하산 길에 펼쳐지는 장엄하게 펼쳐지는 낙조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좀 전까지 느낀 쓸쓸함도 한순간! 자연이 펼치는 멋진 풍광에 엄숙해진다.

산을 내려오다 산 능성에서 바라본 낙조가 황홀함을 연출하였다.
▲ 마니산 해넘이 산을 내려오다 산 능성에서 바라본 낙조가 황홀함을 연출하였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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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있는 붉은 빛깔을 모두 모아 한 순간에 서쪽 하늘을 붉은 기운으로 삼켜버린다. 말랑말랑한 둥근 해는 어느새 형형할 수 없는 여운을 남기고 바닷물에 풍덩 빠져버린다.

저녁노을로 마니산의 가을이 더욱 붉게 타는 듯싶다. 가슴까지도 빨간 빛으로 적신다. 절로 탄성이 나온다.

떨어지는 해는 곧 어둠을 몰고 올 것이다. 그런데 어둠 속에 묻힌 해가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비스러운가! 자연의 섭리다. 어떤 어려움에도 희망을 잃지 않아야한다는 이치를 웅변으로 가르쳐주는 것 같다.

해넘이의 아름다움에 젖어 말이 없던 아내가 미소를 머금으며 기분 좋은 말을 던진다.

"여보, 우리 노년도 저 노을처럼 찬란한 빛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산행 참 멋졌어요."

덧붙이는 글 |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응모글입니다.



태그:#마니산, #가을단풍, #서해낙조, #가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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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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