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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2일 월요일,
순례 10일째, 22km.
오전 7시 출발, 오후 12시 40분 도착.

그다지 정겹지 못했던 숙소 나바렛, 어쩌면 오래간만의 혼자됨이 불안했는지 모른다. 혹은 너무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전쟁처럼 코를 골아대는 앞, 뒤, 옆, 천지사방! 내내 잠을 설치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6시 반쯤 새카만 방 안에서 입에 랜턴을 물고 바스락거리며 짐을 쌌다.

식당으로 내려와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길에 올라선 것이 7시 정도, 나바렛을 빠져나와 다음 마을인 '벤토사Ventosa'로 향하는 길, 눈앞에는 새벽달이 구름과 함께 뉘엿뉘엿 서편으로 향하고 있었다. 순례의 첫날부터 꼬박꼬박 챙겼던 묵주기도로 아침을 열었다. 이제 환희의 신비는 다 외웠다. 찢어놓은 기도구절을 쳐다보지 않고도 기도를 이어갈 수 있었다.

나바렛에서 아조프라까지 순례중 도착하는 마을에는 언제나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 나바렛에서 아조프라까지 순례중 도착하는 마을에는 언제나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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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쯤 걷자 구름 가득한 하늘이 부옇게 밝아왔다. 그리고 금세 새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길가에는 끝없는 포도밭이 늘어서 있었다. 몇 달 후 보랏빛으로 주렁주렁 달릴 포도송이들을 상상했다. 가을에 걷게 되면 간식걱정은 할 필요도 없겠다.

쉼 없이 이어지는 길 내내 거의 혼자 걸어 좋았고, 또 많은 생각을 했다. 근데 거의가 ‘점심 뭐 먹지, 저녁은 어쩔까, 내일은 어디까지 가지’, 그런 것들이었다. 한국을 떠나 14일째가 되었고 돌아가기까지 52일이 남았으며 순례는 10일이 지났다. 이제 1/4 구간,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문득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사는 것도 걷는 것과 같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좋아하는 것, 행복한 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조프라 가는 길 깎아지른 절벽과 강물이 흐르는 곳에서
▲ 아조프라 가는 길 깎아지른 절벽과 강물이 흐르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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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목적지 ‘아조프라Azofra'를 한 시간쯤 앞두고 무심한 트럭 한 대가 먼지바람을 날리는 황량한 벌판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드레드 펌이 멋진 구릿빛 피부의 젊은 여성 순례자와 어머니뻘 되는 아주머니였다. 밀바와 마리사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온 모녀 순례자들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내가 이번 봄에 세례를 받았다고 하자 본인들은 Methodist, 감리교도란다. 그리고 그 짧은 한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따뜻하고 고마운 순례자 친구들이었다는 느낌은 여전히 강렬하다.

아조프라 순례 가운데의 작은 마을 Azofra의 초입,
▲ 아조프라 순례 가운데의 작은 마을 Azofra의 초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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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나는 숙소를 찾으러 향하고, 밀바와 마리사는 점심을 먹고 길을 계속 걷기로 했다. 우리는 아조프라의 길 한가운데서 사진을 한 장 찍고 서로를 껴안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작은 동네에 어울리지 않게 으리으리했던 숙소에 들어서자 오스피탈레라 아주머니가 주변을 청소하고 있었다. 마당 한 가운데에는 로그로뇨에서 보았던 것과 닮은 작은 연못과 분수가 청량한 물소리를 내고 있었다. 왠지 기분 좋은 곳이었다.
아조프라 순례자 숙소 숙소의 전경
▲ 아조프라 순례자 숙소 숙소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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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받은 숙소는 걷기 시작하고 처음 만난 단층침대가 양편에 자리잡은 2인 1실이었다. 이층침대가 점점 겁나기 시작했던 나는 이 숙소가 아주 마음에 들어 ‘알베르게의 호텔’이라고 불렀다. 샤워와 빨래를 마치고 마당의 빨랫줄에 침낭까지 다 걸쳐놓고,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다.

부엌이 꽤 멋들어지게 되어 있어서, 시에스타 시간 전에 상점에 들러 요것조것 샀다. 점심을 만들어 먹을 생각이었다. 한 쪽에서 면을 삶는 사이에 팬에 양파와 해바라기씨앗을 볶은 후 우유를 부어 ‘우유소스 파스타’를 만들었다. 꽤 실험적인 첫 파스타는 오묘한 맛이었고, 구색을 맞추기 위해 사왔던 빵은 마치 종이를 씹는 듯 퍽퍽한 맛이었다. 마당에 펼쳐진 파라솔에 한 상을 차려 남김없이 비웠다. 그리고 속속 도착하는 순례자들에게 ‘올라!’를 던졌다.

걷기만 하면 모든 것이 준비된 이곳에서, 나는 오늘 몇 유로를 쓰지도 않고 호텔보다 편한 잠자리, 맛있는 점심, 그리고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스페인의 태양이 살갗을 새카맣게 태우고 나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서 어젯밤 설친 잠에 꾸벅꾸벅 졸다, 걷다 만나는 사람들, 나누는 이야기, 분명 어설픈 한국식 영어를 쓰고 있을 나인데 그래도 듣겠다고 들어주겠다고 귀를 기울여주고 천천히 한 마디씩 얘기해주며 응원해주고 껴안아주고…, 고맙기만 하다.

욱신거리는 발목을 마당의 연못에 담그기도 하고, 오래간만에 숙소에 있는 인터넷을 통해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지난 10여일의 순례를 일기장에 정리했다. 점점 할 일이 떨어지고 나른해지는 가운데 문득 마을 안내 표지판에서 이 동네에 식물원이 있다는 것이 기억났다. 갈까, 말까?

숙소에 놓인 방명록을 들춰보다 한국어로 ‘조금 걸어가면 나오는 식물원에서 장미 향기를 맡으며 순례의 피로를 풀어보시길’이라는 기록을 읽었다. 향기로운 장미의 내음…! 이 매혹적인 구절에 결심했다. 언제 또 이곳에 올 수 있을지 모르니, 한 번 가 보자고. 1.5km라면 먼 거리는 아니니 그냥 지금 신고 있는 슬리퍼를 끌고 다녀와도 좋겠지? 별 생각 없이 가벼운 옆가방을 메고 길을 나섰다. 마치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동네 마실 나가듯이.

시계는 5시 전후, 도착하면 시에스타 시간이 끝날 것이란 예상으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을을 빠져나가는 검은 아스팔트길을 따라 걸었다. 웬 허름한 천막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집시들일까? 그리고 양편으로는 끝없는 밀밭! 햇빛은 걸을 때보다 훨씬 더 사납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가까울 줄 알았던 식물원은 나타날 생각을 않고, 등 뒤로 따끔거리는 햇빛은 이러다가 길바닥에 눌어붙어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엇보다 발바닥이 이상했다. 식물원은 나타날 낌새가 없고, 모든 결심이 후회가 되어 몰려오기 시작했다. 따끔거리는 발바닥을 끌고 겨우 도착한 식물원은…, 뒤통수를 후려갈길 정도의 것이었다.

리오하 식물원 작지만 아름다운 식물원
▲ 리오하 식물원 작지만 아름다운 식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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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리오하 지방의 유일한 식물원이라는 이 작은 밭(!)에는 갖가지 나무와 꽃, 수상생물 등이 아기자기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햇빛에 지치고 물집에 질려버린 내게는 ‘대체 뭘 보겠다고 여기까지 온 거야?!’일 뿐이었다. 5유로를 입장료로 내고 겨우겨우 구경을 했다. 그런 가운데에도 장미밭은 정말 아름답고, 또 향기로웠다. 프랑스 아비뇽의 시낭크 대수도원에서 보기를 기대했던 라벤더도 볼 수 있었다. 아아, 그렇지만… 나는 이미 돌아갈 일이 걱정이었다.

리오하 식물원 내부 고요한 정원을 거닐며
▲ 리오하 식물원 내부 고요한 정원을 거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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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장의 사진을 찍고, 돌아가기로 작정했다. 숙소로 향하는 길은 햇빛을 맞대고 걸어야 했다. 물집을 만든 신발과 나의 쓸데없는 모험심에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결국 몇 분 걷지 못하고 슬리퍼를 벗고 맨발로 걸었다. 새카만 아스팔트는 잔뜩 달아올라 물집 잡힌 부분을 지지는 듯했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세 사람의 동네 아주머니를 졸졸 뒤따라 걸었다. 그리고 뒤에서 맹렬히 따라오는 밀 수확 차를 옆길로 피하며 차에서 흘러나온 밀 껍데기가 풀풀 날리는 길 위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멍한 채로 걸음을 계속했다.

겨우 도착한 숙소에서 발을 씻고 들여다보니 여전히 아스팔트가 거뭇거뭇한 발바닥에 500원짜리 동전만한 물집이 잡혔다. 장미향기와 맞바꾼 영광의 상처였다. 급히 바늘에 실을 꿰어 물집을 터뜨렸다. 책으로만 읽고 얘기로만 들었던 물집 터뜨리기를 해 본다고 좋아하면서도 내일 걸을 일이 걱정되었다. 한 걸음만 내딛어도 불붙듯이 타는 것만 같았다.

문득 ‘생장에서 다시 태어나 시작되는 하루하루의 순례는 너의 과거와 맞물린다’고 말했던 피터가 떠올랐다. 오늘로서 10일째, 199km. 그리고 얻게 된 물집, 과연 어떤 의미일까. 머릿속은 나의 어린 시절을 더듬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것이 퍽 답답한 밤이었다. 순례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집에 가고 싶어졌다.


#산티아고가는길#스페인#도보여행#성지순례#카미노데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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