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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순왕후를 배경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김귀주. <이산> 제41회 방영분.
정순왕후를 배경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김귀주. <이산> 제41회 방영분. ⓒ MBC

만약 <이산>이 18세기가 아닌 20세기를 소재로 한 드라마였다면,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아직도 생존해 있는 드라마라면, 그 누구보다도 이 드라마에 대해 가장 강력한 불만을 품었을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김귀주 영감’이 그 장본인이다. 

<이산> 속의 김귀주는 여동생인 정순왕후에게 빌붙어 권력을 행사하고, 어떻게든 세손을 죽여 없애려 하며, 머리가 둔해 일단 사고부터 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마치 삼국지의 장비를 연상시키는 새까만 턱수염과 아무 생각 없는 발언들은 그런 ‘단순·무식’ 이미지에 한층 더 힘을 실어주는 효과를 낳고 있다.

바로 그 같은 드라마 속의 이미지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김귀주(1740~1786년)가 이 드라마에 대해 가장 강력한 불만을 품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살아 있는 인물이라면 말이다. 혹 그의 6, 7대 후손들이 지금 어딘가에 살아 있다면, 그분들 역시 매주 월·화 밤 10시만 되면 심경이 매우 불편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귀주가 그처럼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이산> 속 김귀주의 이미지가 실제 김귀주의 이미지와 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김귀주는 자신이 세손을 그처럼 음해하려 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처럼 단순·무식의 전형으로 묘사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실제의 김귀주는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었을까? 그의 참모습은 어떠했을까?

위에서 <이산> 속 김귀주의 이미지가 ▲ 여동생인 정순왕후에게 빌붙어 권력을 행사하고 ▲ 어떻게든 세손을 죽여 없애려 하며 ▲ 머리가 둔해 일단 사고부터 치는 인물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여기서 그가 여동생인 정순왕후에게 빌붙어 권력을 행사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김귀주 자신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든든한 백이 없었다면, 1761년에 아직 과거에도 합격하지 않은 22세의 청년 김귀주가 ‘극비에 부쳐진 사도세자의 평안도여행’을 문제 삼는 서한을 영조에게 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국왕이 비밀에 부치라고 한 사건을 대담하게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여동생의 권력을 의식하지 않고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런데 김귀주가 어떻게든 세손을 죽여 없애려 했다거나 머리가 둔해 일단 사고부터 치는 인물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좀 더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먼저, 이산의 등극 이전에 김귀주는 세손을 죽이려 하기보다는 세손을 보호하는 편에 서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귀주가 정조 즉위 이전에 주 타깃으로 삼은 대상은 세손이 아니라 세손의 외할아버지인 홍봉한이었다. 김귀주는 노론 외척으로 구성된 남당의 리더로서 역시 노론 외척으로 구성된 북당의 홍봉한과 대립하고 있었다.

북당은 영조의 탕평을 지지한 쪽이고, 남당은 명확히 탕평을 반대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렇다고 탕평을 지지했다고도 보기 힘든 쪽이었다. 그리고 정조 즉위 이전에는 북당이 정국을 주도하고 있었고, 남당은 그에 도전하는 입장에 있었다.

상황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김귀주로서는 세손을 공격하기보다는 홍봉한을 공격하는 것이 보다 더 시급한 일이었다. 정조 즉위 4년 전인 1772년에 김귀주가 ‘홍봉한을 제거하라’는 상소문을 올린 사실에서도 드러나는 바와 같이, 김귀주에게는 세손보다는 홍봉한이 최대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다.

한편, 김귀주는 세손에 대해서만큼은 보호자로서의 입장을 자처하고 있었다. 이 점은 김귀주의 남당이나 홍봉한의 북당이나 다 마찬가지였다. 남당이나 북당이나 모두 ‘이산이 죄인 사도세자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합법적인 왕위계승권자’라는 점에 대해서만큼은 인식을 같이 하고 있었다.

이산 자신은 남당과 북당 모두 정략적인 발상에서 자신의 보호를 주장하고 있을 뿐 그것이 진심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김귀주와 홍봉한이 서로 상대방을 적대시하면서도 세손만큼은 보호하려 했다는 점이다. 물론 김귀주가 정조를 위협한 일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조 즉위 이후의 일이었다. 

이처럼 실제 역사에서 김귀주는 홍봉한과 대립하는 한편 세손을 보호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산>에서는 김귀주가 세손을 끌어내려서라도 폐위시키려 한 인물이었던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나는 그렇게까지는 안 했는데 …….’ 김귀주는 그래서 불만을 가질 만하다.

엄밀히 말하면, 김귀주가 아니라 홍인한(세손의 작은 외조부)이 세손을 보다 더 음해했는데도 <이산> 속의 홍인한은 그저 단순 가담자로 묘사되고 김귀주가 주범으로 묘사되고 있으니, 김귀주로서는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홍인한, 당신이 책임져!”라고 김귀주는 외치고 싶은지도 모른다.

 <이산>에서 세손 음해자라는 누명을 쓰고 있는 김귀주.
<이산>에서 세손 음해자라는 누명을 쓰고 있는 김귀주. ⓒ MBC


다음으로, 김귀주의 ‘단순·무식’ 이미지에 관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삼국지의 장비를 연상시키는 검은 수염을 단 김귀주는, 입에서 내뱉는 말마다 한없이 단순·무식하기만 하다. 세손을 향해 돌격할 때에 분명 몸보다 머리가 먼저 나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 김귀주의 머리는 ‘생각하는 머리’가 아니라 그냥 ‘몸에서 가장 딱딱한 부위’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누가 생각하더라도 김귀주는 과거 시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정순왕후의 후광에 힘입어 관직을 받았을 것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김귀주는 어려서부터 문장가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이미 10대 때부터 충청도 일대에서는 알아주는 문장가였다고 한다. 또 그는 시류에 아부하지 않는 청류파 인사로 자처할 정도로 어느 정도는 ‘대쪽 같은’ 선비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정조 즉위 13년 전에 과거 합격을 통해 정식으로 관계에 오른 인물이었다.

이처럼 소문난 청년 선비였던 김귀주는 자신이 드라마 <이산>에서 한없이 단순·무식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내심 불만을 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살아 있다면 말이다. 장비를 연상시키는 그 ‘무식한’ 수염만이라도 떼어내 주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 드라마 <이산>에서는 왜 그처럼 김귀주에게 허무맹랑한 ‘죄목’을 덮어씌우고 있는 걸까? 아마도 다음과 같은 고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김귀주가 사도세자의 죽음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므로 그가 사도세자의 아들인 세손 이산에 대해서도 적개심을 가졌을 것이라고 연결시키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둘째, 김귀주가 정조 즉위 이후에 정조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므로 그가 그 이전에도 정조에 대해 비판적이었을 것이라고 연결시키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셋째, 홍인한보다는 김귀주를 세손의 라이벌로 설정하는 것이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가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이산의 작은 외할아버지인 홍인한이 세손의 등극을 가장 극렬하게 반대한 인물이지만, 외할아버지와 손자를 대립구도에 놓는 것도 어색하고 또 나이 차이가 그렇게 많은 두 사람을 대립구도에 놓는 것도 어색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산>에서 세손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정순왕후·김귀주·정후겸이 세손과 나이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점을 볼 때에, 세손의 동세대 중에서 그의 라이벌을 찾아내려 한 <이산> 작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김귀주(세손보다 12세 연상)도 덩달아 세손의 즉위를 방해한 인물이라는 혐의를 받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12세라는 나이 차이도 그리 적지 않은 나이 차이기는 하지만 다른 정적들에 비해 세손과의 나이차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 때문에 김귀주는 그런 불명예를 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김귀주는 자신이 좀 더 일찍 태어나지 못한 점 혹은 자신이 훨씬 더 늦게 태어나지 못한 점을 후회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이산>에서 과도한 불명예를 덮어쓰지 않을 수 없는 결정적 이유는 이것이다. 그는 이산 부자에게 죄를 많이 지은 인물이다. 이산의 아버지를 죽이는 데에 가담했고 또 즉위 이후의 이산을 방해한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산의 즉위과정도 방해하지 않았느냐?”라는 혐의마저 덩달아 덮어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연쇄살인사건을 저지르다가 체포된 범인은 자신과 전혀 관계 없는 엉뚱한 살인사건에 대해서도 일단 혐의를 받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김귀주는 드라마 <이산>을 원망하기보다는 자신이 이산 부자에게 저지른 다른 죄목들을 먼저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산#김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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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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