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자전거 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끼리 동호회를 조직하여 정기 모임을 운영하기도 하면서 이제 자전거는 우리나라에서 대중교통의 한 형태로 자리매김하는 듯하다.
책 <서울을 여행하는 라이더를 위한 안내서>(2007년 8월)는 저자 홍은택씨가 자전거로 서울 광화문에 있는 회사에 출퇴근하면서 체험하는 온갖 이야기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원래 <한겨레신문>에 연재하던 내용인데 책으로 묶으니 마치 서울에 대한 일종의 자전거 안내서인 듯하다.
한국에서의 오랜 직장 생활을 접고 미국행을 선택해 자유로운 삶을 누리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저자의 인생은 또다시 지하철을 타고 조는 반복적 일상으로 바뀐다. 이 삶을 바꾸기 위해 다시 꺼내든 자전거. 그는 자신의 애마와 함께 새로운 서울의 아침을 맞이한다.
"나는 지하철 투숙객이 된 나를 더 이상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몽롱한 시간으로 떠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매서운 바람이 불던 어느 겨울날 나는 지하철을 타지 않았다. 발코니에서 자전거를 꺼냈다. 나는 어렵게 터득한 여행자로서 정체성을 버리고 싶지 않았고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이렇게 시작된 자전거 출퇴근은 비가 오는 날과 눈이 오는 날에도 이어지는 대단함을 보인다. 기자 특유의 집념과 해박한 정보로 서울에 대한 안내를 겸비하는 글들은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서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이에게도 호감을 준다.
처음 출퇴근을 하던 날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이래저래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자주 다니다 보니 시간도 단축되고 서울의 다양한 모습을 새롭게 볼 수 있어 좋다. 서울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기도 하고, 난개발에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하면서 저자는 스스로 잊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신기하게 등장한 잠수교가 홍수가 와서 가라앉는 모습을 보며 흥분했던 일, 신촌운수 버스를 타고 방황하며 고교 시절을 보냈던 일 등 그에게 자전거 출퇴근은 새로운 과거로의 여행을 선사한다. 자전거를 타고 잠수교나 한남대교를 건너면서 30년 전 어린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란 얼마나 흥미진진할까!
여러 어려움 속에 자전거 출퇴근의 달인이 된 그자전거를 타며 서울의 역사만 훑어보는 건 아니다. 순조롭지 않은 첫출발부터 이 도시에서 자전거 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하며 그는 자전거 문화에 대해 다시금 조명한다. 자전거 주행 규제법에 따르면 자전거 운전자는 도로교통에 관한 법령을 준수하여 자동차의 통행에 방해가 되거나 위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자동차 도로를 이용해야 하는지 아니면 인도를 이용해야 하는지 애매모호하다. 법상에는 인도 주행은 위법이며 자동차 도로를 이용하도록 되어 있는데 실제 자전거를 끌고 자동차 도로를 가보면 위험천만한 일이 한둘이 아니다. 소위 말하는 자전거족들은 사실 꽤 큰 위험을 감수하며 출퇴근을 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차로에서 푸른 신호등을 기다릴 때는 요리조리 자동차들 사이를 파고들어 맨 앞에 앞을 가로막고 운전자들의 눈엣가시가 되어야 한다.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칠 수 있으면 더 좋다. 그러다 푸른 신호등이 켜지면 잽싸게 도로 가장자리로 피하면서 운전자에게 예의를 갖춘다."이만하면 눈치 9단이 아니라 100단 정도는 되어야 자전거를 끌고 출퇴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자전거를 끌고 서울 시내에 폭넓게 자리한 교차로들과 고가도로를 건너는 일은 불가능하다. 저자 여러 번의 위험을 겪지만 그래도 재치있게 운행한 끝에 자전거 출퇴근의 달인이 된다.
수서에서 광화문까지 전철로도 50분 거리인데 자전거를 타고 50분 만에 갈 수 있다면 참 매력적이지 않겠는가. 지하철에서 졸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운동도 하고 세상 구경도 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단, 눈 오고 비 오는 날, 회식 후 술자리가 있었던 날 등은 여러 곤란을 극복할 만한 능력을 겸비해야 한다.
그가 자전거 타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여러 위험과 고비를 겪으면서도 굳이 자전거 타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책을 읽는 내내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지만 저자는 뭔가에 집착하여 끝까지 달성하려는 욕구가 남보다 강한 것 같다. 그래서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도 씩씩하게 해내지 않았을까 싶다.
회사를 광화문에서 분당으로 옮기면서 그의 자전거 출퇴근은 참 단조로워진다. 수서에서 분당까지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를 그냥 쭉 30분 정도 따라가면 회사가 나오니 얼마나 갑갑했을까. 그래서 그는 레이서로의 변신을 꿈꾸며 새로운 도전 점을 찾는다. 프랑스에서 열리는 자전거 대회에 참가하는 것인데 의외로 일본에서 험난한 예선전을 치르며 지금은 중단한 상태라고 한다.
그의 새로운 도전은 어떤 것일까? 기대되고 궁금하다. 이 정도의 집념이라면 언젠가 다시 자전거를 끌고 어딘가로 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은연중에 생겼다. 몇 년 후 그의 자전거가 중국 만리장성에 등장했다거나, 아니면 태백산맥을 누비고 있다고 나오지 않을까?
어떤 여행이든 여행은 참 신비스러운 느낌을 준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치 내가 자전거를 타고 서울을 여행한 기분이다. 구석구석 살아 있는 서울의 역사와 자전거에 관한 이야기가 어우러져 큰 울림을 만든다. 자전거 출퇴근 족이 쓰는 서울 안내서는 일반적인 안내서들에 비해 더 끈끈하게 이 도시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