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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관을 찾아온 정명수가 세자와의 독대를 청했다.

"이번 그믐께나 다음달 초에 칙사가 나갈 것이오. 조선에 전염병이 창궐한다는 소문을 듣고 용장군은 나가지 않을 것이오.  마장군과 형부의 관원 한사람 그리고 몽고인 한사람이 칙사로 내정되었소. 역관으로는 나와 김돌시 한보용이 따라 갈 것이오. 이것은 아직 공개할 수 없는 비밀이나 내가 조선 사람이기 때문에 미리 귀띔해 주는 것이오."

정명수는 짐짓 생색을 냈다.

"이보시오 정역관! 이렇게 촉박하게 알려주면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란 말이오?"

정명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제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

"세자는 이곳 사정을 몰라서 그러시오?"

세자관에서는 첩보망을 가동하여 언제 누가 사신으로 나갈 것인지를 탐문했으나 포착되는 정보가 자꾸 바뀌어 종잡을 수가 없었다. 청나라 사람들에게 조선 사신은 커다란 이권이 걸려있는 중요한 일이었다. 홍타이지 휘하의 십왕과 장수들은 자기 계보의 사람을 보내려고 막후에서 암투를 벌이고 있어 인선에 난항을 거듭하고 있었다.

"1~2년 전부터 국력을 다 기울여도 미치지 못하는데 이렇게 말미가 없으면 준비는커녕 원접사신이 의주에 이르지도 못할 것이오. 날짜를 다시 잡을 수 없겠소?"
"우리는 은전을 베풀기 위하여 칙사를 내보내는데 조선은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것 같소. 날짜는 황제의 명이오. 변경할 수 없소. 칙사들에게 식량을 싸가지고 나가라고 전할까요?"

정명수의 입가에 웃음이 흘렀다. 조롱이다.

"그렇게 곡해 하시면 오해입니다."
"칙사 나가는 것은 본국에서 맞이하도록 하고 세자는 여기에서 책봉 준비를 하도록 하시오."

명령 아닌 하명이었다. 심양의 장계를 받은 조정은 초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청나라에서 사신이 아닌 칙사가 온다. 그것도 1편이 아니라 3편이라 하니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이경증을 원접사, 이경직을 관반(館伴)으로 임명한 인조는 즉시 의주로 떠나라 명하고 비국 당상회의를 소집했다.

"청나라 사신 행차가 머지않아 당도한다는 말을 듣고 몹시 놀랐다. 경들의 뜻은 어떠한가?"

당상관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장차 어떻게 대처하면 좋겠느냐고 묻지를 않는가?"

그래도 묵묵부답이었다. 특별한 대책이 있을 리 없었다.

 압록강. 압록강 표지석
▲ 압록강. 압록강 표지석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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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을 건너온 청나라 사신은 의주에서 원접사의 영접을 받았다. 의주관에 진수성찬을 차리고 기생을 불렀다. 춤과 노래가 이어지고 질펀하게 먹였다. 융숭한 대접이었다. 이 때 부터 '칙사 대접'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의주관에서 하룻밤을 묵은 사신 일행은 한성으로 가는 길목 고을 관아를 초토화시켰다. 있는 대로 먹고 마시고 분탕질을 쳤다. 인원도 많을 뿐 아니라 조선 사람을 노예 취급하는 그들을 수발하느라 관아의 노복들이 쓰러지는 사태가 속출했다.

그들은 좋아 보이는 물건은 보이는 대로 약탈했다. 돌아갈 때 가져가기 위하여 대동역에서 말 2필, 어천역에서 말 1필, 양재역에서 말 4필을 빼앗아 안주에 보관시킨 사신 일행이 용강에서는 아예 허리띠를 풀었다.

"조선 여자들 예쁘다 해, 성경(盛京)을 떠나온 지 오래됐다 해."

사신 숙소에 여자를 들여보내라는 것이다. 마지못해 평안감사가 관기들을 불러 모았다.

"나라를 위하는 일이다. 한번만 수고해다오."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네까? 저놈들은 우리 강토를 짓밟고 백성들을 죽인 원수들입네다. 우리는 죽으면 죽었지 오랑캐를 모실 수 없습네다."

평양기생들의 반발이 거셌다.

통사정 하는 평안감사

"우리라고 무슨 신바람이 나서 저들을 접대하겠느냐. 너희들 마음을 다 안다. 모두가 나라를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니 도와다오."

'평양감사도 저하기 싫으면 그만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좋은 자리다. 조선 팔도 수령방백 중에서 가장 선호하는 자리다. 평소엔 기생 따위는 희롱의 대상일 뿐 거들떠보지도 않던 평안감사가 기생들을 붙잡고 통사정했다.

겨우 설득하여 기생들을 들여보냈다. 마지못해 몽고 출신 사신 숙소에 들어간 설향은 곰곰이 생각했다.

'왜란 때 진주 기생은 적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했다지? 대동강에서 연회라도 베풀면 좋으련만 나에게는 그런 기회마저 없구나. 원통하다. 나라의 원쑤, 저 돼지 같은 놈의 수청을 드느니 차라리 죽겠다.'

설향은 사신이 몸을 씻으러 나간 사이 목을 매었다. 다가올 열락의 순간을 상상하며 싱글벙글 돌아온 사신은 기겁을 했다. 어여쁜 기생은 간 곳이 없고 머리를 풀어헤친 형상이 대들보에 매달려 있지 않은가. 바지춤을 부여잡고 밖으로 나온 사신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여자는 도망가고 귀신이 매달려 있다 해."

깜짝 놀란 노복들이 뛰어 들어갔으나 설향은 절명했다. 아닌 밤중에 소동이 벌어졌다. 분노한 사신은 평안감사에게 발길질을 하며 폭력을 행사했다. 감사와 수령이 사주했다는 것이다. 극구 변명했으나 청나라 사신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사신은 돌아가는 길에 심양으로 끌고 가겠다며 공갈 협박을 했다.  

원접사와 함께 사신을 수행하며 남행하던 비국 당상관이 급히 장계를 보내왔다.

"역관에게 탐문해 보니 '중전이 친히 받는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놀랍고 괴이합니다. 대신으로 하여금 홍제원에 달려가 힘을 다해 논변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중전 책봉을 중전이 친히 받아라'라는 것이다. 명나라와의 관계에서도 없던 법도다. 깜짝 놀란 인조는 최명길을 홍제원에 급파했다.

홍제원.  홍제원 표지석
▲ 홍제원. 홍제원 표지석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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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명이 내려졌지만 영(令)이 서지 않았다

"여관(女官)을 거느리고 궁중에서 예를 행하도록 해주시오."

청나라가 순순히 응했다. 이윽고 청나라 사신이 모화관에 도착했다. 임금이 친히 나아가 영접했다. 궁으로 돌아온 인조는 대소신료들을 다급하게 불렀다.

"이경석이 고쳐 지은 비문(碑文)을 어서 빨리 청나라에 보내야 곤란한 일이 없을 것 같다.서사관(書寫官)은 속히 인쇄하여 올리라."

임금의 명이 내려졌지만 영(令)이 서지 않았다. 서사관이 글을 쓰고 전각장이 목판에 글을 새겨야 목판본이 나오는데 서로 미루고 붓을 잡지 않았다.

"뭣들 하는 게냐? 너희들이 진정 나라의 녹을 먹는 서사관들이란 말이냐?"

임금이 역정을 냈다. 사신은 모화관에 와있지 인조는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선득 나서는 신하가 없었다.

"오준으로 하여금 쓰게 하라."

딱 찍어서 지명하니 도리 없이 오준이 붓을 잡았다. 붓을 잡은 오준은 한탄했다. 이러한 필적을 남기기 위하여 붓글씨를 배운 것이 아니었는데 나라의 치욕을 공덕이라 칭송하는 명문(銘文)을 쓰게 되다니 붓글씨를 배운 것이 한스러웠다.

"지난번 영창대군의 비문을 보아하니 아주 훌륭한 글씨였다. 전문(篆文)은 신익성으로 하여금 쓰게 하라."

신익성은 당대 전서(篆書)의 일인자였다. 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영창대군의 관봉을 회복하고 예장하도록 명했다. 인조반정의 명분이 인목대비 폐모론과 영창대군의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비문을 쓴 사람이 신익성이다.

"전하께서 욕을 당하시던 날 신은 죽지 못하여 항상 깊은 한을 품었습니다. 결단코 병든 몸으로 이 일을 담당할 수 없습니다."

청나라 사신은 도성에 들어와 있는데 이를 어찌할 것인가.


#칙사#삼전도#평안감사#소현세자#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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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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