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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윤여표 식약청장과 이봉화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이 29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멜라민 사태와 관련한 정부의 식품 안전관리대책을 보고하고 있다.
 윤여표 식약청장과 이봉화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이 29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멜라민 사태와 관련한 정부의 식품 안전관리대책을 보고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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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건 저희 부서 담당이 아니라서. 식품관리과로 문의해 보시죠."
"에이~ 아니에요. 수입식품 통관단계의 검사문제는 수입식품과 담당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아래 식약청) 공무원들의 '전화 돌리기' 핑퐁게임이 기자의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것 같았다. 나흘 만에 '적합' 식품이 '부적합' 식품으로 둔갑하는 등 식약청의 오락가락 행보 때문에 소비자들의 불만은 폭증하는데, 정작 식약청 공무원들은 '내 소관이 아니면' 무탈한 듯보였다. 주말 내내 비상 동원됐다고 하소연했지만 모두 볼멘소리로 들렸다.   

식약청은 지난 26일 멜라민 비검출 123개 '적합' 품목을 발표했다. 이 명단에는 동서식품㈜이 중국에서 들여온 '리츠 샌드위치 크래커 치즈'와 화통앤바방끄㈜가 수입한 '고소한 쌀과자' 2개 제품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나흘 뒤인 30일 식약청은 문제의 두 제품에서도 멜라민 성분이 검출됐다고 수정 발표했다. '리츠 샌드위치 크래커 치즈(유통기한 09.3.23)'에서는 23.3ppm, 고소한 쌀과자(유통기한 09.6.24)에서는 1.77ppm의 멜라민 성분이 나왔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에 검출된 양도 소량으로 인체에 심각한 정도로 유해한 것은 아니라는 게 식약청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멜라민 검출 양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소비자가 도대체 어떤 제품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느냐는 것 아닐까.

나흘만에 적합→부적합... 그래도 안심하고 먹으라고?

식약청의 오락가락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 '혼란의 동선'을 따라가 보자. 식약청은 29일자 '멜라민 수거·검사 현황' 자료를 통해 중국산 우유 성분이 함유된 428종의 제품 가운데 43종은 판매를 허용하고, 385종에 대해서는 계속 금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같은 종류의 과자류라 해도 유통기한에 따라 '적합'과 '부적합'이 갈리기 때문에 해당 품목 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은 43건에 대해서는 판매금지 조처를 해제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에 앞선 지난 26일 식약청은 검사대상 428종 가운데 금지 품목을 305종으로 정했다. 28일엔 도로 428종을 모두 금지한다고 밝혔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모든 품목에 대해 모두 금지한다는 게 식약청의 입장이었다. 그 뒤 식약청은 하루 만에 255종을 판매 금지하겠다고 밝혔다가 오후 늦게 385종으로 다시 변경한다고 정정했다.

말 그대로 '혼돈의 연속'과 '오락가락'이 무엇인지 온 몸으로 보여준 셈이다.

식약청이 갈짓자 행보를 하는 동안 일부 제과업체들은 억울한 피해를 당했다고 호소하는가 하면, 자사 홍보에 급급해 일시 유통금지 됐던 상품들이 적합 판정을 받아 도로 팔리게 됐다고 선전하기도 했다.

현재 유통 중인 농심 '양파링'과 '녹두국수 봄비'에는 중국산 유제품이 쓰이지 않았는데도 '판매 중지 리스트'에 올랐다고 일부 언론이 보도했으며, ㈜샤니는 제빵 원료로 수입한 '계란조제품'이 428개 금지 품목에 올라 일시 유통금지 됐으나 적합 판정을 받아 다시 유통하게 됐다고 홍보했다.

이같은 해프닝이 지속적으로 발생한 것은 식약청이 제조일자가 다른 제품 중 일부를 조사한 뒤에 적합 판정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언론들의 분석이다. 제조일자에 따라 원료 공급처가 달라질 수 있고 멜라민 검출 여부도 이에 따른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누리꾼들은 식약청이 정확한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소비자들의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생협전국연합회, 여성민우회생협, 한살림, iCOOP생협연합회는 29일 오전 서울 은평구 식품의약품안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멜라민 오염 중국산 식품 사태에 대한 철저한 대응과 체계적인 식품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촉구했다.
 생협전국연합회, 여성민우회생협, 한살림, iCOOP생협연합회는 29일 오전 서울 은평구 식품의약품안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멜라민 오염 중국산 식품 사태에 대한 철저한 대응과 체계적인 식품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촉구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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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꾼 "식약청 말고 국민감시단이 통관 맡자"

인터넷 포털 다음 아고라에 글을 올린 누리꾼 '크리스티나'는 "현재 시판되고 있는 모든 식품의 최종성분에 대한 검증은 이뤄지지 않는다"며 "식품의 정확한 화학적 구성이 무엇인지 관리당국도 제조업체도 모른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건강은 섭취 식품에 따라 영향을 받는데 최종 섭취식품 위해성 검증이 이리도 어려워서야 되겠느냐"며 "국민의 식품안전에 무지하고 안이한 식약청의 태도는 죄악"이라고 비판했다.

누리꾼 '해오름'은 "아이들이 주로 먹는 유제품에 공업용 멜라민이 섞인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며 "어린이와 청소년, 노인 모두 우유 관련 가공식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정부 반성이 필요하다"고 질타했다.

무엇보다 해오름은 "중국산은 물론 수입 농수축산물을 제외한 신토불이 우리 농산물로 '5000만의 밥상운영'이 어렵다면 밀려드는 해외농산물 검역행정을 이 정도로 가져서가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네이버에 글을 올린 누리꾼 'llhaang'은 "엄청난 예산을 들여 국민의 먹을거리를 챙기는 식약청은 신뢰를 잃었다"며 "차라리 그 예산으로 검사과정 전반을 감독할 수 있는 국민감시단을 만들고 식약청에 상주시키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 국민감시단을 통과하지 못하면 모든 수입식품에 대한 통관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식약청 홈페이지에 글을 남긴 박인권씨는 "국민의 이름으로 식약청을 폭파하고 싶다"며 "식품과 의약품 안전에 이상이 생겨도 이상이 없는 것처럼 면죄부를 주는 '면죄부청'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일갈했다.

그는 "식약청은 국민안전보다 기업피해를 먼저 생각하고 관련 산업의 피해를 먼저 생각해 숨기고 감추기에 급급하다"며 "국민안전보다 산업피해를 먼저 걱정하는 식약청이 있다는 게 부끄럽다"고 힐난했다.

전문가들은 식품안전관리의 전문성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식품안전관리에 전문성이 없기 때문에 걸핏하면 식품사고가 속출한다는 것이다. 매번 문제가 터지면 사후약방문 식으로 대처하고, 여론이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유야무야 되는 점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병무 성균관대 독성학연구실 교수는 30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식품안전관리에 대한 전문화가 필요하다"며 "식품 유해성 평가를 정확히 할 수 있는 전공자 없이 얼버무리게 되면 '제2의 멜라민 사태'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엇보다 멜라민도 문제지만 식약청의 오락가락하는 행보가 국민들의 불안감을 더욱 더 증폭시키고 있다.


태그:#멜라민, #식품의약품안전청, #식품사고, #신토불이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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