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 의미로 정원(庭園)은 '집안의 뜰이나 꽃밭'을 말한다. 이와 비슷한 말로 원림(園林)이라는 것이 있는데 원림은 정원에다 숲의 영역을 포함한다. 유홍준 교수도 "원림(園林)은 동산과 숲의 자연 상태를 그대로 조경으로 삼으면서 적절한 위치에 집칸과 정자를 배치한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정원은 개념적으로 원림에 가깝다.
자연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만들어지는 우리의 정원을 집안이라는 영역으로 한정한다면 우리의 정서와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거의 모든 정원이 담으로 자연과 경계를 이루고 있지만 담은 일정한 영역을 표시할 뿐 담 밖과 담 안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담을 너머 끊임없이 교류하는 것이 우리의 정서다.
정원은 자연과 동떨어져 있지 않고 자연을 빌려 정원을 조성하려 한 점이 우리 정원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다. 정원은 정원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자연의 연장으로 본 것이다. 여기에다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지 않으려 했다. 동산이나 계곡, 하찮은 길이라도 인위적으로 바꾸지 않고 생긴 그대로 이용하고 화룡점정하듯 한 모퉁이에 건축물을 세워 자연 풍광을 한층 빛나게 하였다. 그저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을 가졌다.
최순우 선생은 "뒷동산의 잘 생긴 바위 한덩어리, 등 넘어가는 오솔길 한 갈래, 축동의 노목 한 그루에도 정령과 생명이 스며 있다는 생각, 즉 자연도 인간못지 않은 존귀한 생명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즉 자연은 공경의 대상이요, 두려움의 대상이어서 함부로 해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우리의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다.
자연에 대해 무한히 애정을 쏟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적절히 인공을 가하여 자연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지세에 어울리도록 크지도 그렇다고 옹색하지 않게 건축물을 세운다던가 계류를 돌아 나가게 하거나 끌어들여 풍류 공간을 만든다.
우리의 자연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자연과 인공이 절묘하게 만나는 곳이 삼척 죽서루다. 오십천 벼랑, 바위 위에 자연암석을 주춧돌 삼아 기묘하게 서 있는 죽서루를 보고 있으면 감탄사가 절로 난다. 그랭이법으로 기둥뿌리를 깎아 울퉁불퉁, 들쭉날쭉한 자연석에 그대로 끼워 맞춰 놓았다. 자연과 인공이 만나는 극적인 장면이다.
창덕궁 후원 부용정 영역은 자연과 인공이 분리되어 있는 듯하면서 공존하는 곳이다. 부용정 뒤뜰이 자연미가 강조되었다면 부용정 앞뜰은 인공적인 냄새가 난다.
뒤뜰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아 우리 주변 산,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동산이다. 동산에는 사람 손을 타거나 사시사철 푸른 나무 대신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낙엽 활엽수를 심었는데, 이는 계절이 바뀌면서 잎이 피고 지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 보았기 때문이다. 잘 다듬어 언제나 같은 모양에 같은 색깔, 같은 냄새를 풍기는 일본 정원과 대조적이다. 자연에 순응하려는 자연 순응 가치관을 드러낸 것이다.
앞뜰은 사뭇 다르다. 5단의 화계를 쌓고 화계 꼭대기에는 2층 누각인 주합루를 올렸으며, 주합루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는 어수문을 만들었다. 주합루와 어수문을 보고 있으면 건축물이 자연 속에 들어서 자연의 풍광을 이렇게 빛나게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으로 자연미보다는 인공미가 넘치는 곳이다.
부용정 영역을 좀 벗어나면 정자(亭子)들이 연못, 언덕, 숲 속, 산등성이, 계곡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연에 안기듯 서 있다. 연못가엔 부용정·애련정·관람정·존덕정이 있고, 언덕엔 승재정이 있다. 등성이엔 취규정이 있으며, 계곡에는 소요정·태극정·청의정이 있다. 또 숲속에는 청심정이 숨어 있다. 과연 '정자박물관(亭子博物館)' 혹은 '정자원(亭子園)'으로 불러도 좋을 만큼 여러 종류의 정자가 서 있다. 정자 하나가 꼭 있었으면 하는 곳에 어김없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을 가두어 두려고 하지 않고 자연 그 자체를 가슴에 품어 끌어들일 줄 아는 본성, 즉 개방적 태도에서 온 것이다. 이는 우리 어머니들이 대충 간을 맞춰도 기막힌 음식맛을 낼 줄 아는 선천적인 능력과 같아서 거의 타고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최순우 선생은 이런 능력을 '점지의 묘'라 하고 "원래 한국 사람들은 자연 풍광 속에 집 한채 멋지게 들여세우는 뛰어난 천분을 지녔다"면서 "조그만 정자 한 채는 물론 큰 누대나 주택에 이르기까지 뒷산의 높이와 앞뒷벌의 넓이 그리고 거기에 알맞은 지붕의 높이와 크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인들의 형안은 상쾌하다고 할만큼 자동적으로 이것을 잘 가늠하는 재질을 지니고 있었다"라고 하고 있다.
후원이 궁원(宮園)의 으뜸이라면 소쇄원은 우리나라 제일의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먼 산에서 출발한 계류(溪流)가 모든 성질이 죽어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산기슭, 비탈진 곳에 자리잡았다.
소쇄원은 계곡과 계류, 지세 같이 자연적인 것과 담, 화계 등 인공적인 것에 의해 여러 영역으로 나뉜다. 자연과 인공은 각자 별개로 영역을 나누기도 하고 한데 어우러져 나누기도 한다. 영역을 구분하는데 담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담은 소쇄원의 영역을 한정해주고 휴식의 공간과 학습의 공간을 구분해 준다.
오곡문(五曲門)은 한국 정원의 정서가 잘 드러나 있으면서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계곡 위까지 담을 쌓고 그 밑엔 문을 내어 계류가 그 문을 통해 흐르게 하고 있다. 이 문은 사람의 문이라기보다는 물의 문이다. 무심히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계곡 위까지 연장한 담과 그 밑에 문을 낸 착상이 절묘하여 감탄하게 된다.
물을 이용하고 연못을 둔 점이 우리나라 정원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다. <삼국사기> 기록에도 물을 끌어들여 네모난 연못과 방장선산을 모방하여 섬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정원 연못은 고려 초에 이자현이 조성한 청평사 문수원 정원의 영지(影池)다.
이자현은 오봉산 자연 경관을 살리면서 계곡의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수로를 만들고 정원 안에 영지를 만들어 오봉산이 비치게 하였다. 영지는 사다리꼴로 연못 안에는 큰 돌 셋이 있는데 이는 삼산의 봉우리를 상징한다. 삼산은 도가에서 말하는 신선들이 산다는 방장, 봉래, 영주의 세 선산을 말하는 것으로 일찍이 우리는 정원을 만들 때 도가사상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연못에 대한 애착은 대단한 것 같다. 그리 넓지 않은 터인데도 강진 다산초당에는 다산이 직접 만들었다는 연못이 남아 있다. 명옥헌원림은 두 개의 연못을 가지고 있다. 명옥헌 위쪽 연못과 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래 연못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계류가 위쪽 연못을 채우고 넘친 물이 아래 연못을 채우는 구조로 되어 있다.
둘 다 네모의 연못에 둥근 섬을 만들어 놓았는데 아래 연못은 인공적으로 둥근 섬을 쌓은 반면 위의 연못은 원래 있는 바위가 그대로 섬을 대신하고 있다. 연못 주변의 배롱나무와 정자가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풍경은 한국 제일의 정원이라 불릴 만큼 아름답다.
우리나라 정원은 민간이든 궁중의 정원이든 동떨어져 만들어지지 않고 민간과 궁중간에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만들어져 궁중의 정원이라도 민간의 정원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궁중 연못은 잘 다듬어진 장대석으로 쌓은 반면 민간 연못은 주로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것이 차이일 뿐 거기에 담긴 사상은 다 한 가지이다.
창덕궁 부용정 연못은 네모난 연못에 그 가운데 둥근 섬을 만들어 음양의 원리를 도입하였다. 네모난 연못은 땅, 음을 상징하고 둥근 섬은 하늘, 양을 상징한다. 경복궁 경회루 연못도 마찬가지로 잘 다듬은 돌로 네모난 섬을 만들고 그 안에 세 개의 섬을 만들어 그 중 제일 큰 섬에 경회루를 세웠다. 경회루의 구조와 배치, 기둥의 모양까지 음양오행의 원리가 담겨 있다. 경주 안압지의 경우 곡선과 직선이 혼합되어 방지는 아니더라도 못 속에는 삼신도로 보이는 세 개의 섬이 조성되어 도교의 사상이 배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궁원에서 볼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은 궁원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궁 밖 여느 정원에서도 볼 수 있는 한국적인 것들이다. 자연을 지배하기보다는 자연과의 조화를 끊임없이 꾀하고 자연을 거역하기보다는 자연에 순응하는 자연관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이는 궁궐 세계와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세계와 끊임없이 교류하고 외부의 사상이 궁내에, 궁내의 사상이 외부에 전달된 결과이다. 궁원이 일반인들에게는 물리적으로 단절이 되어있을지언정 궁원이 담고 있는 한국적 사상과 철학은 외부와 끊임없이 교류된다.
우리의 정원은 자연과 동떨어지기보다는 자연과의 조화를 꾀했고 집안으로 한정하지 않고 자연을 끌어안음으로써 정원의 영역을 자연으로 연장하였다. 민간이든 궁궐이든 정원을 꾸민 주체가 누구이든지 거기에 담겨 있는 사상적 기반은 서로 통한다. 서로 단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소통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