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 버리고 만 님은 돌아보지 않는 법이라고 하지만, 떠나 버리고 말았어도 차마 뗄 수 없는 발걸음이라,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아쉬움을 달랩니다. 허물리고 만 인천 숭의야구장입니다. 이렇게 허물려도 되는가 하고 묻고 싶으나, 누구한테 물을 수 있겠습니까. 안타깝게 떠나버리고 만 옛님을 그리면서, 시린 가슴을 누르면서, 철거현장에 들어가 허락을 받고 사진 몇 장을 겨우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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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장 가던 길 야구장으로 가는 한쪽 길. 도원역 앞 네거리에는 아직 '야구장'이라고 적힌 간판이 남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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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장 들머리 차 석 대가 서서 막아 놓은 자리가 '야구장 들어가는 표를 사던 곳'입니다. 야구장으로 들어가던 문이 있던 자리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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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나지 않은 실타래 야구장은 죄 허물었지만, 야구장 둘레에서 오랜 세월 뿌리내리면서 살아온 사람들 '앞날 대책', 그러니까 생계대책과 보상 문제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인천시는 '번듯한 새 축구 전용 구장'을 세울 계획에만 마음이 빼앗긴 채, 정작 야구장을 둘러싼 사람들 삶은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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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 경기 훔쳐보던 자리 광성중고등학교 건물, 또는 이웃한 여고 건물, 또는 골목집 옥상 들은 야구 경기를 거저로 훔쳐보는 좋은 자리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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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갈 수 없는 문 야구장 뒷문. 높은 울타리를 세워서 안이 하나도 들여다보이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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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 남은 자국 철거용역 울타리는 야구장 뒷문만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서, 그나마, 야구장 뒷문 쪽 바닥에 페인트로 새겨 놓은 '외야 들어가는 문' 글씨를 마지막으로 만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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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장 뒷문 길 경기가 끝날 때면 물결처럼 쏟아지는 사람들이 이 길로 나오면서 웃거나 울거나 떠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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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타리 사이로 길고 높은 울타리 가운데 살짝 벌어진 데가 있어서 안을 들여다봅니다. 야구장과 함께 허물린 공설운동장에 세워져 있던 등불 하나가 바닥에 뒹굴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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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물린 경기장 높은 울타리 밑 거님길돌(보도블록)을 몇 장 들어내고 사진기를 슬쩍 들이밀어서, 허물린 시멘트 건물 부스러기와 쇠뼈대(철골) 찌끄러기를 바라봅니다. 도원동 언덕배기 교회 뾰족탑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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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야구장 야구장도 사라지고 공설운동장도 사라졌습니다. 하루아침에 허물어 버린 두 경기장이 섰던 자리는 휑뎅그렁한 빈터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체육회관 하나도 폭탄을 맞은 듯한 느낌으로 서 있긴 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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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장 철거 마무리 지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체육회관 건물마저도 그예 허물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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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들어 버린 야구장 모든 역사는, 사라지게 되면서 이야기를 남길까요. 나이든 분들은 고교야구에 눈물콧물 흘리며, 제 또래들은 프로야구(삼미-청보-태평양-현대)에 눈물콧물 짜면서, 서로 부둥켜안고 뒹굴던 발자국은 이렇게 사라지게 되면서, 가슴에 이야기 하나 남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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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년대 숭의야구장 1950년대, 인천 숭의야구장과 공설운동장 모습을 담은 <인천의 명소>라는 책에서. 골목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 한복판에 울타리 하나 없는 야구장과 축구장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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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