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당선 직후, "오바마와 이명박 정부의 비전은 닮은꼴"이라고 한 청와대 발표가 화제가 되고 있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최고의 코미디'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부자에게 세금을 걷는 정책과 부자의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이 과연 같을까? '통합의 리더십'과 '고소영 리더십'이 닮은 것일까? 냉전 되돌리기와 대화 무드를 조성하는 대북정책이 같은 방향일까? 이런 물음들에 대해 <오마이뉴스>가 답변을 찾아나섰다. '이명박 vs 오바마' 기획 연재는 개인에 대한 비교가 아니라 정책에 대한 비교다. 또한 그 무엇보다 '사실 관계'를 냉정히 살펴보고 대안을 찾아보자는 '건설적인' 제안이기도 하다. [편집자말]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인터넷 동영상을 통한 대중과의 소통을 재개하고 나섰다. 이른바 '유튜브 노변정담'이다.
지난달 13일부터 라디오를 통해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인터넷 동영상은 시·공간의 규제를 받지 않으면서도 대중의 반응을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반면 라디오는 매체의 특성상 한 방향일 수밖에 없다.
'의회 강력한 조치' 촉구한 오바마, '단합(?)' 강조한 이명박대중과 소통하려는 두 사람은 무엇보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있어서 명확한 차이를 드러냈다.
오바마 당선인은 15일(현지시간)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 유튜브에 게재된 3분 34초 길이의 첫 동영상 연설을 통해 "일자리 창출, 가계부담 완화, 경제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구제금융안의 최소한만이라도 즉각 통과시켜야 한다"며 미 의회를 직접 겨냥했다.
그는 특히 "의회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된 후 첫번째 업무 지시로 성사시킬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즉각적인 조치를 촉구하는 강력하고도 구체적인 압박인 셈이다. 힘이 실린 그의 연설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16일 방영된 CBS '60 Minute'와의 인터뷰에서도 "만약 취임할 때까지 (미국 자동차 산업과 주택보유자들에 대한) 정부의 분명한 지원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는다면 취임 후 이를 마련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바마 당선인의 동영상이 만 하루가 안 돼 조회수 40만건을 넘길 정도로 누리꾼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던 시각, G20 금융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워싱턴 모처에서 3차 '라디오 노변정담'을 녹음하고 있었다.
이 대통령이 녹음한 오디오 파일은 청와대를 거쳐 17일 오전 7시30분경 KBS1 라디오 등을 통해 전국에 방송됐다. 이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은 오바마의 동영상에 비해 3배에 달하는 8분30초 분량이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구체적인 경제위기의 해법을 제시하기보다는 국제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각계의 단합을 호소하는 데 그쳤다.
이 대통령은 국제금융위기 타개를 위해 G20 금융정상회의에서 논의한 내용을 소개한 뒤, "불이 났을 때는 하던 싸움도 멈추고 모두 함께 물을 퍼날라야 한다"며 국내 각계각층이 힘을 모아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자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또 "(내가) 이번 금융회의에서 특별히 금융위기를 빌미로 세계가 보호무역주의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힘주어 강조했고, 이에 대해 100% 동의가 이뤄졌다"고 만족해했다.
오바마 당선인은 미 국민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동영상 연설에서 타깃을 미 의회와 정부로 명확하게 한정지은 반면, 이 대통령의 타깃은 모호했다. 오히려 그 책임을 야당과 국민·언론 등에게로 돌리는 인상마저 짙었다. 당장 야당을 비롯한 여론은 "실효성 없는 연설"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재성 민주당 대변인이 이날 현안 브리핑에서 "야당과 국민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물을 엄청 나르고 있는데 나르면 뭐 하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현 정부의 경제팀이 끌만하면 불을 낸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루스벨트 벤치마킹 나선 두 지도자, 결과는? 두 지도자의 '노변정담'식 소통 방식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그 시발점을 같이 하고 있다.
대공항으로 촉발된 최악의 경제상황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뉴딜정책의 정당성을 호소하기 위해 라디오 연설을 시작했다. '노변담화'로 불린 라디오 연설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어 뉴딜을 과감히 추진한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미국을 파산상태로부터 구해낸 위대한 지도자로 기록됐다.
미국 대선 기간 막판, 오바마 당선인이 먼저 "신념과 용기를 잃지 말라"는 루스벨트 어록을 인용하며 구제금융 법안을 지지해 달라고 호소해 화제가 됐다. 그러더니 이명박 대통령도 재향군인회 간담회에서 "지금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루스벨트 어록을 인용했다. 결국 청와대는 주례 라디오 연설을 시작하며 루스벨트의 노변담화를 적극 벤치마킹하고 나섰다.
그러나 오바마는 라디오 대신 인터넷을 선택했다. 한국을 비롯해 인터넷 인프라가 제대로 확충된 나라에서는 이미 인터넷 정치가 활성화된 반면,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30대 공업대국 가운데 15위 수준인 미국은 상황이 달랐다. 심지어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집무실에 컴퓨터가 없는 것으로 알려질 만큼 미국에선 '인터넷 정치'가 생소했다.
그러나 오바마 당선인은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 돌입하기 이전부터 IT선거 전략을 도입했다. 미국 IT전문지 <와이어드>는 "오바마 이전에도 인터넷을 선거에 일부 활용한 정치인은 있었다. 그러나 오바마 만큼 모든 기술을 통합해 활용한 경우는 없었다"고 보도했다.
미 대선 직후 <전자신문>은 "기술(technology)의 전략적 활용은 세계 역사상 유례가 드문 새로운 선거 전략"이라며 미국 첫 흑인 대통령의 역사를 쓴 오바마 당선인의 승리에는 인터넷과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IT 전략의 힘이 컸다고 분석했다.
특히 <가디언>은 오바마 당선인의 행정부가 온라인 동영상 활용 범위를 정부기관 내 화상회의나 '국민과의 대화' 같은 방식의 타운홀미팅까지 확대할 방침이라고 16일 보도했다. 정부 예산의 사용처를 인터넷으로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넷심'을 등에 업고 대선에 승리한 오바마 당선인과 행정부는 21세기 '인터넷 정치'를 더욱 본격화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루스벨트 전 대통령로서는 당시 최고의 매체였던 라디오 외에 다른 소통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만 거꾸로 20세기 초반으로 후퇴한 것이다.
특히 청와대로서는 소통을 통해 정부에 대한 신뢰를 얻고 국정에 대한 국민의 이해 폭을 넓히려는 순수한 의도라고 정치적 의도를 부인했다. 그러나 야당은 "국민들이 대통령의 일방적 홍보로 전파공해에 시달리고 있다"며 '5공식 땡전뉴스'라는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명박-오바마'가 닮았다고?... 미디어 정책은 '극과 극'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당선인 간의 소통 방식의 차이는 국정 정책, 특히 미디어 정책에 있어서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미디어 정책은 방송통신 융합 촉진, 인터넷 모욕죄 및 실명제 도입에 의한 인터넷 규제 강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반면 오바마 당선인은 다양한 미디어 환경 구축, 소규모 미디어 활성화, 인터넷 접근성 확대, 개방성 보호 등을 미디어 정책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우선 이명박 정부는 신문·방송 겸영 허용, 지상파방송 소유제한 기준 완화 등을 포함한 미디어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할 방침이다. 이명박 정부가 미디어 교차소유에 집중하는 한편, 한나라당 내에는 미디어발전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방송법과 신문법 개정을 준비 중이다.
특히 보수적인 이명박 정부에게 IT는 경제 성장동력이라기보다는 '인터넷 악플'이라는 부정적인 여론 확산 도구라는 인식이 강하다. 자기 스스로 '인터넷 콤플렉스'라는 덫에 걸린 듯한 모습이다. 포털의 실명제와 사이버 모욕죄 추진을 통해 인터넷 역기능에 강력 대응한다는 방침도 이러한 피해의식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상원의원 시절부터 미국 내 미디어 독점의 폐해를 지적해 온 오바마 당선인은 미 연방통신위원회(FCC)의 미디어 교차소유 결정을 반대해왔다. 미디어 교차소유는 소수 기업의 독점, 그리고 지역성, 다양성 훼손을 초래 한다는 게 오바마 당선인 측의 주장이다. 경제적 효율성이 공익성에 우선할 수 없다는 오바마 당선인의 신념에 기인하고 있다.
오바마 당선인 측은 지난 대선기간 동안 미디어분야 정책발표를 통해 "FCC는 지난 7년간 다양성 보다는 합병에 주력했으며, 그 결과 공익과 거리가 있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오바마 당선인은 특히 인터넷에 대해 통신사업자가 인터넷 사이트를 차별하지 않고 동일한 전송속도를 제공해야 한다는 '망 중립성'을 주장하는 등 우호적인 정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 블로거의 지원을 비롯해 대선 승리의 일등 공신인 누리꾼의 두터운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 선거참모 중 상당수가 강력한 IT 정책 드라이브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 등도 오바마 당선인이 이명박 대통령과 다른 점이다.
미 대선 직후 청와대는 '변화와 실용'을 끄집어내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당선인이 "닮았다"고 자평했지만, 최소한 미디어정책 분야만큼은 결코 "닮지 않았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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