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잘하는 것을 안다. 나는 내가 잘못하는 것을 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고 있다." (I know what I'm good at. I know what I'm not good at. I know what I know. I know what I don't know.)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5년 전 일리노이주(州) 상원의원이었을 때 당시 톰 대슐 민주당 상원의원의 참모였던 피트 루즈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당시 연방 상원의원 진출을 노리던 오바마는 루즈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메워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루즈는 현재 정권인수위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 8월28일 덴버의 풋볼경기장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 오바마는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과 아내 미셀 등 15명의 이름을 거명했다.
특히 힐러리를 소개할 때는 "가장 오랫동안 (경선) 여정을 함께 밟았고, 미국인 근로자의 대변자이자 제 딸들과 시민 여러분의 딸들에게 영감을 주는 힐러리 로댐 클린턴"이라고 깍듯이 배려했다. 자신에게 부족한 여성표를 의식한 배려였다. 그는 결국 여성층에서도 압도적으로 매케인 공화당 후보를 눌렀다. 힐러리에게는 국무장관 제안을 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오바마는 대선 이틀 뒤에 백악관 비서실장에 램 이매뉴얼 일리노리주 하원의원을 지명했다. 숱한 기행(奇行)으로 워싱턴의 '싸움닭'으로 소문난 이매뉴얼은 차분하고 신중한 오바마와는 정반대되는 기질을 가진 정치인이다. 그래서 이를 두고 사람들은 오바마의 '냉혹한 실용주의 용인술'을 드러낸 것이라고 평했다.
오바마와 김대중-노무현의 용인술
정치는 결국 대의(大義)를 대세(大勢)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와 같은 뜻을 가진 많은 사람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이 정치다. 그런 점에서 정체성이 다른 사람을 기용해 자신의 약점 혹은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는 실용주의 용인술은 특히 비주류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이런 실용주의 용인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몽돌과 받침대' 용인술과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한 성격임에도 참여정부 조각 당시 국무총리에는 '처세와 행정의 달인'으로 통한 고건씨를 지명해 반대 진영에 안정감을 줬다. 보수성향의 '마당발' 인사인 김우식 연세대 총장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도 같은 용인술이다.
노 전 대통령 측은 고 총리와 결별하면서 "결과적으로 실패한 인사였다"고 말해 몽돌의 나무받침대 역할이 만족스럽지 않았음을 밝혔다. 그러나 '고건 카드'는 노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불안한 시선으로 보는 반대 진영을 안심시키는 데 일조했다.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이 그 뒤 내편만 골라 쓰는 이른바 '코드 인사'와 '회전문 인사'를 거듭한 것이 국정운영과 통합의 실패로 이어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지난 1997년 대선에서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은 잠시뿐, 그 앞에는 IMF 긴급구제금융을 신청할 만큼 거덜난 국고(國庫)와 오랜 야당 생활로 함께 고생하거나 신세를 진 '사람 빚'이 쌓여 있었다. 이들은 대개 '자리'를 통한 보상을 원했다.
교통정리가 필요했다. DJ가 세운 인사원칙은 '(정권교체의) 공(功)이 있는 사람에게는 감사패를,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리를!'이었다. DJ가 일면식도 없는 이규성 재정경제부장관과 이회창 캠프에서 일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을 IMF 금융위기를 극복할 적임자로 기용한 것도 이런 인사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초대 비서실장으로 영남 보수인사인 김중권씨를 기용한 것도 국민통합을 위한 화합의 제스처였다.
실용주의 MB의 용인술은 일만 잘하면 된다?이명박(MB) 대통령이 처한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처한 10년 전의 IMF 금융위기 상황과 비슷하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 동안 야당 생활을 하느라 '자리'에 굶주린 정치인들이 많은 점도 유사하다. '낙하산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용인술은 '아무나 쓰지는 않지만 누구나 쓴다'는 말로 요약된다. 일(능력)이 기준이라는 것이다. MB가 표방하는 실용주의 노선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또 이른바 '지용임신(知用任信)' 원칙도 거론된다. 사람을 쓸 때 믿지 못할 자는 아예 선발하지 말고, 일단 선발한 후에는 일을 맡기면서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재풀이 좁다'는 점에서는 MB 진영에서 '코드 인사'라고 비판한 노 전 대통령과 닮았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약점이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인사를 기용하는 대신에 오히려 자신과 비슷한 인사들만을 기용함으로써 정부의 색깔이나 정체성을 특정계층이나 부자들의 정부로 규정짓게 하는 부작용이다.
조각 당시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16명의 평균 재산은 31억3800만원. 류우익 대통령실장을 포함한 청와대 수석비서진 10명의 평균 재산액은 35억5652만원. 물론 이 대통령의 재산신고액(354억7401만원)을 제외한 액수다.
이는 재산공개 등으로 재력가들의 공직 임용을 엄격하게 제한했던 김영삼(YS) 정부 초기와도 대비된다. YS는 평소 돈 가진 사람이 명예까지 갖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YS 정부에서 청와대 공보수석과 환경부장관을 지낸 윤여준씨는 "인사는 국민의 상식을 벗어나면 안 되는데 국민은 돈 많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YS다운 정치 감각이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통합형 용인술, MB는 배타적 용인술MB의 낮은 국정운영 지지도는 경제위기 탓도 크지만 이처럼 국민과의 눈높이 맞추기를 외면한 고소영+S라인(고려대․소망교회․영남+서울시청 인맥)과 강부자(강남의 땅부자) 정권으로 규정된 인사 실패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국민정서를 무시한 채, 일만 잘하면 된다는 막무가내식 실용주의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인사의 실패는 결국 정책의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정권 초기 MB 인사의 실패는 정권 인수를 앞두고 드러난 오바마의 통합형 용인술과 대비된다.
오바마 대통령당선자는 16일 대선 후 처음 CBS '60분'에 출연해 '공화당 인사를 포함한 내각 인선을 조만간 발표하겠다'는 뜻을 밝혀 주목된다. 오바마는 "공화당 인사를 내각에 중용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던 링컨 관련 저서를 읽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답했다. 공화당원인 링컨은 민주당 출신의 정적을 국방장관으로 기용했다.
또 CNN 등 미국 언론들은 최근 오바마 당선인이 민주당 경선 당시 치열하게 경쟁했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의 비밀회동에서 국무장관 자리를 제의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조각 명단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이와 같은 일련의 행보는 야당인사 기용은커녕 당내 경쟁자였던 박근혜 전 대표와 친박 정치인들을 철저히 외면한 MB의 배타적 용인술과 대비된다.
오바마는 이미 14~15일 워싱턴에서 열린 'G20 경제정상회의'에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과 공화당 소속의 짐 리치 전 하원의원을 G20 정상들의 얘기를 대신 듣는 대리인으로 파견했다. 올브라이트는 대통령 후보 경선 때 힐러리 상원의원을 지지했고, 리치는 공화당 소속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 측은 "초당적 정치로 국민 통합을 이루고, 그걸 바탕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MB, '오바마 인맥' 임동원 해임하고 '올드 보이' 공로명 기용한편 오바마 당선 이후 뒤늦게 인맥 찾기에 허둥지둥한 MB 정부는 국민과의 눈높이 맞추기 실패에 이어, 이미 드러난 오바마 인맥과의 눈높이 맞추기에도 실패하는 '엇박자 인사'를 하고 있다.
이를테면 12일 발표된 오바마의 분야별 정권인수팀에는 웬디 셔먼 전 대북정책조정관, 샘 넌 전 상원의원 등 클린턴 정부 시절에 고위공직을 지낸 전문가들이 대거 기용되었다. 김근식 교수(경남대 북한대학원대학)도 17일 한 토론회의 '오바마 이후 남북관계 변화 전망과 과제'라는 주제발표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조건없이 만날 용의를 밝힌 최초의 대통령후보의 당선 ▲웬디 셔먼 등 클린턴 정부 시절 대북협상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인물들의 존재 등을 근거로 "미국의 상황에서 2009년 북미협상의 출발선은 매우 긍정적인 환경을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과 막역한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셔먼은 지난 2002년 방한 당시에 "김대중 대통령 등 햇볕정책에 관여한 사람은 용기있는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공개 지지를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산하에 세종연구소를 둔 세종재단은 13일 이사회를 열어 이달 중 임기(4년)가 끝나는 임동원 이사장을 해임하고 후임에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을 선출했다.
올브라이트 역시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야 김정일과 논의할 수 있었다"며 DJ를 '거인'에 비유할 만큼 존경을 표했다. 햇볕정책 지지자인 바이든 부통령 당선자는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이던 2001년 청와대로 김 전 대통령을 방문했다. DJ가 매고 있던 넥타이가 좋다고 해 즉석에서 교환하자는 DJ의 제안으로 수프가 묻은 넥타이를 바꿔 맨 인연을 공유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는 물론 오바마 캠프에서 일한 클린턴 행정부 인사들과도 교류해왔다. 예를 들어 DJ는 지난해 미국 방문 때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을 만나 대담한 적이 있는데 오바마 경제 브레인의 한 사람인 루빈은 회고록에서 "김 전 대통령은 한국 경제를 회생시킨 영웅"이라고 칭송했다.
MB, 일에 대한 실수보다 열정을 기준으로 '올드보이' 중용임동원(74) 이사장은 '햇볕정책의 설계사'라는 이유 때문에 진즉부터 퇴진 압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유는 그렇지만 겉으로는 고령임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막상 YS 정부에서 외무장관을 지낸 후임 공로명씨는 그보다 두 살이 더 많다.
MB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고령과 후진 양성을 이유로 퇴진 압력을 받아 물러났는데 막상 후임자는 더 고령인 '올드 보이'(old boy)가 기용된 황당한 사례는 적지 않다. 행정안전부 정통관료 출신으로 참여정부 인사수석을 지낸 김완기(64) 전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장도 고령과 후진양성을 이유로 퇴진압력을 받았으나 후임자는 두 살이 더 많았다.
김 전 수석은 김영삼 정부에서 IMF 긴급구제금융 당시 재경부차관을 지낸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최근 '헌재 접촉' 실언(?)을 한 것도 '올드 보이'들의 의식구조에서는 자연스런 발언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이 대통령이 올드 보이들에 대해 동류의식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시장의 신뢰를 잃은 강만수 장관을 고수하는 것은 일에 대한 실수보다 열정을 기준으로 삼는 독특한 용인술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한나라당 경선 때 'BBK 사건' 등으로 공격을 당하자 "평생 나는 일에 미쳐 지냈다"면서 "일하다 보면 손도 베고 그릇도 깬다"고 이른바 '접시론'으로 되받았다. 그래서 강 장관이 잦은 실수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경질되지 않는 것은 MB가 그의 일 욕심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9일 '대통령과의 대화'에서도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장관 책임을 묻자 "각 정권에서 경제 장관들이 1년도 못 채우고 바뀐 예가 많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신뢰가 있어야 책임있게 일한다"고 자신의 인사원칙을 드러낸 바 있다.
국민들과 소통하는 지도자, 올드보이와 소통하는 지도자'믿을 수 있는 사람만 쓴다'거나 '한번 믿으면 바꾸지 않는다'는 '지용임신(知用任信)'의 원칙은 15대 국회의원 시절에 뒤끝이 안 좋게 헤어진 김유찬 비서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말미암은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 대통령은 그와 관련 15대 의원직을 상실했고, 지난해 경선을 앞두고도 김씨가 <이명박 리포트>라는 책을 내 "이 후보가 위증을 교사했다"고 주장해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강부자 정부'니 '고소영 내각'이니 하는 비판과 시장의 불신에도 특정인사를 고수하면서 1% 상위층을 위해 '종부세' 완화를 고집하는 것은 잘못된 과도한 신념과 국민과의 소통 부족 때문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YS 시절에 라디오 연설을 시도한 적이 있는 윤여준 전 공보수석은 최근 사석에서 "전 세계를 무대로 한 미국은 이슈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대여섯 번 하면 할 게 없다"고 전제하고 "이 대통령은 오디오와 비디오가 안 좋아 가급적 미디어 노출을 줄이는 게 좋다"면서 라디오 연설은 국민의 불신을 아랑곳하지 않는 '일방통행'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은 메시지의 송신자인데 수신자인 국민은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다. 대통령을 불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통령은 계속 메시지를 보내도 국민은 거부한다. 그런데 대통령은 계속 홍보가 잘못돼 그렇다고 한다. 대통령은 왜 자기 뜻을 몰라주느냐는 건데 그건 일방적인 전달이지 소통이 아니다. 대통령이 그렇게 불만을 늘어놓으면 참모들이 옆에서 '홍보가 잘못 됐다'고 응수하고, 그럴수록 더 소통에서 멀어지는 거다."한편 오바마 당선인은 15일(현지시간) 매주 토요일 이뤄지는 미 대통령의 주간 라디오 연설을 처음으로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로 배포해 누리꾼의 관심을 끌었다. 뉴미디어를 적극 수용하는 오바마의 '유튜브 노변정담'은 취임 이후에도 매주 미 국민과 전 세계를 찾아갈 예정이다.
오바마 당선인은 이번 미 대선에서도 인기 소설네트워크 '페이스북'에 페이지를 개설하는 등 인터넷을 적극 활용해왔다. 또 당선 직후에는 'CHANGE.GOV'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어 미 국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이 때문에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30년대 라디오 이명박' 대 '21세기 유튜브 오바마'라는 대조적인 평가가 나온다.
결국 오바마에 대한 신뢰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용인술과 소통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MB에 대한 불신은 자신과 비슷한 부유층과 올드 보이의 눈높이에 맞춘 용인술과 소통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과 청와대는 "오바마와 이명박 정부의 비전은 닮은꼴"이라니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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