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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질쿰 사막 공사를 하고 있다
▲ 키질쿰 사막 공사를 하고 있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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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운전사 일홈을 다시 만났다. 이른 아침인데도 그는 역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커다란 트럭을 몰고 어딘가로 가고 있다. 그는 나를 보더니 도로 한쪽에 트럭을 세우고 내린다. 말이 안 통하는 데도 우리는 길가에 서서 무슨 이야기를 한참동안 신나게 떠든다.

헤어지면서 그는 내 배낭에 꽂혀있는 손바닥만한 태극기를 가리키면서 그걸 자기한테 선물로 달라고 한다. 하나밖에 없는 태극기를 선물로 달라니? 내가 태극기와 함께 타쉬켄트까지 가려고 한다니까 그는 나한테 큰소리로 외친다.

"드루지야(친구)! 드루지야!"

그래도 내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그는 자신의 두손을 맞잡고 흔들면서 다시 외친다.

"까레야(한국), 우즈베키스탄. 드루지야! 드루지야!"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이 친구라는데, 이 정도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많이 아쉽긴 하지만 성격 좋은 내가 양보해야지 어쩌겠나. 그래서 태극기를 빼서 일홈에게 주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면서 그 태극기를 운전석 앞쪽에 꽂더니 나한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인다. 그리고 그는 트럭을 몰고 떠났다.

나도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걷기는 걷는데 왠지 자꾸 아쉽다. 우즈베키스탄에 오기 전에 작은 태극기를 여러 개 사왔다. 그리고 그동안 걸어오면서 내가 신세진 몇몇 현지인들에게 그것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태극기가 바로 지금 일홈에게 준 것이다.

마지막 남은 것인 만큼 배낭에 꽂고 타쉬켄트까지 가려고 했는데 더이상 그럴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태극기가 사라지자 왠지 반쪽짜리 여행이 된 듯한 그런 기분이 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지나간 일. 저 태극기를 운전석에 꽂고 기분좋게 사막을 달려가는 일홈을 생각하면서 아쉬움을 달래는 수밖에.

기나긴 공사구간이 시작되다

키질쿰 사막 공사구간이 계속 된다
▲ 키질쿰 사막 공사구간이 계속 된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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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걷자 내 눈앞에는 포장도로가 사라지고 공사구간이 나타났다. 처음에 나는 '뭔가 공사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핸드카를 밀면서 걸었다. 그런데 이것이 나의 착각이었다. 가도가도 공사구간이 끝나지 않는다. 모래가 깔린 비포장도로를 달려가는 공사현장의 많은 트럭들.

트럭이 한번 지나갈 때마다 나도 거기서 생기는 모래먼지를 한차례씩 뒤집어 쓴다. 좁은 길이라서 피할 곳도 마땅치 않다. 웬 트럭과 중장비들이 그렇게 많이 오가는지, 그리고 그 차량들은 나를 보면 어김없이 경적을 울려댄다. 위험한 공사구간을 혼자 걷고 있는 이방인이 무척이나 신경쓰이는 존재일 것이다.

게다가 모래와 자갈이 뒤섞인 비포장도로라서 핸드카를 밀면서 걷는 것도 쉽지 않다. 나는 천천히 핸드카를 밀면서 걷다가, 두팔로 통째로 들고 걸었다. 그것도 어려워서 나중에는 짐을 풀어서 배낭을 메고 핸드카와 보조가방은 양손에 들고 걸었다. 무슨 도보여행 3종 경기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10km에 걸친 공사구간을 돌파하고 나니까 완전히 녹초가 됐다. 안경은 모래먼지로 뿌옇게 변했고, 귀에서는 트럭의 경적 소음이 아직도 맴돈다. 공사구간이 끝나고 다시 포장도로가 시작되었지만 나는 지쳤다. 시간은 12시. 사막의 태양은 이미 뜨거워졌다. 오늘 목적지인 검문소까지 35km라고 하면, 나는 절반도 오기 전에 맛이 간 것이다.

일단 어디 가서 좀 쉬자고 생각했다. 그늘이 아무 데도 없는 사막이지만 걷다보면 그래도 뭔가가 보일 것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한참 가다보니까 진짜 저 멀리 뭔가가 있다. 커다란 트럭과 차량들이 도로 한쪽에 모여 있다. 저곳에 가면 트럭이 만들어주는 그늘이 있을 것이다. 그럼 그냥 거기 앉아서 조금 쉬자.

그곳에 도착하니까 커다란 차량과 이름도 모를 중장비들이 한쪽에 세워져 있다. 그리고 사람들도 보인다.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이들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들 중 한사람에게 저 트럭 뒤쪽에서 좀 쉬겠다고 손짓으로 말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트럭 뒤쪽에는 그늘이 있고 넓은 카펫이 바닥에 펼쳐져 있다. 이들도 일하다 쉴 때가 되면 이 카펫으로 모이나 보다. 트럭이 만들어주는 작은 그늘이 지금처럼 반가울 때가 없다. 나는 짐을 한쪽에 놓고 그냥 그 카펫 위에 누웠다. 그리고 잠시 후에 잠이 들었다.

트럭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다

키질쿰 사막 나에게 그늘을 제공해준 사막의 일꾼들
▲ 키질쿰 사막 나에게 그늘을 제공해준 사막의 일꾼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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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났더니 시간은 30분 가량 지나있다. 태양은 여전히 뜨겁고 나는 솔직히 이 사막의 열기 속으로 다시 들어가기가 싫다. 바라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다. 나는 카펫에 앉아서 미적거렸다. 삶은 계란 두개를 먹고 따뜻해진 물을 마셨다. 그리고 출발이다. 나에게 그늘을 제공해준 사막의 일꾼들에게 크게 손을 흔들면서 걸었다.

갑자기 김밥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김밥이 특별히 맛있기 때문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도보여행을 하다보니까 김밥이야말로 정말 훌륭한 휴대음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쟁반만한 우즈베키스탄 전통빵도 물론 휴대하기 편하기는 하다. 대충 반으로 접어서 비닐봉지에 담으면 되니까. 그런데 이 빵은 먹으면 배만 부르지 특별히 무슨 영양가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건조한 사막에서는 반나절만 지나면 빵의 수분이 증발되서 맛도 없어진다. 계속 걷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니까 빵을 물에 적셔서 꾸역꾸역 입에 집어 넣는다.

그러다보니까 김밥 생각이 나는 것이다. 김밥은 부피가 작아서 휴대하기도 편하고 빵보다 영양가도 많을 것이다. 한 두 줄 먹으면 배도 부르고. 우즈베키스탄 전통빵 대신에 김밥을 두 줄 챙겨올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서 걷다보니까 정말 별 생각을 다한다.

승용차 한 대가 내 앞에 서더니 운전석에서 사람이 내린다.

"워터! 드링크!"

그는 나에게 생수 한 병을 건네준다. 물은 나한테도 있지만 이 물병을 만져보니까 아주 차갑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나는 도로 한쪽에 서서 그 차가운 물을 목구멍이 얼얼해질 때까지 들이켰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다시 힘이 솟는다.

이 물이 차가운 걸로 봐서는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저 친구는 이 물을 식당에서 사왔을테고 승용차 속에서 물이 따뜻해지기 전에 이곳까지 왔다는 얘기다. 나는 다시 기운차게 걷기 시작했다. 또다른 승용차가 내 앞에 멈춰서더니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커다란 포도 한송이를 나한테 먹으라고 준다.

오늘은 웬일로 이렇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이 많을까. 혼자 사막을 걷고 있는 이 외국인이 어쩌면 불쌍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걸으면서 포도를 한손에 들고 부지런히 먹었다. 이 포도 한알 한알이 내 몸에 쌓인 피로를 씻어주리라고 믿으면서. 덥고 힘들지만 이런 현지인들 덕분에 지치지 않고 계속 걷는다.

경찰 검문소에서 하루 잘 수 있을까

키질쿰 사막 검문소 앞의 표지판
▲ 키질쿰 사막 검문소 앞의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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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경찰검문소에 도착했다. 시간은 어느덧 6시. 검문소 너머로는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에 의하면 타쉬켄트까지 840km가 남았고, 내가 누쿠스에서 여기까지 10일 넘게 걸어온 거리는 316km다. 그러니까 누쿠스에서 타쉬켄트까지 내가 걸어야하는 전체 거리는 정확하게 1156km가 되는 것이다. 1200km가 조금 안되는 거리다.

나는 거리를 확인하고 경찰에게 다가가서 이 검문소에서 자도 되냐고 하니까 안된단다. 나는 도보여행중인데 잘 곳이 없다, 하루만 검문소에서 재워달라고 다시 부탁했지만 경찰은 요지부동이다.

"여기는 경찰서야!"

그러면서 저 앞에 있는 식당에서 자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작은 식당의 주인 알리셰르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올해 37살인 알리셰르는 얼마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한쪽 팔이 불편하다고 한다. 그는 부인, 처남과 함께 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밤이 되니까 술판이 벌어졌다. 옆에 있는 송신탑에서 근무하는 22살의 누리딘도 합세했다. 알리셰르는 전통빵과 마카로니로 만든 음식을 내왔고, 보드카와 맥주도 식탁에 올랐다. 젊은 친구 누리딘은 특이한 방식으로 술을 마신다. 독한 보드카를 한잔 마시고 나서 곧바로 차가운 맥주를 다시 한잔 들이킨다. 보드카 때문에 뜨거워진 속을 맥주로 달래는 것일까. 저렇게 섞어마시면 다음날 숙취가 심하고 머리가 아플텐데.

11시가 되자 알리셰르의 부인과 처남은 전통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만들까 궁금해진 나는 그들을 따라가서 구경했다. 부인은 준비해 둔 밀가루 반죽을 쟁반 모양으로 둥그렇게 만든다. 처남은 흙으로 만든 화덕의 안쪽 밑에 나뭇가지를 넣고 불을 붙인다. 그 후에 화덕의 안쪽 벽에 그 반죽을 차례대로 붙이고, 시간이 지나면 떼어낸다.

그러면 빵이 완성되는 것이다. 화덕 안쪽이 꽤 뜨겁고 열기가 있을텐데 이 친구는 장갑도 끼지 않은 채 그냥 맨손으로 이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다음날 팔게 될 수십개의 빵을 전날 밤에 구워두는 것이다. 알리셰르는 방금 구운 따끈따끈한 빵을 연신 식탁으로 내오고, 우리는 그 따뜻한 빵을 안주 삼아서 차가운 보드카를 마셨다.

시간이 지나자 검문소의 경찰 몇명이 와서 술자리에 합세했다. 제복을 입은 친구도 있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사람도 있다. 나는 그중에서 나이가 좀 많아 보이는 경찰에게 검문소에서 자면 안되냐고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역시 단호하게 안된다고 말한다. 도보여행중에 하루는 꼭 경찰서에서 자보고 싶다. 그러려면 밤에 술마시고 깽판 한번 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까?

우즈베키스탄 전통빵 만들기 밀가루 반죽을 빚고, 화덕에서 굽는다.
▲ 우즈베키스탄 전통빵 만들기 밀가루 반죽을 빚고, 화덕에서 굽는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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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문소 앞의 식당에서 알리셰르(오른쪽) 가족과 함께 술을 마신다
▲ 검문소 앞의 식당에서 알리셰르(오른쪽) 가족과 함께 술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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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중앙아시아#도보여행#키질쿰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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