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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48년 12월 10일,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는 인류의 아름다운 약속이 시작됐지요.

며칠 뒤, 12월 10일. 아이들에게 인권에 대해 이야기 해 주세요. 모든 사람이 사람이기에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권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꼭 빼먹지 않아야 할 조항이 있어요. 세계인권선언 제 30조예요.

'이 선언에서 말한 어떤 권리와 자유도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짓밟기 위해 사용될 수 없다. 어느 누구에게도 남의 권리를 파괴할 목적으로 자기 권리를 사용할 권리는 없다.'

남의 권리를 파괴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수록 자연스레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는 편안한 사회가 될 거예요.

아이들에게 인권을 말하기 전에 가족들이 자주 찾는 식탁이나 거실 탁자에 잡지 한 권과 그림책 한 권 놓아 주세요. 말로 하면 잔소리나 듣기 싫은 이야기라 해도 그림을 넘기며 천천히 생각해보는 그림책 한 권으로 이야기를 건네면 효과적일 거예요.

잡지값은 걱정마세요. 국가인권위원회가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인권>은 신청만 하면 집으로 무료로 보내줍니다. 혼자 읽고 버리기에 아까워 가끔 다른 사람을 주기도 하고, 일부러 도서관 로비에 흘리고 오기도 하고, 심지어 반년에 한 번 갈까 말까한 미용실 잡지꽂이에 넣어두고 오기도 해요.

"우리 아이들을 팔아버릴까봐 걱정돼요"

헨리의 자유상자 헨리의 자유상자
▲ 헨리의 자유상자 헨리의 자유상자
ⓒ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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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제목은 <헨리의 자유상자>예요.

어린 노예소년이 보는 이를 응시하는 표지부터 예사롭지 않지요. 헨리는 자기 나이를 몰라요. 노예에게는 생일이 없거든요. 헨리 가족은 저택에 살아요. 친절한 주인님이 사는 곳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변한다는 것을 헨리 엄마는 잘 알지요. 어린 아들을 안고 엄마는 말해요.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들이 보이니? 저 이파리들은 나무에서 떨어지게 될 거야. 어린 노예들이 가족과 헤어지게 되는 것처럼."

어느 날 아침, 주인님은 엄마와 헨리를 불러 어린 헨리를 주인의 아들에게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날 이후 헨리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새를 볼 때마다 생각했어요. '자유로운 새, 행복한 새!'

이파리들이 마구 흩날리는 날, 헨리는 엄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눕니다. 새 주인의 담배 공장에서 일하게 된 헨리는 주인의 심부름으로 시장에 갑니다. 그곳에서 장을 보러 나온 낸시를 만나지요. 둘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마음을 나눕니다. 헨리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노예는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둘은 주인님들이 허락한 뒤에 결혼할 수 있었어요. 이 대목을 읽는데 요즘 우리나라 드라마가 생각났어요. 일일드라마에는 대개 결혼을 둘러싼 양가의 반대와 갈등, 그 안에서 고통 받는 젊은 남녀가 등장하니까요.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하면 결혼할 수 없다는 이상한 조건을 시청자에게 세뇌시키는 것 같아요.

제 주변에서도 양가 부모님의 반대로 20대 후반 청춘들이 결혼하지 못하고 거의 10년 가까이 애인 상태를 유지하며 결혼하고 싶어서 고통스러워해요. 어쩌면 그들의 어머니들이 드라마를 즐겨 보며 당신들이 하는 행동이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도 해요. 자유롭지 않은 노예와 우리나라의 청년들이 닮은 꼴은 결혼 말고도 또 있지만, 어쨌든 다시 150년 전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헨리와 낸시는 주인님의 승낙을 받고 결혼을 한 뒤, 귀여운 사내아이를 세 명이나 낳았어요. 저녁이면 한 데 모여 아버지가 튕기는 기타 소리에 맞춰 가족이 노래를 부르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요. 하지만 낸시는 불안했지요. 낸시의 주인님이 어마어마하게 큰돈을 잃었거든요. 아내는 노래하는 남편에게 말해요.

"주인님이 우리 아이들을 팔아 버릴까봐 걱정돼요."

걱정은 곧 현실이 되요. 공장에서 일하는 헨리에게 아내와 아이들이 팔려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지요. 그 순간에도 헨리는 공장장의 고함을 들으며 담뱃잎을 말아야 했어요. 점심시간이 되어 광장으로 달려갔을 때, 아내와 아이들은 손이 묶인 채 마차에 실려 헨리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어요. 헨리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어요.

몇 주가 흐른 뒤, 헨리는 운송용 나무 상자를 보며 자유를 얻을 답을 찾았어요.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백인 스미스 박사의 도움으로 그는 필라델피아행 나무 상자에 몸을 담기로 합니다. 스미스 박사는 나무 상자에 주소를 쓰고, 큰 글씨로 '이 면이 위쪽이니 주의하시오!'라고 적어두었습니다.

560킬로미터를 숨죽여 버틴 끝에 얻은 자유

 헨리의 자유상자 중에서
 헨리의 자유상자 중에서
ⓒ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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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상자에 갇혀 27시간을 버틴 헨리는 필라델피아에 도착합니다. 그림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실제로 헨리는 약간의 물과 비스킷 그리고 구멍을 뚫을 수 있는 공구를 갖고 상자에 들어갔다고 해요. 약 560킬로미터를 숨죽여 버틴 끝에 자유를 얻을 수 있었지요. 이 사건은 노예 해방을 반대하는 남부와 찬성하는 북부로 나뉘어 오랜 시간 정치적으로 싸우던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해요.

그 뒤 '헨리 박스 브라운'이라 불리게 된 헨리는 가족을 찾아 사방으로 헤맸지만 결국 다시는 가족을 만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이야기지만, 불과 150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세 살짜리 아이에게 읽어주기에는 내용도 어렵고, 글밥도 많은 책이지만 여섯 살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친구들에게 읽어주면 좋을 이 책은 어른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에요. 인권은 자기가 박해 받지 않으면 평소에 살피기 어려운 면이 있어요.

잡지나 그림책으로 타인의 고통을 살피고 안타까워하는 시간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해요. 내 권리가 어떻게 박탈당하는지도 모른 채 억압 받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지요. 그런 사회에 살면 언젠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으로 누릴 수 있고 그래야만 하는 것들을 침해당할 수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되지요.

평소에 인권에 자주 성찰하고 열악한 상황에 처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건 결국 우리 자신보다 아이들을 위한 일이기도 해요. 어려서부터 연대감을 키우는 건 어쩌면 부모가 아이들에게 해 줘야 할 기본적인 가치관 교육일지도 몰라요. 학교와 사회에서 경쟁하느라 가르칠 겨를이 없는 사이에 우리 아이가 인간으로서 누릴 권리를 알고, 자신과 타인의 자유에 대해 알아야만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내가 사는 오늘보다 나아질 테니까요.


헨리의 자유 상자

엘린 레빈 지음, 카디르 넬슨 그림, 김향이 옮김, 뜨인돌어린이(2008)


#인권#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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