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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도로가 계속 펼쳐진다
▲ 사마르칸드 가는 길 포장도로가 계속 펼쳐진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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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를 재워준 사불 할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쿠미쉬켄트에서 사마르칸드까지는 20km라고 한다. 아침에는 따뜻한 우유 한사발과 빵을 먹었다. 이 집의 마당 한쪽에는 소가 여러마리 돌아다니고 있다. 아마 저 소에서 오늘 아침 일찍 짜낸 우유일 것이다.

사불 할아버지의 손자인 7살된 라쉬한은 아침에도 할아버지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건강이 안 좋고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의 시중을 들기 위해서다. 어젯밤에도 라쉬한은 할아버지가 잠들 때까지 옆에 앉아서 온갖 심부름을 하고, 잘 때도 할아버지 머리맡에 누워서 잠을 잤다.

오늘 아침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학교에 갈 시간이 되자 어제 잠들 때 입었던 옷 그대로에, 등에는 조선시대 때 봇짐장수들이 사용했을 것 같은 보따리를 메고 나간다. 나를 보고 활짝 웃은 채. 학교에 다니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남자건 여자건 모두 깔끔한 옷차림에 깨끗한 가방을 메고 있던데.

어제 저녁부터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 집에 중년의 성인남성이 없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내외와 중년의 여성들, 그리고 어린아이들 뿐이다. 물어보았더니 사불 할아버지의 아들들은 모두 외국으로 일하러 갔다고 한다. 카자흐스탄과 러시아로.

우즈베키스탄의 작은 마을에서 일하는 것으로는 이런 대가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비교적 잘사는 외국으로 돈을 벌러 떠나고 이 집에는 노인과 여성, 어린아이들만이 남아있다. 라쉬한의 아버지도 지금쯤 외국 어딘가에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대가족의 살림을 꾸려가기 위해서 바쁘다. 아이들 중에서는 라쉬한이 가장 어려보이던데, 누가 저 막내한테 신경이라도 제대로 써줄까.

아무튼 생전 처음 보는 이 낯선 외국인을 선뜻 재워준 할아버지에게 고마울 뿐이다. 나는 감사의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빨리 걸음을 걸으면 여유있게 사마르칸드의 중심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사마르칸드의 풍광을 즐기면서 오후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역사도시 사마르칸드로 가는 길

길가에 있는 칼리지의 정문
▲ 사마르칸드 가는 길 길가에 있는 칼리지의 정문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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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시간에 사마르칸드에 대해서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다. 필수과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는지, 그렇게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 정사보다는 야사를 더 좋아했던 나에게, 사마르칸드라는 단어는 <아라비안 나이트>를 떠오르게 만든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도입부는 사산 왕조의 대왕이 두명의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그중에서 형이 대왕의 뒤를 잇고, 동생을 멀리 동쪽으로 보내서 사마르칸드를 다스리게 한다.

사산 왕조는 기원후 7세기까지 유지됐던 이란의 정복 왕조다. 지금의 이란에서 사마르칸드까지는 수천 킬로미터인데 어떻게 그 먼길을 이동할 생각을 했을까. 그 길은 고대의 실크로드를 그대로 따라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이란의 고원을 통과하고, 투르크메니스탄의 카라쿰 사막, 우즈베키스탄의 키질쿰 사막을 거쳐서 사마르칸드에 도착했을 것이다.

실제로 사마르칸드의 역사도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4세기에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점령당하고, 그 이후에는 사라센 제국, 몽골 제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는다. 그러다가 중앙아시아를 통일한 아미르 티무르가 14세기에 사마르칸드를 수도로 정하면서 도시의 운명도 바뀐다.

그동안 여러차례의 침략 속에서 파괴되었던 도시가 새롭게 재건된 것이다. 아미르 티무르는 자신의 무덤인 구르 에미르, 샤흐이진다 대영묘, 비비하님 성원을 비롯해서 푸른 돔으로 장식된 많은 건축물을 이곳에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유적들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오늘날 사마르칸드는 수많은 외국인이 북적이는 관광도시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오래 전에 중국에서는 사마르칸드를 강국(康國)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경전을 찾아서 천축으로 향했던 당나라의 승려 현장 삼장도 이곳을 방문한 후, 자신의 여행기인 <대당서역기>를 통해서 강국의 풍경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당시 사마르칸드는 실크로드의 중심도시로서 그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서 터키의 이스탄불을 연결하는 육상 실크로드를 지나갈 때, 어떤 길을 택하든지간에 중간에 사마르칸드를 거치게 된다. 이런 지리적이고 문화적인 특징 때문에 당시에는 1년 내내 수많은 외국 상인과 학자들이 모여들었던 도시다.

사마르칸드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나

거리에서 음료수를 팔고 있는 소년
▲ 사마르칸드 가는 길 거리에서 음료수를 팔고 있는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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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걷고 있는데 작은 승합차 한 대가 정면에서 다가오더니 내 앞에 멈추어 선다. 어제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이스한디가 그곳에서 내린다. 동료들과 함께 일터로 출근하는 중인 모양이다. 내가 물었다.

"일하러 가세요?"
"오면서 계속 찾았어."
"저를요?"
"이 아저씨 지금쯤 걸어올텐데. 왜 안 보여, 왜 안 보여 하면서."

이스한디는 자신의 부인에게 이야기 해두었으니까 사마르칸드에 도착하면 꼭 전화하라면서 전화번호를 다시 확인한다. 그리고 헤어져서 걷고 있으려니 난데없이 내가 가지고 있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누구일까?

"형님, 어디에요?"

이쉬티한에서 만났던 알리다. 그는 지금 사마르칸드로 오고 있는 중이라면서 내가 어디쯤인지 묻고 있다.

"사마르칸드에 거의 다 온 것 같아요. 알리는 지금 차 타고 오고 있어요?"
"예, 사마르칸드에 도착해서 제가 전화할게요."

사마르칸드에 가면 할 일도 참 많다. 밥 먹고 작은 호텔을 잡고, 전화하고 또 전화받고. 누쿠스를 출발해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런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도보여행의 거리가 쌓인만큼 현지인들과의 인간관계도 늘어난 모양이다.

오후 2시경이 되어서야 사마르칸드에 도착했다. 도시 외곽에서 중심가로 들어가는데만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사마르칸드가 큰 도시인만큼, 대로에는 차도 많고 사람들도 많다. 그들을 뚫고 걸어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레기스탄? 레기스탄?"

중심가에 있는 레기스탄 광장을 목표로 현지인들에게 길을 물으면서 걷는다. 잔뜩 흐린 날씨, 레기스탄에 도착하니 광장에는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 다닌다. 지금은 성수기가 지난 9월 말,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언제쯤이면 레기스탄 광장은 조용해질까.

사마르칸드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정면에서 바라본 레기스탄 광장
▲ 역사도시 사마르칸드 정면에서 바라본 레기스탄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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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기스탄 광장은 사마르칸드의 랜드마크 같은 장소다. 오래 전 티무르 시대에는 노천시장이 있었고, 그 이후에 메드레세(신학교)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사마르칸드의, 아니 우즈베기스탄의 대표적인 관광지 역할을 하고 있다. 광장을 정면에서 보았을 때 맞은 편에 보이는 것이 틸라카리 메드레세, 그 양쪽으로는 울르그벡 메드레세와 쉬르도르 메드레세가 마주 보고 있다.

나는 그 광장 앞의 계단에 털썩 주저 앉았다. 무엇을 먼저 할까. 밥도 먹고 싶고 호텔에 들어가서 펑펑 나오는 수돗물에 깨끗하게 씻고 싶기도 하다. 이스한디의 집으로는 언제 전화할까. 일단 밥먹고 좀 씻고나서 전화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정하고 나는 광장 앞에 있는 커다란 식당으로 들어섰다.

그곳에서 2000숨(1숨은 한화 약 1원)짜리 우즈베키스탄 짬뽕을 주문했다. 먹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식당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돈을 내야 한단다. 나는 이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그거 하고는 상관없단다. 무조건 화장실을 사용하려면 1000숨을 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건 또 무슨 경우인가. 우즈베키스탄에서 돈받는 공공화장실은 여러차례 보았다. 그런데 식당에서 밥먹고 화장실을 사용하는데도 돈을 내야하나. 사마르칸드에 워낙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다보니 이런 현상도 생기는 모양이다. 화장실이 급한 것도 아니고, 밥을 먹는 동안 충분히 참을 수 있다. 그리고 호텔에 가서 해결하면 될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밥을 먹고 나와서 호텔로 향했다. JONI 호텔이라는 작은 호텔에서 2일간 머물기로 했다. 가격은 1박에 20달러로 별도의 아침식사는 제공하지 않는단다. 씻고 나와서 이스한디에게 전화를 했더니 받지 않는다. 좀 시간이 지나서 다시 해보자고 생각하고 레기스탄 광장으로 나갔다. 어느덧 시간은 5시가 가까워졌다.

그런데 다시 해보아도 전화는 불통이다. 전화기가 꺼져있는 것이 아니라, 신호는 울리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다. 한술 더떠서 전화하겠다던 알리한테서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사마르칸드에 오면 할 일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할 일이 많은 것 대신에 이상한 일들만 계속 생기고, 나는 혼자서 조용히 레기스탄 광장에 앉아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해질 무렵 레기스탄 광장은 아름답다. 석양빛에 물든 메드레세의 푸른 돔, 이 광경을 넋놓고 구경하다보면 혼자인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아미르 티무르가 잠들어 있는 곳, 구르 에미르
▲ 역사도시 사마르칸드 아미르 티무르가 잠들어 있는 곳, 구르 에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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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 #도보여행, #사마르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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