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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기스탄 광장, 시르도르 메드레세
▲ 역사도시 사마르칸드 레기스탄 광장, 시르도르 메드레세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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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드에는 볼거리가 많다. 과거 실크로드의 중심도시이자, 화려했던 티무르 제국의 수도였던 곳이니만큼 볼거리가 많은 것도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실크로드 시대의 유적이나 유물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13세기초에 사마르칸드까지 세력을 넓힌 칭기즈칸이 이곳에 쳐들어와서 모든 것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마르칸드는 그 이후 14세기에 이곳을 수도로 정한 아미르 티무르가 재건한 것이다. 티무르는 폐허가 되어버린 사마르칸드에 사원을 세우고 신학교를 만들어서 제국의 수도다운 면모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칭기즈칸과 티무르는 모두 사마르칸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지만, 그 방향은 정반대였다. 사마르칸드의 역사에서 칭기즈칸은 파괴자로 취급당하고, 티무르는 재건자로 칭송받는다.

이건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문제다. 칭기즈칸은 왜 사마르칸드를 폐허로 만들었을까. 사마르칸드 뿐 아니라 칭기즈칸은 또 다른 도시인 부하라도 절반쯤 파괴시켰다. 과거나 지금이나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역사도시 2개가 칭기즈칸에 의해서 박살난 것이다.

칭기즈칸이 부하라나 사마르칸드를 특별히 증오했던 것도 아니다. 주민들의 저항이 있었지만 고생끝에 승리를 거둘만큼 전투가 힘들지도 않았다. 뼛속 깊이 유목민인 칭기즈칸이 보기에 부하라, 사마르칸드의 견고한 성벽은 유목의 정체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말을 타고 지평선을 바라보며 대초원을 달려야 직성이 풀리는 유목민족이라면 그런 파괴의 충동이 들었던 것도 이해가 된다. 성벽과 첨탑, 사원은 유목생활에 방해가 된다. 이동성을 극대화한 전통가옥 게르에서 생활하는 유목전사들에게 성곽과 해자는 이해할 수 없는 구조물이었을 것이다.

유목의 본질은 정착이 아닌 이동이니까, 그 이동을 가로막는 것들은 모두 부순다.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돌아가는 것처럼. 성을 파괴함으로서 초원은 다시 초원으로, 평원은 평원으로 되돌린 것이다. 성벽을 쌓고 말을 그 안에 묶어 두는 것 보다는, 성을 없애고 끝없이 달려가는 쪽을 택한 것이다.

칭기즈칸이 파괴한 도시 사마르칸드

티무르 제국의 세력판도
▲ 구르 에미르 내부 티무르 제국의 세력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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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을 하는 동안 걷는 날에는 이르면 오전 6시, 늦어도 8시에는 일어났다. 그래서인지 사마르칸드에 오면 늘어지게 늦잠 좀 자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걸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포근한 침대 이불속에서 뒤척이며 아무 생각없이 시간 보내기. 하루이틀쯤 그래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막상 사마르칸드에 오니까 그게 안된다. 사마르칸드를 둘러보고 싶다는 충동이 쉬고 싶다는 생각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군대 생활하던 시절, 휴가나가면 잠좀 실컷 자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정작 휴가가 시작되고나면 자는 시간을 아까워 하는 것처럼. 내가 비록 방위였지만 그 심정은 동감이 된다.

오전에 일찍 카메라를 챙겨들고 호텔을 나섰다. 큰길로 나서자 눈에 들어오는 레기스탄 광장 메드레세의 푸른 돔. 레기스탄 광장뿐 아니라, 사마르칸드에는 푸른 돔으로 장식한 건축물들이 많다. 티무르가 잠들어있는 구르 에미르, 비비하님 성원, 샤흐이진다 대영묘 모두 그렇다.

티무르가 유독 푸른 색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구르 에미르의 내부에는 티무르 제국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의 지도가 커다랗게 놓여져 있다. 그 지도에 의하면 당시 티무르 제국의 세력판도는 인도의 델리에서 지금의 이식쿨 호수까지, 서쪽으로는 바그다드를 거쳐서 이스탄불까지 장악하고 있다.

중앙아시아를 통일한 제국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면적으로만 따지자면 아마 세계역사상 열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제국일 것이다. 그런데 이후의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티무르 제국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그 이유는 티무르 제국의 특징에서 비롯된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아미르 티무르의 혈통은 칭기즈칸에 닿아있다고 한다. 그러니 티무르 제국은 몽골 제국의 뒤를 이어서 중앙아시아를 제패한 셈이다. 티무르 제국과 몽골 제국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중앙아시아를 통일한 티무르 제국

문양이 화려한 전통빵들
▲ 역사도시 사마르칸드 문양이 화려한 전통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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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점의 하나는 몇백 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유라시아를 정복했다는 점이다. 티무르와 칭기즈칸 모두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바탕으로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반면에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은, 정복한 지역을 장악하는 방식에 있었다.

몽골 제국은 현지의 원주민들을 배려하면서 융화시키는 정책을 사용했고, 그 지역에 몽골 제국 특유의 체계를 구축하려 노력했다. 때문에 칭기즈칸이 죽은 이후에도 몽골 제국은 계속 유지되었고, 결국에는 쿠빌라이가 중국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티무르 제국은 그렇지 않았다. 티무르에게 정복전쟁은 이슬람의 성전이었다. 죽기 전에 명나라에 쳐들어갈 계획을 세울때도 중국을 이슬람으로 개종시키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티무르는 한 지역을 정복한 후에, 그 지역에 적합한 통치체계를 세우는데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티무르 제국은 티무르가 죽고나서 급속하게 줄어들고 와해되었다.

이런 특성은 제국의 이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몽골' 제국과 '티무르' 제국. 티무르라는 이름이 앞에 붙어있는 이유는, 티무르가 워낙 걸출한 인물이기 때문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죽고나서 그 제국도 별볼일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군사력 이상의 것들이 필요하다. 위의 두 제국의 사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또다른 차이점은 티무르는 사마르칸드를 수도로 해서 이 지역에 많은 이슬람 건축물들을 남겨두었다는 것이다. 대신 몽골 제국은 변변한 건물하나 남기지 않았다. 하다못해 칭기즈칸은 자신의 무덤도 남기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바이칼 호수 알혼섬 어딘가에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다는 소문이 마치 전설처럼 떠돈다. 칭기즈칸이라면 자신이 묻힐 장소로 알혼섬을 선택한 것도 이해가 된다. 대제국을 호령했던 불세출의 영웅인만큼, 신비의 섬 알혼에 누워서 자신이 점령했던 유라시아의 대초원을 내려다보며 죽음을 맞고 싶지 않았을까.

티무르 제국과 몽골 제국의 차이점

슬픈 전설의 비비하님 성원
▲ 역사도시 사마르칸드 슬픈 전설의 비비하님 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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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드 시내를 벗어나서 아프라시압 언덕 가는 길을 따라서 계속 올라가면 울루그벡 천문대가 나온다. 역시 티무르 시대의 유적이다. 울루그벡은 아미르 티무르의 손자로 티무르의 뒤를 이어서 사마르칸드를 통치했던 인물이다. 왕이자 뛰어난 천문학자였던 울루그벡은 사마르칸드에 천문대를 설치하고 별의 움직임을 관측했다고 한다.

현재는 천문대의 기초만 남아있을 뿐이다. 울루그벡이 살았던 당시에는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천문대가 있었다고 한다. 종교를 중시하는 당시의 관습과는 달리, 울루그벡은 천문학을 포함한 각종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결국에는 그런 성향에 반발하는 이슬람 지도자에 의해서 암살당하고 만다.

나는 그 천문대로 오르던 도중에 작은 상점에 들렀다. 카메라에 넣을 건전지를 사기 위해서다. 한국에서 배낭을 꾸릴때 충전기와 충전지를 챙기지 않았다. 전기를 얼마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무엇보다도 짐을 줄이자는 생각에서 였다. 그냥 마트에서 AA사이즈의 건전지 여러개를 사왔을 뿐이다. 필요하면 현지에서 보충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런데 며칠 전에 상점에서 '메이드 인 우즈베키스탄' 건전지를 하나 구입했다가 낭패를 보았다. 상점에 진열된 여러개의 건전지 중에서 우즈벡 건전지를 한번 써보자는 생각으로 구입한 것이다. 하긴 살때부터 뭔가 좀 이상하긴 했다. 겉에는 AA라고 사이즈가 명시되어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크기가 달라보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무 생각없이 그 건전지를 구입했다. 비닐을 벗기고 카메라에 넣자 그 건전지의 크기가 일반 AA사이즈 보다 약간 작다는 것이 드러났다. 새 건전지를 넣었는데도 카메라는 작동하지 않는다. 사이즈가 정확히 맞지 않으니 제대로 접촉하지 못해서 작동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 다음부터는 상점에서 건전지를 구입할때 보다 신중해졌다.

천문학에 관심이 많던 울루그벡

울루그벡의 석상
▲ 역사도시 사마르칸드 울루그벡의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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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루그벡 천문대 앞에는 울루그벡의 석상이 있다. 턱을 괴고 선 자세로 자신이 만든 천문표를 내려다보면서 뭔가를 고심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 석상 너머로 천문대 유적이 자리잡고 있다. 지하 깊숙히 뻗어있는 천문대 터와 한쪽으로는 울루그벡을 기념하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

그 안에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울루그벡, 앉아서 생각에 잠겨있는 울루그벡의 모습이 들어있다. 울루그벡의 머릿속에는 이슬람교의 교리보다는 천문의 원리와 과학이 더 많이 남겨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결국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지만.

나는 천문대에서 내려와 샤흐이진다 대영묘와 비비하님 성원을 둘러보고 다시 레기스탄 광장으로 향했다. 여전히 수많은 외국인들이 몰려다닌다. 전화하겠다던 알리한테서는 아직도 소식이 없고, 전화하라던 이스한디와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

티무르가 어떤 인물이었건, 티무르 제국이 대제국을 건설하고도 단명했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티무르는 이 사마르칸드에 웅장한 이슬람 건축물들을 만들었고, 그 건물들은 지금도 전세계에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티무르는 죽어서 이름과 함께 건축물들을 남겼다. 티무르 제국은 짧았지만 티무르의 이름은 영원한 이유다.

샤흐이진다 대영묘
▲ 역사도시 사마르칸드 샤흐이진다 대영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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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 #도보여행, #사마르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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