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식당에서 일하는 쉬린
▲ 우즈베키스탄의 여인들 식당에서 일하는 쉬린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김태희가 밭을 갈고, 송혜교가 지게를 진다."

인터넷을 떠도는 괴담(?) 중에 하나다. 우즈베키스탄의 젊은 여인들이 그만큼 예쁘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여행을 준비하면서 주변 친구들에게 우즈베키스탄에 간다는 얘기를 했더니, 어떤 녀석이 "우즈벡 여자 만나러 가는구나?"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 여성들의 외모에 관한 소문이 언제부터 이렇게 퍼졌을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TV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가 그 한몫을 했을 것이다. 아무튼 남자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는 충분하다. 도대체 미모가 어느 정도기에 밭갈고 지게지는 여인들의 수준이 김태희, 송혜교란 말인가?

외국의 이성에 관한 뜬소문은 많다. 예전에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유럽으로 배낭여행 가거든, 여자들은 이탈리아 남자의 눈을 보지말고, 남자는 스페인 여자의 눈을 보지말라."

그럴 경우 시쳇말로 '뻑간다'는 말이다. 그 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온 친구들에게 실제로 어떠냐고 물어보았더니 시큰둥한 대답이 돌아온다.

"내가 보기에는 뭐 별로던데."

미모에 관한 것은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주관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나도 우즈베키스탄 여성들에 대해서 뭐라고 말은 못하겠다. 다만 그동안 내가 걸어오면서 만난 여인들을 생각해보면 대부분이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다. 눈이 크고 코가 오똑하다. 쌍꺼풀도 진한데다가 늘씬한 체형을 가지고 있다. 이 정도면 미인이 되기위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아마도 여기에는 역사적인 사연이 관련된 것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육상 실크로드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에, 그 중심에 위치하던 곳이다. 수도인 타슈켄트를 포함해서 역사도시 사마르칸드, 부하라 모두 실크로드의 주요도시들이었다. 터키의 이스탄불을 가리켜서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곳'이라고 부르던가.

고대에는 우즈베키스탄의 도시들이 바로 그런 역할을 했었다. 자연스럽게 동서양의 많은 상인과 학자, 군인들이 그 도시로 모여들었다. 그러다보니 동양과 서양이 뒤섞인 혼혈이 생겨나고, 동서양의 장점만을 취합한 외모가 탄생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내가 보기에도 그런 면이 있다. 동양인처럼 보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서구적인 분위기가 풍기고, 그렇다고 서양인이라고 하기에는 왠지 동양적인 친근함이 느껴지는 외모. 우즈베키스탄의 현지인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우즈베키스탄에는 많은 민족이 혼재되어 있다. 공식적으로 고려인을 포함해서 수십 개가 넘는 민족이 살고 있다고 한다. 특히 타슈켄트 시내를 걷다보면 이런 다양한 민족의 여성들을 마주치게 된다. 북유럽에서 내려온 듯한 금발머리의 장신여성, 이슬람 전통 복장을 한 여성, 한국인이라고 착각할만큼 우리와 비슷한 여성 등.

이런 특징 때문에 아마도 우즈베키스탄 여성의 외모에 관한 소문이 인터넷을 떠돌아다닐 것이다. 그 소문을 실제로 김태희, 송혜교가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새벽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길을 걷다

식당에서 일하는 굴랴
▲ 우즈베키스탄의 여인들 식당에서 일하는 굴랴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빡따꼴 지역
▲ 굴리스탄 가는 길 빡따꼴 지역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새벽일찍 길을 떠났기 때문에 슬슬 배가 고파온다. 시간은 어느덧 오전 10시. 새로 공사를 하는 듯한 거리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양고기국과 빵, 녹차를 주문하고 앉아있자니 군인처럼 보이는 사람 두 명이 들어와서 다른 탁자에 앉는다.

잠시후에 음식이 나왔다. 수저로 고기국을 저어보았더니 바닥에 하얀 밥이 담겨있다. 우리나라의 국밥처럼. 그동안 여행하면서 양고기국을 셀 수 없이 많이 먹었지만 이렇게 밥이 담겨 있는 경우는 처음이다. 이 음식도 지방에 따라서 만드는 법이 다른가 보다. 나는 열심히 국을 떠먹고 빵을 먹었다.

그때 다른 탁자에 앉아있던 군인 한 명이 나에게 다가온다. 손에는 작은 접시를 들고 있다. 그도 내가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이라는 것을 안다. 나에게 접시를 내밀더니 먹으라는 시늉을 한다. 접시에는 작은 만두 4개가 담겨있다. 이미 나는 양고기국과 빵으로 배가 부른 상태다. 괜찮다고 했지만 이 군인은 억지로 접시를 나에게 넘긴다.

기왕 이렇게 된거 배터지게 먹어보자. 나는 작정하고 그 만두를 꾸역꾸역 다 먹었다. 일어서려니 정말 배가 부르다. 걷다보면 배가 가라앉겠지.

"고마워요!"

나는 그 군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며 밖으로 나왔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고맙다는 표현을 할때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대면서 가볍게 몸을 숙인다. 그것이 '고맙다'는 몸짓이다. '먹는다'는 표현을 할 때는 손가락을 모아서 입에 대면서 '쩝쩝' 소리를 낸다. 처음에 나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우스운 일을 겪었다.

여행 초기에 식당에 들어가서 먹는 시늉을 했었다. 우리나라에서 처럼 오른손으로 숟가락질을 하는 시늉을 한 것이다. 그러자 식당 주인은 양치질을 의미하는 줄 알고 양치용 컵에 물을 담아서 치약과 함께 가져다 주었다. 그때 혼자서 밥을 먹으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식당 밖으로 나와서 상점에 들어갔다. 화장지와 양말을 두 켤레 샀더니 1200숨(1숨은 한화 약 1원)을 받는다. 내가 가진 양말이 모두 앞뒤로 헤졌다. 바느질로는 도저히 원상복구가 안될만큼 망가진 것이다. 식당 밖으로 나와서 양말을 갈아신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빵빵해진 배와 깨끗한 양말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군인들에게 만두를 얻어먹고

거리에서 수박, 메론을 팔고 있다.
▲ 굴리스탄 가는 길 거리에서 수박, 메론을 팔고 있다.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메론 먹고 가요!"

한참을 걷다보니까 도로 한쪽에서 수박과 메론을 엄청나게 쌓아놓고 팔고 있다. 워낙 많은 양이기 때문에 장사하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나를 불러서 메론을 먹으라고 권한다. 오늘은 먹을 복이 터진 날이다.

이곳에서 메론을 먹으며 쉬다가 다시 걸었다. 여기서 몇 킬로미터를 더가면 경찰 검문소가 나온단다. 검문소를 지나갈까 아니면 그 전에 잘 곳을 찾아볼까. 계속 걷다보니 한쪽에 주유소가 보인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5시.

잠시 생각하다가 나는 그 주유소로 들어갔다. 주유소는 그동안 들러보고 싶은 곳 중에 하나였다. 마침 그 주유소에서 사람 한 명이 나오고 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혹시 여기서 하룻밤 잘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오른손을 가슴에 대며 고맙다는 시늉을 한다. 내가 부탁했는데 왜 자기가 고맙다는 말을 하나.

그는 올해 28세의 일요. 일요는 24시간 문을 여는 이 주유소에서 2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여기서 1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집이 있다고 한다. 일요를 따라서 주유소 안으로 들어가자 내부에는 작은 침대 두개가 놓여 있다. 그는 나에게 한쪽 침대를 권한다. 짐을 풀고 털썩 주저앉으니 침대가 푹 꺼지는 느낌이다.

여기서는 어떻게 주유하는지 궁금해서 방문하는 차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곳의 주유소는 일종의 셀프서비스다. 차가 들어오면 알바생들이 맞이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운전자가 일요에게 몇 리터 넣겠다고 말을 하면, 일요는 가격이 얼마인지 말한다. 운전자는 돈을 건네주고 일요는 가격에 맞게 사무실의 기계를 동작시킨다. 그러면 운전자는 주유기 호스를 꺼내서 주유구에 대고 기름을 넣는 것이다.

일요가 기계의 눈금을 보다가 작동을 멈추면, 운전자는 다시 호스를 주유기에 걸고, 차의 주유구를 잠그고 떠난다. 운전자가 가고 나면 일요는 내 침대 앞에 있는 책상서랍에 그 돈을 그냥 던져 넣는다. 서랍에는 별다른 안전장치도 없다. 그리고 실내에 CCTV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일요는 뭘믿고 내가 보는 앞에서 저렇게 돈을 다루는 걸까. 실내에 나를 혼자 두고 밖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다. 돈을 넣을 때 보니까 언뜻 보기에도 꽤 많은 돈이 들어있던데, 내가 저 돈에 손댈 거라고는 아예 생각도 안하는 모양이다. 처음 이곳에 들어오면서는 내 짐을 걱정했는데, 그게 아니라 저 돈을 걱정해야할 판이다.

그 와중에도 승용차가 계속 들어오고, 일요는 그때마다 그들을 맞는다. 오늘 잠들 때까지 차가 몇 대나 오나 어디 보자. 일요와 함께 음식을 먹는 와중에도 차는 꾸준히 들어온다. 한밤중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밤이 되자 실내에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일요는 곧 잠이 들어서 코를 골고 있다. 주유를 원하는 손님은 계속 들어와서 창문을 두드린다.

"일요! 일요!"

푹 잠이 들지 못했던 나는 그때마다 일어나서 일요를 흔들어 깨워야 했다. 이 친구는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이 들었다. 아무래도 긴 밤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2교대로 주유소에서 근무한다.
▲ 주유소의 친구 일요 2교대로 주유소에서 근무한다.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이곳에서 하룻밤을 잔다
▲ 일요가 일하는 주유소 이곳에서 하룻밤을 잔다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태그:#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 #도보여행, #여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