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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모'도 노무현 대통령에게 지지표를 던지지도 않았던 나

 

5월 23일 토요일 아침 8시 40분쯤 한통의 문자를 받았다. '노무현씨 음독설이 있는데 아세요?' 딱 한 줄짜리 그 문자에 너무 놀라서 '노사모' 대표였던 노혜경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씨는 "이미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그 분이 그런 능욕을 어떻게 견디실 수 있었겠어요? "라며 울음을 터트렸다. 나도 모르게 전화에 대고 "이건 아니잖아요!"라고 소리치며 울음이 터졌다. 노혜경씨는 봉하로 내려가는 중이라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남들이 소위 말하는 '노사모'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2002년 대선 때조차 노무현 대통령에게 지지표를 던지지 않았다. 남들은 신선하게 받아들인 그였지만 새내기에 가까운 그의 정치 경력이  마음에 걸렸고, 개인적으로는 민주노동당 지지기반에 단 한 표라도 힘을 실어주려는 마음이 앞서 그에게 표를 던지지 못했다.

 

새 정부 출범 이래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 정부, 숨은 인재 발굴, 권위주의와 학벌, 지연, 학연을 탈피한 새로운 정부 상 만들기를 외쳤다. 참여 정부 출범 100일 째, 노무현 대통령은 MBC 특집기획 100분 토론시간에 국민 대표 50인과 대화를 시도했다. 대구 참사로 지연되던 국민과의 대화의 장 겸 패널 토론 시간에 북핵문제, 한미 회담, 국정원, 전교조, 부동산 문제, 경제 활성화 방안 등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국민들의 궁금증과 가려운 곳을 긁어줄, 시원한 답변 자리가 마련된다고 하였다. 나도 국민대표 50인 중 한명으로 토론에 참여했다. 50인 모두에게 질문의 기회를 준다는 말에 잔뜩 기대를 하고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하고 갔었다.

 

그러나 서너 명 외에 질문 기회조차 주지 않은 토론회에 실망을 가득 안고 돌아와서 게시판에 '허울 좋은 참여정부, 언로는 열려있는가?'라는 비판의 글을 썼다. 그 글이 대자보 메인 면에 걸리면서 악플이 주르륵 달려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그 글을 시발점으로(탄핵 현장 기사 제외) 이라크 파병, 한미 FTA, 용산 반환기지 주상복합 건물 건축문제, 새만금 방조제 막음사건 등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사건건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런저런 비판의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심지어 청와대에서 국민과 함께 국정보고를 받는 자리에서조차 누군가가 기습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다. 어디서건 그렇게 목청껏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사실은 참여정부가 언로를 열어놓은 덕분이었다는 것을.

 

정말 그는 만만한 '바보 대통령'이었을까?

 

그가 대통령의 자리에 앉은 뒤,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그를 흔들어댔다. 국민들은 국민들대로 우리가 뽑아줬으니 우리 요구와 목소리를 들어줘야만 한다고 한껏 목소리를 높였고, '여소야대' 국회의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사사건건 대통령의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다가 급기야는 민주당과 야합하여 대통령 탄핵이라는 기막힌 일을 벌이기도 했다.

 

'바보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에게 따라다닌 별칭이다. '바보'라고 부를 만큼 그는 국민들의 눈에 만만하기만 했던 것일까? 2003년 3월 12일 탄핵 사건을 다룬 나의 기사 제목조차 '노무현 마음에 안 들지만 바보취급에 열 받아'이다. 그 기사 일부는 아래와 같다.

 

어쩌면 내 맘속에서 유독 대통령인 그에게만 이 시대의 노불들이 상실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요구했는지도 모른다. 그이만은 그래도 남들과 다르기를 바라는 마음, 그 때문에 실망이 컸고 화가 나서 투덜거렸다. 기왕 사과를 할 거면 쌈박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끝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의 탄핵안이 가결되고, 노인네들, 중산층 기득권, 유한마담 같은 아줌마 부대들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등, 심지어 상스러운 말로 정죄하며 바보취급을 하면서 마치 이제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이 끝난 것처럼 기정사실화하며 떠들어대는 것에 너무 화가 났다.

 

아무리 지지기반이 약하고 연륜이나 경험도 적은 대통령이지만 우리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아니던가? 이건  절대  민중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우리가 때로 실망하고 질책했던 것은 그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애정의 증거였지 그를 무조건 "거 봐, 촌놈이 그럴 줄 알았어. 이제 끝이로군." 그런 심보가 아니었던 것이다.-브레이크뉴스(2004년 3월 12일)

 

 

그때는 너나 할 것 없이  대통령을  정말 만만하게 여겼나 보다. 하지만 그가 진짜 그렇게 만만한 대통령이었던 걸까? 사실은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열악한 성장 배경을 지녔던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을 내심 시기하고 은근히 깎아 내리며 그를 만만하게 여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었다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음을 다스리려 책을 읽는다는 소식에 라디오21TV 청취자들이 12권의 책을 봉하 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이 5월 13일이다. 나도 4권의 책을 추천했던 터라 유서에 쓰여진 한 대목에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모른다.

 

[노대통령 유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보낸 책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1, 2, 3, 4) - 피에르 쌍소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 라셀 카르티에, 장 피에르 카르티에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 리 호이나키

★르몽드 세계사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 스티글리츠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 하종강

★탐욕의 시대 - 장 지글러

★달러 : 사악한 화폐의 탄생과 금융 몰락의 진실 - 엘렌 H 브라운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 리처드 스코시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 서경식

★코드 : 사이버 공간의 법이론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 전문이다. 토요일 오후 YTN뉴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유서에서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 도 없다'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에 어떤 심경이었기에 책을 읽을 수조차 없었던 것일까? 심지어 감옥에서조차 책을 지독하게 싫어하던 사람도 책을 읽는다고 하는데. 그런데 사람과의 소통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고 독서를 좋아하던 분이 평상심을 잃고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면 그건 이미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심리적으로는 감옥 이상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마음을 다스리라고 느리게 살기를 추천한 이는 유서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경험해 본 사람들만 알 것이다. 책을 읽을 수조차 없는 상황이 얼마나 암담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자성의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서야 할 순간

 

어찌 그리 가셨습니까?

대통령이라는 직함은 이미 개인의 삶을 넘어선 것인데요...

우리는 당신을 잃은 순간 노무현 이라는 이름으로 상징된

꿈 전부를  함께 잃어 버렸습니다.

 

돈, 배경. 학벌, 인맥, 학연, 지연 그 모든 것이 없어도

한 인간이 지닌 꿈과 의지 희망만으로 세상을 바꿔보리라

꿈 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당신은 개혁과 진보를 꿈꾸는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들에게 작은 희망의 촛불 같은 존재셨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촛불의 힘, 민중의 힘이  거대한 권력의 힘 앞에서는

작기만 했나 봅니다.

탄핵 당시처럼 국민 모두가 바람막이가 되어 진정 옳고 그름을 가리려는

의지가 있었더라면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까요?

 

부디 이제는 편안히 가십시오. 그러나 꼭 영혼이라도 지켜봐주십시오.

세상이 변화하는 그날, 민중들이 승리하는 그날까지...

보통 사람인 당신이 그렇게 변화시키려던 세상

보통 사람인 당신이 그리던 참세상을 희망의 열매로 피워낼 수

있는 그날이 오기까지

 

저 글은  황망 중에 추모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 시청 앞 길을 막아 선 경찰 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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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탄핵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시민기자로 탄핵 현장에 나가 8편의 기사를 썼다.

지금 다시 그 기사를 읽으며 여전히 탄핵의 연장선상에 있었음을 알게 되어 몸서리가 쳐진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겠지만 이제야말로 다시 한 번 자성의 촛불을 밝혀들고 광장에 서야 할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의 죽음, 용산 참사 등 끝없이 이어지는 피의 희생을 막고 후퇴한 민주주의를 회복해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태그:#노무현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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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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