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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엉이 바위와 다산초당
ⓒ 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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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만을 가르며 휘돌아 치는 구강포 줄기의 샛노란 하늘 햇살, 그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서 생전 백련사 주지 혜장 아암은 일지암의 초의선사와 초당의 다산은 여가를 그토록 즐겼을까. 넉살 좋은 풍광은 다산의 찻잎에서 찻잔에서 3무, 번뇌의 세상을 말하는 것 같고 초여름 가벼운 농을 던지듯 철새들의 까닭 모를 지저귐은 초의선사의 멋들어진 해학 같이 해탈하듯 동백이 안고 품었네.

 강진만
강진만 ⓒ 정선영

저 멀리 길 가운데로 천주와 석가모니의 찬란한 교류가 길을 만들고 그 길은 소통을 위한 가교(家敎)라 한다네. 그 글에 서면 다산의 천주도 아암 혜장의 석가모니 도, 다 하나의 삶이요, 멋이요, 거룩함이었다네. 이치를 알면 죽은 듯하여 고요하고 이치에 눈뜨면 양심이 되어 고뇌하고 번민했을 그 길,

누군들 있어, 이 시대 밖의 세상과 소통하리요. 그것은 진보와 보수도 아닌, 인(人)이요, 인(認)이니 사람은 그저 참는 것이라, 세월과 소통을 알리는 참다운 지혜를 알기에 일필휘지의 추사도 머물다 지치면 보정산방(寶丁山房)에 머물렀다네. 그 편안함을 통한 느슨함의 또 다른 소통을 위하여.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밖에 서보면, 연지석가산의 좁쌀 잉어가 가벼운 울림에 물결은 어느덧 잔주름치고, 그 위에 간헐적으로 흐느적거리면 부유하는 나뭇잎은 살짝 주역으로 풀어볼까, 하다가 이내 뒤돌아서고 만다. 어쩌면 고매한 학문이기 이전에 세상 이치일 따름이요, 권력의 무상함은 그 역시 낳고 죽는 것 그것 이상의 소통의 한 방편일 따름이다.

 연지석가산
연지석가산 ⓒ 정선영

정석(丁石)으로 각인한 아픔을 쪼아내, 손등은 피 흘리고, 고통을 다스리고자 재차 정에 혼을 쏟아 부어 보니, 어느덧 산중엔 대나무처럼 가득한 고집뿐이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 허무한 고통을 참고 있을까 하여 뒤돌아보니 산중엔 호랑이 가득하여, 그보다 더 무서운 아전들의 횡포에 신음하는 백성들뿐이었네.

찻잔의 고요함은 노동의 시 한 구절처럼 평생의 불평스러운 일들을 모두 털구멍으로 흩어져 나가게 하였다네. 시가 무엇이요, 아집이 무엇인가. 다 내려놓고 다 부질없는 것은 시장 바닥에 허허로운 햇살 한줌보다 가치 없는 욕망이라네.

세상을 바꾸어보리라 했던 노장의 죽음은 부엉이 바위에서 세상사는 바른 이치를 절규하듯 메아리치며 생을 마감할 때, 그 반대편에서는 부질없는 욕망의 꿈 타래를 붙들고 비웃듯 진실을 갖은 방법으로 비틀어댔지만 그 언젠가는 비열함의 그 끝에서 남도 북도 아닌, 핵무기도 개성공단도 아닌, 그저 주검의 싸늘한 작은 비석일 따름이네.

다산에 서면 추사의 찬연한 글씨와 초의의 작은 소중함을 알게 해준 찻잔과 아암의 주역 한 장이 나붓기네. 다산의 통로에 들어서면 어디가든 만나면 길이요. 어디선가 마주보면 본 듯한 그늘과 소슬소슬 불어대는 나무잎사귀, 그래서 우리는 "본듯함"과 "만난 것" 같은 것과 또 다른 인연을 맺으니, 그게 동암에서 써내려갔던 다산의 519권 찬란한 학문보다 나은 이치일지도 모른다.

다조에 앉아서 시름하듯 들려오는 물소리를 들어보니, 그것 역시 무상함의 소통이요. 회화처럼 그려지는 인생의 회한뿐이다. 늙어 이곳에 와보리니, 아 시대의 저주처럼 들리는 광장의 불임의 기간들, 언젠가는 막말하고 죽어간 이로 기억되는 서울 시청 앞 마이크 소리에서 흘러나온 궤변이 통곡을 하리라.

대통령이 아닌 한 개인의 세상 등짐에도 우리는 아픔을 전하거늘, 이 시대의 소통을 위해 마지막으로 택한 그 거룩한 길에 고통을 어찌 통분으로 여기지 못하고 연지석가산의 대통을 들고 후려치는 듯한 노망을 들어야 할까. 삽 한 자루 쥐어줘 스스로 무덤을 파게 하리니, 그게 가슴을 쓸어내리는 진창에 갈갈이 찢겨진 철학이 우르르 쏟아지는 것 같으리라.

 전 노무현 대통령
전 노무현 대통령 ⓒ 사람 사는 세상

사랑하라, 이웃을. 그건 진정한 소통이었다. 사랑하라, 그가 진보도 보수도 아닌 사람으로 사랑하라. 그저 안고 품어라. 그게 민주주의 독재든 그게 사람인 까닭이리라. 탐하지 마라, 남의 죽음,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탐하지 마라. 그저 아파하리라.

천일각에 서서 하늘을 보니, 너무 맑은 하늘이 가슴에 안겨 있으니 흑산도의 형에게 달려가고 싶어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절절하여 귤동 마을 마름 나무에 앉아있던 새들이 후르룩 놀라 달아나고야 만다. 삽 한 자루는 IT 회로망을 이해 못하여 세상과 단절하고 자산어보 속 그물에 갇힌 흑산도의 수많은 물고기처럼 가두어짐의 연속이다. 그것이 결국 신유사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산초당
다산초당 ⓒ 정선영

"다산초당에는 정석(丁石)이라고 새긴 바위, 대나무와 소나무가 무성한 속에 있는 약천(藥泉), 맑은 샘, 차를 끓이던 차부뚜막이 있다. 이 정석(丁石), 약천(藥泉), 연지(蓮池), 다조를 '다산4경(茶山四景)'이라 일컫는다.

다산은 혜장선사, 초의선사, 추사와 함께 한국 다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어쩌면 귀양살이의 고통과 세속의 시름을 잊으려고 이들과 함께 다도 삼매에 들었을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다산은 풍류와 멋을 아는 명인(名人)으로 학자의 진면목(眞面目)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곳 다산초당은 다산의 사상이 잉태된 역사의 현장이다. 방대한 육경사서에 대한 저서를 비롯하여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 500여권을 이곳에서 저술했다. 이 저작물은 '한국학의 보고'가 되었다. 이곳이야 말로 다산학의 산실(産室)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CPN문화재방송국과 동시에 제공됩니다.



#다산#노무현#부엉이#추사#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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