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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국회의원 가슴에 달린 금배지.
국회의원 가슴에 달린 금배지. ⓒ 오마이뉴스
지난 달 30일 국회사무처가 국회의원을 상징하는 금배지 모양을 바꾸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15대 국회 때부터 사용해온 현 금배지는 앞면에 무궁화꽃 모양에 '國' 자를 새겨 넣은 것이다. 금배지 뒷면에는 국회 대수와 국회의원 등록순위가 새겨져 있다. 순은으로 도금처리하기 때문에 개당 제작비만 약 2만2000원이 들어간다. 

그런데 금배지 앞면에 새겨진 '國' 자가 '의혹'을 뜻하는 '或' 자로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는 '혹세무민'(惑世誣民)를 뜻하는 것 아니냐는 뼈있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국회사무처가 금배지 모양을 바꾸기로 결정한 이유도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그런 지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정원'이 '국회'로 바뀌다... '시민대표'인가 '국가대표'인가?

국회사무처는 현재 4가지 안을 내놓은 상태다. 1) 무궁화꽃과 '國' 자를 없애고 한글로 '국회'라고 새겨넣은 안 2) 무궁화꽃은 그대로 두고 '國' 자만 한글 '국회'로 바꾸는 안 3) 국회의사당을 단순하게 형상화하는 안 4) '國' 자를 없애고 무궁화꽃 모양을 간결하게 나타내는 안 등이다.

국회사무처는 9월 중순까지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이 네 가지 금배지 도안의 선호도를 조사한 뒤 새로운 금배지 모양을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그런데 국회사무처가 제시한 금배지 변경안을 보고 있노라면 '모양'에만 관심을 쏟은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강하다. 나라꽃이 무궁화이기 때문에 무궁화꽃을 넣은 것이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國' 자를 넣은 것이 '국회' 본래의 의미와 역할을 적절하게 담았다고 할 수 있을까? 국회사무처에서 그런 철학적이고 역사적인 고민을 했더라면 정말 '새로운 금배지'가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현 국회의 시원은 1919년 4월부터 1945년 4월까지 유지된 임시의정원이다.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입법부에 해당한다. 임시의정원은 임시정부의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주권재민과 3권분립에 입각한 '민주공화정'을 채택했다.

특히 '國會'라는 용어 대신 '議政院'란 용어를 썼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이걸 굳이 풀이하자면 '의회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쯤 되겠다. 

그런데 8·15 광복 이후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 제헌국회로 이어졌고, 제헌국회가 개원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61년 동안 '국회'라는 용어를 써오고 있다. 하지만 바뀐 '국회'라는 용어에서 '의회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의미를 찾기는 쉽지 않다.

독일 카르펜 교수의 충고 "시민, 대중을 뜻하는 民자로 바꿔라"

미국의 Congress, 영국의 Parliament, 독일의 Bundestag, 스페인의 Cortes, 러시아의 Duma가 우리의 국회에 해당한다. 이들은 대부분 '모이다' '말하다' '대표' '재판정'의 뜻을 가지고 있고, 보통 '의회'로 번역된다. 프랑스의 경우 '국민의회'(Assemblée nationale française)라는 용어를 쓴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만 유독 '국회'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시민대표들의 회의체'라는 의미보다는 '국가대표들의 회의체'라는 느낌을 준다. 한 블로거는 "우리나라 국회의 명칭 자체가 시민 중심이 아니라 국가 중심의 발상에서 나왔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국회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소준섭 국회도서관 해외자료조사관(국제관계학 박사)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국회라는 용어는 '國' 자를 사용함으로써 견제대상으로서의 '국가' 이미지를 거꾸로 차용해 마치 '국가의 대표'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며 "이로 인하여 결국 '시민으로부터 벗어나 거꾸로 시민을 지배하는' 권력의 이미지를 제공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소준섭 조사관은 국회의 새로운 이름으로 '민회'(民會, 시민대표의 회의체)나 '공회'(公會, 공민의 회의체)를 제안했다. 이 두 가지 용어가 지나치게 낯설면 우리에게도 익숙한 '의회'로 바꾸어도 좋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난해 8월 법제처의 초청으로 한국에 온 카르펜 독일 함부르크대 교수가 국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한복판에 장식된 국회 마크에 '國' 자가 새겨진 알고 놀라며 이렇게 충고했다고 한다.

"'國' 자를 시민, 대중을 의미하는 '民' 자로 대체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국회사무처가 밝힌 계획대로라면 조만간 새로운 금배지가 나올 것이다. 국회를 '시민대표들의 회의체'라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금배지에 새길 글자로는 '國' 자보다 '民' 자가 훨씬 더 적절해 보인다. 1년 전 카르펜 교수의 충고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 금배지#국회#카르펜#소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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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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