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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지금 '스타'라는 이름 위아래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나 '스타'가 되길 원하고, 누구나 '스타'만을 보길 원하는 그런 세상. 그래서 <오마이뉴스>가 찾아 나섭니다. '스타'가 아닌 '배우'라는 이름으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누비고 있는 그런 이들을요. <오마이뉴스>는 '배우의 재발견'이라는 타이틀로, 이곳저곳에서 작은 빛을 내뿜는 배우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배우 쥬니가 수목드라마 <아이리스>에서 NSS 천재 컴퓨터 해커 양미정 역을 맡아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배우 쥬니가 수목드라마 <아이리스>에서 NSS 천재 컴퓨터 해커 양미정 역을 맡아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 남소연

"쟨 어린 게 왜 저렇게 싸가지가 없데?"

TV를 보던 사람들 입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2008년 9월, '배우' 쥬니(24)는 그렇게 사람들 눈에 '쏙' 들어왔다. 그리고 차츰차츰 그를 알게 된 사람들 입에서 또 다른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신인 맞아?', '원래 성격이 저런 게 아닐까?', '연기가 참 자연스럽네', '캐릭터는 분노하게 만드는데 연기는 '대박' 잘한다' 등등.

그랬다. 지난해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이하 <베바>) 날라리 여고생 하이든 역으로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민 쥬니는 '날 것' 그대로의 연기를 보여줬다. 함께 작업한 <베바> 이재규 PD도 "생(Live) 연기를 한다, 양식이 아니라 활어같다"라는 찬사를 내놓았다. <베바> 이전, 연기라고는 뮤지컬 <밴디트>가 전부일 정도로 경험이 미천한 그에게 말이다.

이런 이유에서 일까. <베바> 이후 쥬니의 발걸음은 더 바빠졌다. 8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국가대표>에서 그는 연변처녀 '왕순덕' 역을 맡아 스키점프 국가대표 마재복(최재환)과 '겉절이 사랑'을 보여줬고, 영화 <하늘과 바다>에선 6살 영혼을 가진 하늘(장나라)이와 친구가 되는 '스무살 반항아' 바다 역을 맡아 '2009 대종상영화제' 신인여우상 후보에 김꽃비(똥파리), 박보영(과속스캔들), 선우선(거북이 달린다) 등과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또 시청률 30%를 넘나드는 '대박' 드라마 <아이리스>에선 NSS(국가안전국) 정보분석관 양미정로 분해, 킬러 빅(탑)과 한 차례 엮이며 포털사이트 주요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많은 신인들이 '혜성'같이 등장해 차기작을 선정하지 못하는 성장통을 겪는 것에 반해, "출연하는 작품마다 좋은 결과들이 나와서 매일 매일 즐겁게 생활하고 있"을 만큼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는 쥬니의 말이 허투로 들리지 않는다.

천재 해커로 변신한 '싸가지 없는' 하이든

ⓒ 남소연
1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쥬니는, 역시 발랄했다. 작은 얼굴에 시원스럽게 자리하고 있는 눈, 코, 입.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함께 온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선 하이든도, 양미정도, 바다도 보였지만, 유쾌하고 발랄할 것 같은 쥬니의 본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화제의 출연작 <아이리스>에 대한 이야기, 그 중에서도 가장 '핫'한 질문 '진짜 킬러 빅(빅뱅의 탑)과 러브라인이 형성되는 건지'를 먼저 물었다. 예상했다는 듯, 요즘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 누구보다 내가 정말 (빅과 러브라인이 형성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감독님에게 매일 물어본다. 러브라인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는 건 아니고, 미정에게 그런 감정(사랑)이 생긴다면 일 할 때도 그런 감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감독님은 '글쎄다, 모든 비밀은 작가님께'라고만 해주신다. 근데 개인적인 바람은 그냥 천재 해커로 남고 싶다. 현실에서 (빅과의 사랑이) 가능할까도 싶고."

쥬니의 말대로 그가 분한 NSS 천재 컴퓨터 프로그래머 '양미정'은 대학 시절 카드 빚 몇 백 만원 때문에 신용카드사를 해킹한, 천재이면서도 '괴짜'인 그런 캐릭터다. 물론 딱딱한 NSS와는 어울리지 않는 어느 정도의 '반항기'도 내재하고 있다. <베바>에서 <하늘과 바다>까지, 어느 정도 '반항기'가 들어있는 캐릭터를 연기해왔던 지라, 양미정이란 역할이 익숙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웬 걸 다르단다.

"악지르는 그런 반항기를 보여주기 보단 조금 시니컬하고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이 투철한 친구로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거기에 의상이나 콘셉트 등 보이는 부분에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게 좋을 것 같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딱딱한 NSS 속에서) 양미정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허나 연기생활 이제 2년도 채 안 된 신인여배우가 그 욕심을 다 채울 수 있을까. 자유분방한 모습도 좋지만 이병헌, 정준호, 김태희 등 톱스타들과 함께하는 가운데 튀어 보이는 것도 조심스러울 터. 그러나 쥬니의 대답은 단호했다.

"신인이니까, 부담스럽거나 그렇진 않다. 내가 그분들과 같은 위치에서 연기를 하는 거라면 몰라도 그게 아니니까. 지금은 그냥 선배들 옆으로 가서 '식사하셨어요?'라고 묻고 그런다."

매일매일 촬영하며 좌절, 대사때문에

한편 <베바>에서도 50살이란 나이차(실제 나이)를 극복하며 대선배 이순재와 '특별한 우정'을 보여줬던 쥬니는 <아이리스> 내에서 가장 호흡이 잘 맞는 배우로 NSS 과학수사실장 오현규 역을 맡은 윤주상을 꼽았다. 윤주상은 올해 환갑을 맞은 연륜있는 배우다.

그 스스로도 "이번에도 느낀 건데, 나는 아예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배우들과 호흡이 잘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나이 차 많은 선배들과 호흡이 잘 맞는다"며 수줍게 웃는다. 신인 연기자답지 않는 털털함이 묻어난다. 반면 함께 연기해보고 싶은 배우나 닮고 싶은 배우가 있냐는 질문에선 신인다운 욕심도 배어났다. 

 지난해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이하 <베바>) 날라리 여고생 하이든 역으로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민 쥬니는 '날 것' 그대로의 연기를 보여줬다.
지난해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이하 <베바>) 날라리 여고생 하이든 역으로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민 쥬니는 '날 것' 그대로의 연기를 보여줬다. ⓒ iMBC

"어떤 특정 배우와 함께 연기하고 싶기보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연기해 보고 싶다. 최근엔 시트콤도 욕심이 나고. 지난 방송 중에는 <환상의 커플> 상실(한예슬) 역과 강자(정수영) 역이 탐났다. 닮고 싶은 배우는 딱 한 사람은 아닌데, 공효진과 김선아 캐릭터를 좋아한다. 또 박희순의 리얼리티와 공효진의 반항기에 묻어있는 솔직함도 좋고. 이 사람의 이런 면도 갖고 싶고 저 사람의 저런 면도 빼오고 싶고, 보기보다 욕심이 좀 많다."

인터뷰 시작부터 매일매일이 즐겁고, 촬영현장에선 쉴 새 없이 웃음이 '빵빵' 터진다고 재잘거리는 쥬니. 그러나 매번 작전을 짜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 사건을 처리하는 것 등이 <아이리스>의 주요 내용임을 생각하면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도 어렵다. 정말 현장에서 힘든 것이 없냐고 묻자, 쥬니는 웃으며 말을 꺼냈다. 

"모든 배우들이 대사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발음 자체가 어려운 게 많다. 오늘도 대본을 보니, '아이오시스템 뭐 하드' 어쩌구 그런 대사가 3줄 정도 있더라. 이런 게 평소 쓰지 않는 말들이고 해서 한 줄 외우기도 어렵다.

엊그제도 윤제문 선배 대사가 정말이지 이만큼(엄지와 검지를 떼서 표현) 있었다. 한 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신이었는데, 몇 번 NG를 내더니 나중엔 좌절하더라. 지금 모든 배우들 상황이 다 그렇다. 대사가 너무 어려우니까.

수십 번씩 NG가 나는 건 아닌데, 많아 봤자 4번 정도? 근데 그때마다 너무 어처구니없이 입이 꼬여버리니까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내 발음은 왜 이렇게 안 좋지?', '난 왜 이 대사가 안 외워질까' 등등.(웃음)"

"내가 부른 '심장이 없어',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1년 4개월여. '연기자' 쥬니가 달려온 시간은 짧다. 음악을 했던 시간에 비하면 더욱. 연기자 데뷔 전, 쥬니는 록밴드 멤버였다. <베바> 촬영 때도 다른 연기자들과 다르게 실제로 플루트를 연주해 주목을 받았고, 밴드에서 활동하다가 <베바>에 섭외된 터라, 그 이력이 많이 부각됐었다. 쥬니가 소속된 벨라마피아는 지난해 4월 엠넷 <문희준의 음악반란>에서 4주 연속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실력있는 여성 록밴드다.

이런 숨은 이력으로 쥬니는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지난 11일 <아이리스> 방송분에서 '심장이 없어'란 노래를 무반주로 불렀는데, 그게 이슈가 된 것. 관련 기사만 100여 건이 쏟아져 나왔다. 탑과의 '러브라인' 이후 또다시 쥬니가 포털사이트 주요 검색어에 올라 화제가 됐다. 이런 반응, 본인은 어땠을까.

 지난 11일 <아이리스> 방송분에서 '심장이 없어'란 노래를 무반주로 불러 화제가 된 장면.
지난 11일 <아이리스> 방송분에서 '심장이 없어'란 노래를 무반주로 불러 화제가 된 장면. ⓒ KBS
"사실 민망했다. 보면서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왜 저렇게 불렀을까', '표정은 왜 그랬을까' 등등. (방송 뒤) 검색어에 올라 나도 놀랐다. 노래는 대본에 있어 한 건데, 내가 노래 부르고 태희 언니가 울어버린 게 극대화 된 것 같다."

록밴드를 하기 전까지 쥬니는 클래식을 했다. 어렸을 적 엄마의 권유로 플루트를 시작한 그는 록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제목도 모르는 올드팝들을 섭렵(?),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오케스트라와 스쿨밴드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클래식보다 록을 하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아 "노래를 하겠다"고 선언했고 부모님은 "니 인생이니까, 니가 알아서 해라"라고 허락했다.

정해진 운명처럼 생각보다 쉽게(?) 록밴드를 하다가 '여성 죄수들이 만든 여성 록밴드'를 소재로 한 뮤지컬 <밴디트>에 섭외가 됐고 그것으로 인해 <베바>에도 출연하게 됐으니, 쥬니에게 음악은 정말 '고향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음악은 내게 산소 같은 존재고 없으면 살 수 없다. 하지만 (연기를 시작한 뒤부터) 음악과 연기에 대한 가치관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원래 내가 생각한 연기는 노래를 하면서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감정 표현들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이었고, 가수는 그냥 음악이 좋아서 한 거였다. 연기할 때는 연기자로, 노래 부를 때는 뮤지션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은) 둘 다 너무 재미있어서 함부로 비교를 안 한다. 음악은 고향처럼 편안한 것이고 연기는 아직 편안하진 않지만, 파릇파릇 피어나는 새싹 같은 느낌이다."

연기와 음악, 둘 다 좋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은 쥬니가 느끼는 음악과 연기의 차이는 뭘까.

"노래는 한 곡으로 치면 약 4분 정도 안에 나의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한다. 쇼와 표정, 가창력, 곡 해석능력 등등 이런 것을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것도 정해진 시간 안에 '빵' 하고 표출해야 한다. 하지만 연기는 카메라를 통해 한 발짝 뒤에서 이뤄지고, 방송이 나간 다음에라야 사람들의 반응이 온다. 순간적인 집중력은 연기 쪽보단 가수 쪽이 더 필요하더라. 그때 확 빠져서 확 미쳐버려야 한다."

아직 설익은 배우라는 타이틀, 내게 필요한 건

그러나 포효하듯 노래하고, 싸가지 없는 배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당돌한 쥬니도 '가수 출신'이란 꼬리표 앞에선 한없이 작아진다. 윤은혜, 성유리, 유진 등 내로라하는 가수 출신 여배우들도 아직 그러한데, 이제 2년차 신인배우 쥬니는 더 말해 뭐할까. 이런 수식어에 대한 쥬니의 생각은 '싫다' 혹은 '좋다'가 아니었다.

"연기를 하다보면 언젠가 '가수 출신'이란 꼬리표가 떨어지긴 하겠지만, 그 시기를 조금 앞당기고 싶다. 그래서 맡은 캐릭터에 집중을 많이 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 아직 나는 내가 배우라는 생각을 안 한다. 그리고 남들에게 배우라고 불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연기를 오래 한 선배들도 알겠지만, '배우'라는 이름은 갖기 어려운 이름 아닌가.

연기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또 다른 삶을 살게 해주는 것 같다. 연기를 하다 보니, 현쥬니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생기더라. (작품을 하게 되면) 캐릭터 분석에 몰두하게 되는데, 그러다가 쉬는 날엔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뭘 하고 살았으며, 여기까지 어떻게 왔으며, 성격이 어떠며, 사람들과 관계가 어떤지' 등등 이런 생각이 막 든다. (연기를 시작한 뒤) 예전보다 나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급 진지모드로 '화기애매' 해진다. 쥬니는 이어 '현실 개입을 통한 연기가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최근 들어 많이 하고 있고, 같이 출연 중인 선배 이병헌에게 조언까지 구한 사연을 들려줬다.

"이병헌 선배는 '만약 네가 살인자로 나온다고 해서 사람을 직접 죽여 볼 순 없지 않느냐, 내 경우 순간적 집중력이 중요한 것 같더라'고 하더라. 그 말에 고민을 많이 했다. 대본을 볼 때나, 캐릭터를 연구할 때나 선배의 말이 좋은 영양분이 됐다."

지붕뚫고 날아라 쥬니, 더 높이 더 멀리

ⓒ 남소연
진지모드와 발랄모드를 거침없이 왔다갔다 하는 쥬니의 실제 성격은 어떨까. 쥬니는 <베바> '이든'과 가장 비슷하단다.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고 위아래가 없는 이든이와 가장 닮았다고? '너무 솔직한 거 아냐?' 싶었는데, 다행스런 설명이 이어진다.

"위아래 없는 건방짐이 비슷한 건 아니다.(웃음) 그냥 그 친구가 가지고 있는 느낌… 되게 센 척 하는데 속으로는 여려 터져서 열 받으면 울고 그러는…. 나도 그런 느낌을 조금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성격이 너무 털털해서 탈이다. 심지어 선배 배우들이 '형'이라고 부르라고 할 정도니 뭐."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혼자 쇼핑도 한다는 쥬니. <아이리스> 방송 이후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지만, 그래도 가까운 거리는 '당당하게' 걸어다닌다고. 그러면서 덧붙인 한 마디.

"나는 (오른쪽 뺨에 있는) 점만 가리면 못알아본다. 근데 늘 얘(점을 가리키며) 때문에 걸린다.(웃음)"

이제 막 '연기'란 장거리 달리기 출발선에서 발을 뗀 쥬니가 조금이라도 빨리 '배우'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길 기대해본다.


#쥬니#배우의재발견#아이리스#양미정#베토벤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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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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