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유출사고 2년을 맞아 찾은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해변. 싸늘한 겨울바람만이 반겨주던 을씨년스런 해변에는 겨울바다를 찾은 다정한 한 쌍의 커플만이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름유출사고 이후 굴 양식장을 모두 철거한 신두리 해변은 이젠 겨울이면 지역주민들도 찾지 않는 외톨이 해변이 되어 버렸다.
3년 전 겨울만해도 이곳 신두리 해변에는 굴 채취를 위해 거북이걸음 경운기가 요란스럽게 털~털~털 소리를 내며 분주하게 옮겨 다니고 '하하호호' 주민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던 꽤 살기 좋은 시골마을이었다.
하지만 2007년 12월 7일 태안 앞 바다 북서방 6마일 해상에서 홍콩선박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와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이 충돌하면서 약 12만 리터 이상의 원유가 유출돼 신두리 해변을 온통 검게 물들였다.
이로 인해 여의도 면적의 약 5분의 1 크기에 해당하는 172ha 면적의 굴 양식장이 모두 유출된 원유로 인해 기름범벅이 돼 이듬해 5월. 여름철을 앞두고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철거작업이 이뤄졌다.
기름유출 사고 2년, 쓸쓸한 신두리 해변
그로부터 1년 7개월이 지난 신두리 해변. 지역 주민들은 조상대대로 운영하던 굴 양식장을 다시 재설치 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이젠 면허를 신청해 허가를 받아야만 굴 양식장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두리 굴 양식장 어업인 대표 박희관씨는 "선조 때부터 조금씩 늘려왔던 굴 양식장이 하루 아침에 기름으로 인해 철거 돼 이렇다할 소득 없이 궁핍한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며 "다시 굴 양식을 하기 위해서는 면허를 신청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아 예전만큼 돈벌이는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를 포함해 신두리 해변에서 굴 양식장을 운영했던 가구는 약 163가구 정도로 가구당 한 해 벌어들인 수입은 약 1천만원~3천만원 정도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이 다시 굴 양식장을 위해 태안군에 면허를 신청해 허가를 받은 면적은 약 25ha로 사고 이전 운영하던 한 가구당 운영하던 면적이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또한, 굴 양식장을 재설치하기 위해서는 약 500~600만원 정도의 목돈이 필요하지만 사고 후 정부에서 지원한 생계비와 굴 양식장 철거시 동원된 일당 등으로 생활을 이어오던 주민들로써는 막막하기만 하다.
더욱이 실제 굴 양식장을 재설치하더라도 굴 포자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별다른 소득 없이 주민들이 생계를 이어가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박씨는 "설사 내년에 굴 양식장을 재설치하더라도 2013년까지는 굴 포자가 성숙해야 하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생활을 이어가기가 어려울 듯하다"며 "하루하루가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생활이 어려워지자 마을 주민 대다수의 자녀들이 휴학을 하거나 군대에 입대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주민들은 마지막 희망으로 피해보상을 기대하고 있지만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이 피해보상 대상에서 무허가무면허 어업을 제외해 이마저도 어렵다.
마을 자녀들 대부분 휴학하거나 군입대
IOPC는 지난 10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총회에서 태안기름유출사고 피해보상과 관련해 당초 추정한 피해보상액 6015억원 가운데 방제비용은 220억원으로 늘렸으나 수산분야 피해액은 600억원 축소했다. 이는 한국 정부의 조업제한조치가 비과학적이고, 무면허·무허가 어업피해에 대해서는 불법으로 보상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신두리에서 굴 양식장을 운영했던 이창헌(72, 어민) 할아버지는 "주 수입원이었던 굴 양식장이 철거됐기 때문에 이렇다 할 수익을 바라기는 어렵다"며 "현재로는 보상금이 마지막 희망"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굴 양식장이 철거로 겨울철 일거리를 잃은 어촌마을에 쓸쓸함이 감돌면서 주민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날로 깊어지고 있다.
이 할아버지는 "굴 양식하면서 먹고 살만큼은 했는데 이젠 하루하루 먹고 사는 문제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가끔은 분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태안군정신보건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사고 이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위험군에 속하는 인원이 전체 조사대상 중 무려 23%에 이르는 276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기름유출사고 이후 피해지역은 참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부딪히자 생계 위협에 처한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정부가 피해주민을 위해 지급한 생계비를 둘러싼 갈등은 한 주민이 손가락을 절단하기까지 하는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또, 바다에서는 수산물 어획량이 급감하기 시작했고, 해안가에는 김, 파래 등 이상 증식한 녹조류가 떠밀려 내려오기도 했다.
더욱이 관광태안을 지향하는 도시에 관광객의 수치가 급감하기 시작하면서 기름유출사고로 인한 피해는 수산분야에서 관광분야로까지 확대되기까지도 했다.
이처럼 사고 발생 2년이 지났지만 태안은 아직도 2007년 12월 7일에 머무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해안가에 즐비한 보트를 바라보며 '제 할 일을 잃은 듯 밀려오는 파도에 흐느적거리고 있는 모습이 처량하다'는 생각에 잠긴 바로 그때. 힘차게 노를 젓고 있는 어부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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