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 걱정 말고 인생을 즐기세요(T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
영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우연히 봤을 수 있다. 작년 12월 말부터 영국 전역을 운행하는 버스 중 800대가 이 문구가 쓰인 광고를 부착하고 달리고 있다. 광고를 낸 주인공은 영국인본주의자협회(British Humanist Association). 대표적인 진화생물학자이자 저서 <만들어진 신>으로 무신론 논쟁을 일으킨 영국 옥스퍼드대 리처드 도킨스 교수가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다.
도킨스는 "신은 망상일 뿐"이라며 이 망상에서 빨리 깨어나야 종교 전쟁으로 인한 인류의 파멸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하는 과학자다. <만들어진 신> 서문에서 그는 존 레논의 노래 '이매진(Imagine)'을 패러디해 "종교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고 노래한다. 그곳은 "자살 폭파범, 9·11 테러, 런던 폭파 테러, 십자군, 마녀 사냥,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이 없는 세상"이다.
도킨스의 지적처럼 종교는 오래 전부터 민족, 나라 간 갈등의 원인이자 많은 이들을 희생시킨 주범 중 하나였다. 동시에 종교는 민족과 나라를 지배하는 하나의 세계관이자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신성한' 영역에 속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17세기 전후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를 거치며 변하게 된다. 지동설이 확립되고, 세계가 오묘한 신의 원리가 아닌 물리학적 법칙(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작동된다는 사실을 발견되면서 종교의 위상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신이 준 두 권의 책, '성서라는 책(Book of Bible)'과 '자연이라는 책(Book of Nature)'은 더 이상 종교만의 것이 아니었다. 결국 자연은 과학자의 영역에 속하고, 역사·사회·윤리·도덕은 여전히 종교의 영역에 속한다는 생각이 일반화됐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그 지배 영역은 조금씩 넓어져갔다.
종교를 공격하는 과학, 과학에 맞서는 종교, 종교와 과학의 충돌이 끊이질 않고 있는 시대다. 둘의 충돌은 하나의 '폭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만남'이기도 하다. <종교 전쟁(신재식, 김윤성, 장대익)>은 그 충돌과 만남을 한층 깊이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던져준다.
과학과의 자연스러운 만남, 새로운 공존을 꿈꾸는 신학자와 가치와 의미를 독점해 제도이자 권력이 된 종교를 비판하는 과학자, 그리고 종교는 비과학적이고 망상일 뿐이란 무신론과 초월적이고 성스러운 영역이란 유신론 사이에서 '사회적 실재'로서 종교를 바라보려는 종교학자.
세 사람이 반년 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깊은 담론과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 고백은 물론, 한국 과학계와 종교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자유롭게 풀어 놓은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종교와 과학은 모두 인류 문명의 깊은 뿌리며 현대 사회의 굳건한 토대면서도 여전히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는 영역이다. 그래서일까? 행간에서 묻어나는 세 사람의 입장은 각자의 위치를 뚜렷이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대화에는 세 가지 중요한 덕목이 있습니다. 비움, 귀 기울임, 받아들임"이라는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의 추천사처럼, 그 태도는 유연하다. 소통이 강조되고 있지만 학문과 이념, 종교 등을 넘어서 통(通)하는 모습을 좀처럼 보기 힘든 현실이다.
<종교전쟁> 속 세 사람의 진솔한 대화는 그 해결의 실마리를 보여준다. 다른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유연함, 비판을 받아들이는 겸허함, 그것이 소통의 시작이다. 그래서 이 책은 '종교의 유통 기한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이나 과학의 위세가 불편한 사람, 도킨스에 열광하거나 분노하는 사람'뿐 아니라 '소통'이 필요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