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였던 손미나씨는 이제 더 이상 '방송인'으로 불리길 원하지 않는다. 방송인보다 '여행작가'라는 이름이 더 좋다는 그녀는 일본과 스페인 여행기를 통해 이미 베스트셀러 여행 작가로 거듭 났다.
책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는 그녀의 세 번째 여행기다. 손미나씨가 택한 새로운 여행지는 다름 아닌 아르헨티나. 도대체 이 나라가 어떤 매력을 지녔기에 열정과 낭만으로 넘치는 그녀의 세 번째 여행지가 되었을까?
우리나라와 반대편에 있는 이 나라의 풍경은 상쾌한 공기와 '남미의 파리'라고 불리는 멋진 디자인이 뒤섞인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저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커피숍에 앉아 아르헨티나의 첫 커피를 마시기 위해 앉아 있는데 신기하게도 커피와 함께 작은 유리잔에 탄산수가 나온다.
의아한 저자에게 아르헨티나 친구는 탄산수를 먼저 마시면 입안의 다른 맛을 없애서 커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라그리마(눈물)'이라는 이름의 커피는 95%의 커피 액에 눈물만큼의 우유를 채운 것이다. 커피 이름까지 시적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저자는 '사랑하는 여인 같은 도시'라는 이 도시의 별명에 공감하게 된다.
아르헨티나의 소고기는 뛰어난 맛으로 유명하다. 소금만 뿌리고 구워도 맛이 훌륭해지는 이유는 뭘까? 현지인은 간단히 설명한다.
"아르헨티나 소들은 행복하거든. 그래서 맛이 좋은 거야."
행복한 소들이라. 좀 어이없는 말일 수도 있지만 사실 매우 일리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면적의 28배가 넘는 아르헨티나는 이 넓은 땅덩어리의 삼분의 일이 초원이다. 목초의 면적도 넓고 소가 먹을 만한 풀이 잘 자랄 수 있는 기후도 탁월하다. 그러니 이곳에서 자라는 소들의 질이 뛰어날 수밖에.
실제로 스트레스 없이 인공 사료를 먹지 않고 자란 아르헨티나의 소들은 콜레스테롤 비율이 현저히 낮고, 근육과 지방의 비율이 좋은 맛을 내기에 최고라고 한다. 소가 행복하게 자랐기 때문에 맛이 좋다는 현지인의 농담이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뛰어난 환경 요인과 문화를 갖고 있는 아르헨티나에도 어두운 단면이 존재한다. 이민자들과 식민 지배로 점철된 아르헨티나의 근대화는 이곳 시민들의 정체성에 혼란을 주었다. 실제로 많은 수의 아르헨티나 인들이 자신이 과연 누구인가를 고민하면서 평생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사람은 스페인어로 말하면서 프랑스인처럼 생각하고, 유대인처럼 일을 하며 스스로를 독일인이나 영국인이라고 착각하는 이탈리아인이다'라는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라고 하니 문화적 혼란이 심각하긴 하다. 그렇다고 하여 그들의 자긍심과 애국심이 뒤처지느냐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아르헨티나 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사랑하고 그들의 문화를 언제나 멋지다고 평가하며 늘 긍정적으로 산다. 탱고로 대표되는 그들의 음악과 춤은 슬픈 역사를 안고 있지만 동시에 멋과 낭만 그 자체다. 벽화도 마찬가지다. 아르헨티나 인들의 뛰어난 예술성은 다른 어느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문화적 풍경을 연출해 낸다.
우연히 만난 아르헨티나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저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와 탱고에만 국한되었던 이 나라에 대한 시각을 보다 넓힐 수 있었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다양한 일을 하는 이 친구들은 저자에게 둘도 없이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이 친구들이 하는 얘기는 저자의 마음 깊숙이 감동의 울림을 전한다.
"너희들이 오늘 우리와 함께 등산을 하게 되어 참 기쁘다. 보통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머물며 탱고 쇼나 보다가 돌아가는데 그건 우리나라를 전혀 보지 못하는 거나 다름없어. 진짜 아르헨티나는 아주 깊은 내륙, 우리가 사는 곳에 있다고 생각해. 우리는 그야말로 가장 아르헨티나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거든."
이 친구들 덕분에 아르헨티나의 구석구석을 다시 알 수 있었던 저자는 여행의 마지막에 가방을 잃어버리는 불운을 겪게 된다. 소중하게 찍어 간직했던 사진도 카메라와 함께 분실하고 여행의 기록도 모두 잃게 되지만, 그래도 그녀의 여행은 계속되었다.
<어린 왕자>로 유명한 생텍쥐페리가 한때 아르헨티나 항공의 조종사였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는 파타고니아를 너무나 흠모하여 신비로운 그 땅덩어리를 내려다보며 하늘을 날고 싶은 소망을 이루기 위해 이곳에서 비행기를 몰았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항로 중 하나인 파타고니아를 개척한 그가 이때의 경험을 적어 편찬한 책이 바로 <야간 비행>이다. 비행을 나선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 어디서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도 모르는 생텍쥐페리. 저자는 그의 영혼이 이곳 어딘가에서 아름다운 파타고니아를 바라보며 흐뭇해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서 여행은 끝났지만 자신의 가슴은 오히려 뜨거워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심금을 울리는 탱고 선율처럼 묘한 울림을 주는 아르헨티나.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한번 가보기 어려운 이곳에서 그녀는 울고 웃는 멋진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여행의 추억은 누구나 그러하듯이, 살아가는 데에 내 손을 붙들어 줄 든든한 힘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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