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길가 잡풀 더미에노란 민들레꽃홀로 외롭게 피어 있었다. 마치 막내 딸 시집이라도 떠나보내면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는 듯...폴폴 하얀 풀씨 멀리 멀리 아주 멀리날려보내고 있었다."얘야, 혼수 중에 가장 귀한 혼수는,비단보다 고운 며느리의 마음이란다...부디 시부모 잘 공경하고...아들 딸 많이 낳거라..."2.내 어머니 13살 어린 나이로 시집 올 때너무 찢어지게 가난해서백설기 떡 하나 넣은오강 단지 가슴에 품고,십리 길 꽃가마도 없이 아홉살짜리 신랑은 조랑말에 태워서고샅길 넘고 넘어서 그렇게 *민며느리로 시집 가셨다지.꽃중에 가장 키가 작은 민들레꽃!오척 단구 내 어머니 닮은 꽃!그래도 꽃중에 이 보다 더 강인한꽃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떡장사로 소금 장사로 고기 장수로떠돌이 행상하면서도 웃음이 얼굴에 떠나지 않던내 어머니 웃음을 닮은 노란 민들레꽃이여 !3.평생 집 한칸 없이 살다가 돌아가셔도 머무는 집이 진짜 내 집이라고쓸고 닦고 화분처럼 뿌리 내리시며한 집안 같은 이웃들 속에서정겹게 오손도손 살다 생을 마감하셨지.늙은 내 어머니처럼 홀로 길가에 환하게 웃으며 피어있는 민들레꽃 멀리 멀리 홀씨들...어린 딸들처럼 시집 보내는...그 청빈한 꽃그늘 아래서,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어머니의 사랑이여, 그리움이여
덧붙이는 글 | *옛날의 혼례는 대개 중매에 의한 전통혼례로 치러졌다. 1900년대 중반까지는 여자와 남자 모두 20세가량에 혼인을 했으며, 23세가 넘으면 노처녀, 노총각이라 했다. 남자 보다 여자가 보통 2~3살 정도 많았기에, 꼬마신랑이 흔했고, 경제적 형편이 어려우면 딸을 미리 시집보내는 ‘민며느리’제도가 있었다. 11~12세에 미리 신랑집으로 가서 4~5년 정도 생활하다가 혼인식을 올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