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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여성단체와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여성폭력추방공동행동이 2006년 4월 11일 오후 청계천 광장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 없는 세상'을 염원하며 종이비행기를 날려보내고 있다(자료 사진).
여성단체와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여성폭력추방공동행동이 2006년 4월 11일 오후 청계천 광장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 없는 세상'을 염원하며 종이비행기를 날려보내고 있다(자료 사진).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저희 좀 도와주세요. 정말 정말 학교라는 곳이 무서워집니다. 한창 자라나는 중학교에서 성추행은 있어선 안 될 것입니다."

 

지난 9일, 제주도 모 중학교에서 <오마이뉴스>에 보낸 'SOS'의 마지막 문장이다.

 

국가인권위는 제주도 중학교 교장의 성희롱 의혹과 관련  지난 16일 발표한 결정문에서 "신체접촉에 관한 성적 언동에 해당한다"며 "성적 굴욕감 등을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지난 4월부터 이 학교 P교장의 성희롱 진정을 접수해 조사를 진행해온 인권위는 해당 여중생들에 대한 성희롱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지난 14일, <오마이뉴스>는 "우리 교장선생님의 '변태짓' 고발합니다"라는 기사를 통해 P교장의 성희롱·성추행 의혹을 보도했다. 인권위에 P교장의 성희롱 진정을 접수했던 A교사에 따르면, 성희롱·성추행 피해자는 여학생·남학생 그리고 여선생님까지 포함해 20명 가까이 된다. 이는 졸업생을 제외한 숫자다.

 

"여학교에는 저렇게 성희롱하는 선생 한 명씩은 있었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여고시절, 매를 드는 대신 팔뚝 안쪽을 꼬집던 남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선생님이 의도했든, 안 했든 우리들은 성적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꼈다. 하지만 뒤에서 쑥덕거릴 뿐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모님에게도 말씀드린 적이 없다. 불쾌하긴 했지만 그리 '큰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코 사소하지 않은 성희롱·성추행 피해는 그렇게 '사소한 것'이 됐다.

 

그래서일까? 사실, 학생들이 '변태짓'이라고 표현한 P교장의 언행이 여중·여고를 다닌 내게는 그리 충격적이지 않았다. 다만, 당시에도 한 학교에 한 명씩은 있었던 '변태쌤'이 지금도 있다는 것, 그 '주인공'이 교장선생님이라는 사실이 놀라웠을 뿐이다.

 

실제로 포털에 걸린 P교장 기사의 댓글에는 "우리 때도 저런 선생님 있었다"며 공감(?)을 표시하는 이들이 많았다. 한 누리꾼은 "키 좀 크고 발육 빠른 애들 거기다 얼굴도 예쁘장하면 불러다가 뒤뜰에서 교육시킨답시고 훈계하는 척하면서 여기저기 더듬는 사람이 학생주임이었다"며 "여중·여고 나온 애들은 다 알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누리꾼 역시 "여학교에는 저렇게 성희롱하는 선생 한 명씩은 있었지"라며 다음과 같은 댓글을 남겼다.

 

"저렇게 대놓고는 추태 안 부려도 엉덩이를 툭툭 치거나, 귓불 만지며 속삭이면서 말하거나, 체벌하는 막대기로 가슴 찌르는 선생들. 그리고 팔뚝 안쪽 조몰락거리면서 말하는 선생. 솔직히 여학교에는 하나씩 있었고 공학이라도 합반 아니고서야 거의 다 있지 않았나."

 

이에 대해 박현이 '아하!청소년 성문화센터' 기획부장은 "여자들은 중·고등학교 거치면서 학교 선생님 중에 변태 선생님이 있어서 성희롱하는 걸 알고 있는데, 그게 성희롱이고 성폭력인줄 (당시에는) 몰랐다가 (나중에) 인식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변태짓', P교장은 몰랐다?

 

피해학생의 부모들을 도와 P교장에 대한 형사소송을 준비해 온 고명희 제주 여성상담소 소장은 말했다.

 

"아마 P교장에게는 그게 일상적인 표현이었을 것이다. P교장이 다음 달에 정년퇴임을 하니까 30년은 해오지 않았겠나. 살아오는 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일상적으로 지도해왔을 것이다. 그게 한 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다는 게 더 큰 충격이었다. 어쩌면 지금도 어디에선가 그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P교장은 자신이 '성적인 언행'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P교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성희롱, 성추행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는 게 아니다"라며 강한 불쾌함을 나타내는가 하면, 해당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울먹거리기도 했다. 자신은 학생을 지도를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P교장의 생각은 인권위 조사 당시 진술에서도 나타난다.

 

"2009년 여름에 가출했다 돌아온 피해자 2를 교장실로 불렀다. 당시 피해자 2는 가슴에 빛나는 장식이 있는 면 티셔츠를 교복 속에 입고 있었는데 옷이 몸에 달라붙어 복장을 지도할 생각으로 '너 가슴 크다'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피해자 2에게 '밤에 한 것을 하나하나 다 써라, 밤에 남자하고 있었지? 남자랑 잤지?'라고 물었다. 피해자 2가 모텔에 갔다고 대답했기 때문에 물어본 것이고, 성관계를 의미한 것이 아니라 잠을 어떻게 잤냐고 물은 것이다."

 

A교사가 <오마이뉴스>에 공개한 '피해사례'에는 이러한 기록도 있다.

 

교장은 '진실을 알아야 한다'라고 하면서 치마 짧은 여학생이 계단을 올라갈 때 뒤로 넘어질 것 같아서 엉덩이를 손으로 받쳐준 것뿐인데 오해해서 엉덩이를 만졌다고 한다고 말함.

 

하지만 '당하는' 학생들의 생각은 달랐다. 피해자 2는 인권위 조사에서 당시 P교장의 언행에 "부끄럽고 기분이 나빴"고 "창피하고 서러웠"다고 진술했다. 기자와 통화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억울합니다. 당한 처지에서는 정말 학교 다니기 싫습니다. 솔직히 저희는 다 컸습니다. 중3이 되면 부모님께서도 저희 엉덩이를 만지는 일은 되도록이면 피해주십니다. 근데 교장선생님께서 했다는 것은 정말 불쾌합니다."

 

학내 성희롱·성추행, '피해예방'보다 '가해예방'이 더 중요

 

고명희 소장이 '피해예방'보다 '가해예방'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고 소장은 "나의 행동이 왜 가해가 되는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며 "'이게 성희롱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그게 왜 성희롱이냐는 질문이 돌아오는 건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 소장은 "이번 기회를 통해 학내에서 선생님들의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혹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그게 성적인 수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자가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고 소장은 "요즘 언론의 관심이 학교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사람들로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학교 안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문제에도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전에도 막장은 많았는데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었던 건 아닐까요?"

 

P교장 사태를 '막장'으로 규정한 글에 대한 한 트위터리안의 답변이다. 박현이 부장은 "그래도 요즘에는 성희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아이들이 교직원에 의한 성희롱을 고발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추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전에도 많았던 막장'은 그렇게 하나둘 밖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하지만 '고발' 이전에 아이들이 받은 상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제주도 성희롱#제주도 성추행#제주도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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