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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내정한 장차관들의 인사청문회가 진행되면서 정국이 매우 시끄럽다. 김태호 총리 지명자를 비롯해 현 정부 최고 실세인 이재오 특임장관 내정자, 신재민 문화부 장관 내정자, 지식경제부 이재훈 장관 내정자,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 등이 각각 수상한 돈거래, 위장전입, 막말 파문 등으로 국민들의 질타를 받고 있다.

청와대측은 이들이 비록 하자가 있지만 장차관으로 일하는 데 큰 장애가 되지 않기 때문에 중도 사퇴는 있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시중의 부정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고 있는 것은 대통령 스스로 위장전입을 비롯한 여러 비리와 불법으로 사법처리를 받았지만 결국 국민들의 선택으로 청와대에 입성했기 때문에 웬만한 비리는 비리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이 대통령의 도덕불감증은 이번 8.15 경축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비리로 얼룩진 인물들을 내정하고도 공정한 사회를 유독 강조함으로써 말과 행동이 다른 지도자라는 인식이 널리 퍼진 것이다. 

이렇듯 대통령을 비롯한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인사들 중 개신교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는 독실한 신자임을 강조하면서도 일상에서 전혀 종교인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은 한국 개신교가 처해 있는 상황과 맥락을 같이 한다. 지난 50년대까지 100만 수준에 머물렀던 한국개신교는 60년대 이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면서 최근에는 1천만에 육박하는 다수 종교가 되었고 정치·경제·사회적으로도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재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주요인사와 국회의원, 판사, 검사, 대기업 임원 등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파워엘리트의 많은 수가 개신교인들이다. 이들의 숫자는 전체 종교 내에서 개신교가 차지하는 비율을 훨씬 웃돌고 있다. 실제 이명박 정부 초기 장차관의 절반이상이 개신교인으로 채워져 불교계로부터 종교차별이라는 비판까지 받았고 18대 국회의원의 약 40%(118명)가 개신교를 믿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한국일보 2008년 9월 2일자) 

개신교인들이 한국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에도 현 정부가 강조하는 국격이나 청렴도가 나아지지 않는 것은 한국개신교에도 책임이 있다. 한국교회전반에 걸쳐 사회윤리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의 신앙생활과 교회바깥의 일상적인 삶은 마치 분리된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그 결과 교회 안에서는 매우 신실한 사람이 일상에서는 딴 사람인 된 것처럼 불법적인 행동을 하거나 비리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다.

번영의 신학, 무조건적 출세와 교회의 물량적 성장 강조

이 같은 결과는 미국식 번영 신학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세속에서의 직업의식과 노력을 강조하는 캘빈의 예정론을 미국식 자본주의에 접목한 번영의 신학은 아예 교회의 물량적 성장과 교인의 세속적 성공을 신의 뜻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 서부 풀러신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번영의 신학은 50년대 경제호황과 베이비붐 시대를 맞이해 종교의 사회적 책임보다는 물량적 성장을 강조하면서 당시 정체상태에 있던 미국교회 목회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그 여파는 한국교회까지 미쳤다.

최근까지 한국교회를 대표했던 곽선희 목사(소망교회 원로목사), 길자연 목사(왕성교회·전 한기총 대표회장), 박종순 목사(충신교회·전 예장통합 총회장), 김선도 목사(광림교회·전 감리교 감독회장), 김홍도 목사(금란교회), 김창인 목사(광성교회, 전 예장통합 총회장) 등이 풀러신학교 출신인 것을 감안하면 번영의 신학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번영의 신학의 영향으로 한국교회는 엄청난 성장을 했지만 신앙과 윤리를 일치시키지 못하면서 교세에 비해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 번영의 신학을 추종하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교인들에게 오직 믿음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물론 바울의 이신칭의 신학(믿음으로 의롭게 됨)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이신칭의 신앙은 로마로부터 박해를 받던 초기 기독교시대의 산물로 오늘날 종교다원주의 시대에는 맞지 않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후 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당국은 물론 유대교로부터도 큰 박해를 받는 위험에 처한 공동체였다. 이것은 70·80년대 군부독재치하 민주화운동세력이 처했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믿어 줄 존재들이 필요했고 이러한 염원들이 이신칭의 신앙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이신칭의 신앙이 극대화 된 것이 바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의 설화라고 할 수 있다.

누가복음 23장 39절 이하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들(다른 복음서에서는 강도로 나온다)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와 함께 달린 죄수 가운데 한 죄수도 그를 모독하며 말하기를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 하였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똑같은 처형을 받고 있는 주제에,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에 마땅한 벌을 받고 있으니 당연하지만, 이분은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다." 그런 다음에 그는 예수께 말하였다. "예수님, 예수님께서 그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누가복음은 두 죄수가 예수와는 다르게 어떤 죄목으로 십자가에 달렸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다른 공관복음서에는 누가복음과 다르게 강도들 모두가 예수를 조롱했다고 말하고 있다. 누가는 예수 처형 당시 다른 죄수들도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는 사실에 착안해 죄수들을 통해 자신의 구원관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저자인 누가는 이신칭의 신앙을 설파한 사도 바울과 매우 절친한 관계로 바울과 함께 전도여행을 했던 경험을 토대로 사도행전을 저술하기도 했다. 

누가는 죄수가 마지막 순간에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고백한 것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가 왜 십자가에 매달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가복음의 구원받은 강도 설화는 오늘날 여러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선은 사형수들이 그 대상이 되고 있다. 개신교인들은 어떤 사형수가 처형되기 직전 예수믿고 회개했다는 기사가 나오면 그를 칭찬하고 그렇지 않으면 서운해 한다. 그렇지만 대다수 개신교인들은 회개보다 더 중요한 사형제 폐지에는 반대하고 있다.

강도의 신학에서 고난받는 예수의 신학으로 돌아가야

사형수 외에 각종 범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들이 예수믿고 회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 많은 교회들이 그들을 초청해 간증 듣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인도한 것으로 알려진 김태촌씨같은 조직폭력배나 고문경찰로 유명한 이근안씨(그는 최근 목사안수받았다)외에 김신조, 김현희 같은 인물도 단골 손님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는 다시 범죄에 연루되거나 북한체제 비판에 이용되면서 한반도 평화에 역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세속에서의 윤리보다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한국개신교 신앙은 예수의 말씀을 값싼 복음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의 결과가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극단적인 신앙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신자로서 이번 청문회에 참석한 고위공직자들의 행동을 보면 번영의 신학을 신봉하는 목사들의 가르침을 따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한 뒤 교회가서 회개만 하면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있다.  

불교에서는 앙굴마라는 사람이 999명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붓다를 죽이려고 했다가 붓다의 가르침에 감복해 제자가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는 참회 후에도 희생자 가족들과 주민들에게 큰 박해를 받았으나 인내하면서 선행과 수도에 전념해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앙굴마가 단지 붓다를 믿었기 때문에 깨달음(구원)을 얻었다고 보지는 않았다. 인과응보에 따라 자신이 저지른 죄만큼 수행하고 선행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왜 많은 이들이 자신들을 개독교신자라고 부르는지 신학과 신앙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현재 다수 개신교인들은 예수를 신으로만 모실 뿐 인간예수가 진리를 실현하기 위해 지상에서 많은 수모를 당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것에 대해선 애써 외면하고 있다. 번영의 신학과 값싼 복음에 도취되어 사회적 지위와 재산축적을 기준으로 신앙의 척도를 재고 있다.   

개신교인들이 강조하는 회개의 원래 의미는 단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영어의 'repentance'가 아니라 내면의 깊은 곳에서 발현되어 '의식의 근본변화'를 추구하는 '메타노이아'였다. 예수 역시 사람들에게 저지른 죄가 있으면 회개뿐만 아니라 피해자에게 배상할 것을 요구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의 믿음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처한 상황을 대변하지만 오늘날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는 유효기간이 지난 음식과 같다. 유효기간이 지난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난다.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이제 강도보다는 예수를 더 사랑할 때가 왔다.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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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씨알재단에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씨알정신을 선양하고 시민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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