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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
- 글쓴이 : 테리 트루먼
- 옮긴이 : 천미나
- 펴낸곳 : 책과콩나무 (2009.6.20.)
- 책값 : 9800원

 (1) 아픈 몸으로 고구마밭 함께 캐며

요 며칠 몸이 무척 힘들다고 느끼지만, 곰곰이 따지면 요 며칠만 몸이 무척 힘들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저보다 어린 사람한테는 제 나이가 많고 저보다 늙은 사람한테는 제 나이가 적으나, 저 또한 더 늙은 쪽으로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으니까요. 한창 젊을 때라기보다 훨씬 젊을 때처럼 고단함을 쉽게 훌훌 털며 새 기운을 내며 일할 수 있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머리로가 아닌 몸으로 느낍니다.

보름쯤 앞서 고구마밭 일손을 거들었습니다. 하루쯤은 일손을 거들지 않으려 했으나 그냥 거들었습니다. 이른아침부터 아이하고 복닥이며 밥하고 빨래하고 밥 먹이고 하다가 한숨 돌리며 쉴 무렵이 낮 두어 시입니다. 이런 흐름을 이웃사람이라 해서 잘 헤아리지는 않고, 이런 흐름을 애써 말해 준들 잘 헤아려 주기란 어렵습니다. 흔히 하는 말이란 '왜 남자가 집안일을 하느냐?'이니까요.

'왜 여자가 집안일을 도맡아야 하느냐?'고 묻기 어렵습니다. 시골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매한가지입니다. 적게 배운 사람 앞에서건 많이 배운 사람 앞에서건 똑같습니다. 흔한 텔레비전 연속극을 들여다보셔요. 집안일을 맡는 사람은 오로지 여자입니다. 뻔하디뻔하게 여자들만 집안일을 도맡습니다. 지식인이건 지성인이건 가리지 않고 여자들만 집안일을 하도록 그립니다. 남자들은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수다를 떱니다.

돈 좀 있는 살림이라면 집일을 맡아 주는 '도움이 아줌마(밥어미)'를 부립니다. 어찌 되었든 집안일을 맡는 사람은 여자들입니다.

 겉그림.
겉그림. ⓒ 책과콩나무
.. 우리 부모님은 10년 전에 나 때문에 이혼했다. 나의 출생이 우리 가족의 모든 것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아빠가 이혼한 사람은 엄마가 아니다. 그렇다고 누나나 형도 아니다. 바로 나다. 아빠는 내 상태를 견디지 못했고, 그래서 떠나야만 했다 ..  (9쪽)

생각이 있다는 남자 지식인이나 지성인 가운데 스스로 밥하고 빨래하며 쓸고닦는 밑살림을 즐겁게 하면서 다른 큰살림을 짊어지는 이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남자 지식인이나 지성인들 입에서 살림살이 꾸리는 이야기는 거의 튀어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자 글쟁이 가운데 집안일 하는 '즐거움과 고단함'을 스스럼없이 적바림하여 나누는 사람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치꾼들은 으레 '서민 경제'를 들먹입니다. 예나 이제나 '서민처럼 살아 보지 않'으면서 서민 경제를 북돋우겠다고 외칩니다. 서민들,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들처럼 가난한 집에서 가난한 살림을 꾸리며 살아가지 않고서 서민 경제를 북돋우는 길을 어떻게 찾아서 나누려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이제까지 서민 경제를 지키거나 북돋운 적은 한 번도 없거든요.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지식인이나 지성인들은 으레 개혁이나 진보를 외칩니다만, 개혁이란 무엇이고 진보란 어떻게 이루나요.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자그마한 사람들 삶자리를 건드리지 못하면서 펼친다는 개혁과 진보란 어떤 일이 될는지요.

어쩌다 툭툭 내뱉는 '서민 경제 살리기'로는 가난한 여느 사람 살림살이를 북돋우지 못합니다. 어쩌다 툭툭 내뱉지조차 못하는 '집안일과 집살림 이야기'라면 이 나라 지식인과 지성인이란 뜬구름 잡으려고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달밖에 없습니다.

.. 상당히 확신하건대, 아빠가 나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거다. 좋은 소식은, 아빠가 그러한 계획을 세운 이유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나쁜 소식은, 아빠의 동기가 얼마나 대단하든 내가 곧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 내 고통을 끝낸다고? 그 말을 듣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 아빠가 무슨 권리로 나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를 결정한단 말인가? 대체 아빠가 무슨 권리로 내 고통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품는단 말인가? 내 곁을 지키지도 못한 주제에! … 아빠는 내가 정말로 죽기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을까?..  (20, 67, 72쪽)

힘든 몸을 움직여 고구마밭에서 줄기를 걷고 고랑을 삽으로 판 다음 호미로 고구마 씨알을 캐면서 생각합니다. 고구마 한 알을 얻기까지 '걷이'를 할 때에만 이와 같은 품과 땀과 겨를을 내놓아야 하는데, '걷이'뿐 아니라 '심기'와 '가꾸기'와 '돌보기'까지 헤아린다면, 고구마 한 알을 어떻게 맞아들이며 어찌어찌 즐겨야 좋을까 하고.

힘든 가운데 힘을 꽤 쓰니 저녁에는 까무룩 곯아떨어집니다. 힘들도록 뛰어논 아이는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며 밤새 칭얼거립니다. 아이는 칭얼거리며 고단하다고 드러냅니다. 어른은 곯아떨어지며 고달프다고 보여줍니다. 애 아빠는 고달프면서도 기저귀를 갈아야 합니다. 이듬날 아침이면 금세 새 기운을 얻어 일찍부터 깨어나는 아이랑 다시금 새롭게 복닥이며 놀아야 합니다.

참말 예전 사람들은 숱한 농사일을 하며 숱한 딸아들을 거느리는 집살림을 어찌 일구었을까 궁금합니다. 요즘 사람들처럼 텔레비전이나 시사나 교육이나 정치나 자질구레한 데에 눈길을 안 두고 집과 마을 둘레에서 조촐하게 살아갔으니 수많은 아들과 살붙이랑 복닥이면서 얼마든지 집살림을 잘 꾸렸는지 모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곳저곳 눈길을 많이 두면서 돈을 참 많이 벌어야 한다고 얽매이니까 집살림은 집살림대로 엉망이며, 농사일을 할 마음을 못 품지 않느냐 싶습니다.

따지고 보면 고단하고 버겁지만, 하고 보면 그렇게까지 어려운 농사일은 아니에요. 우리 살붙이 먹고살 푸성귀와 곡식과 열매를 얻을 땅은 그렇게까지 넓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집식구 즐길 먹을거리는 자그마한 땅으로 넉넉합니다. 더 많이 누리려 하니까 더 많이 벌어야 할 뿐입니다. 옛날에는 소작삯을 많이 떼어야 했으니 몹시 힘겹게 농사를 지어야 했고요.

.. 내가 죽은 뒤, 혹시라도 누군가는 아빠의 시 〈숀〉을 읽게 되겠지. 내가 죽고 일 년 뒤, 어쩌면 이 년, 아니면 이백 년 뒤가 될까? 시를 읽고 감동에 젖은 그 사람은 어쩌면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누구를 알게 될까? 그들은 무엇을 알게 될까? 그 시에는 시인인 시드니 E.맥다니엘이 자신의 아들을 죽였다는 특별 주석이라도 달려 있을까? 그 독자는 아빠나 나를 조금이라도 더 잘 알게 될까? ..  (139∼140쪽)

몸이 꽤 튼튼했다면 고구마밭에서 고구마를 더 빨리 캐내어 더 빨리 일을 끝마치자고 생각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몸이 퍽 튼튼했으면 서울이든 다른 도시이든 볼일 보러 마실을 간다고 길을 나서느라 고구마밭 일손 거들기란 아예 안 했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해롱거리는 몸이라 집에서 더 힘들게 아이랑 복닥입니다. 비틀거리는 몸이기에 지난날 어머님들이 몸이 아플 때에도 어김없이 집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으며 하루하루 살아낸 나날이 어떠했을까 하고 곱씹습니다. 하루를 살고 이틀을 살며 고마운 날들뿐입니다.

 (2) 코 훌쩍이는 아이를 품에 안고

어림이란 둘도 없는 고마움이라고 느낍니다. 젊음이란 대단한 고마움이라고 여깁니다. 늙음이란 더할 나위 없는 고마움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버이한테서 고운 목숨 물려받으며 어린 나날을 뜻깊고 사랑스레 보냅니다. 이러한 어린이 나날은 참으로 고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버이한테서, 또는 이웃한테서 보살핌을 받으면서 푸른 나날을 무럭무럭 자라며 젊은이로 우뚝 섭니다. 이와 같은 젊은이 나날은 무척 고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른 자리에 들어서면서 당신 어버이가 당신한테 했듯이 당신 피와 살과 뼈를 깎아 아이들한테 새 목숨을 물려줍니다. 당신이 사랑을 받아 왔든 미움을 받아 왔든 당신 아이들한테 새 삶을 이어주면서 당신과 당신 아이들이 꾸릴 새 나날을 함께 일굽니다. 이 늙은이 나날이란 얼마나 고마운 선물인지 모릅니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햇수는 열두 해이고, 대학교까지 다닌다면 열여섯 해인데, 대학원을 더 다닌다든지 대학교를 좀 오래 다닌다면 스무 해쯤 학교를 다니기까지 합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닌다면 스물다섯 해나 학교를 다니는 사람이 있고, 나라밖으로 더 배우러 다녀온다면 서른 해 안팎을 배움터에서 지새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움터를 드나드는 동안 집에서 머무르거나 보내는 나날은 줄어듭니다. 집에서 먹고잔다지만 정작 하루 가운데 집에 있는 동안은 얼마 안 되고 으레 배움터에서 지새웁니다. 새벽나절 별을 보며 학교에 가서 밤나절 별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는 오늘날 수험생이잖아요. 중학생 때부터. 어버이랑 함께 살아간다지만, 가만히 따지면 어버이란 이름이나 허울뿐입니다. 아이들이 사귀는 사람이란 바로 교과서이고, 책이며, 지식입니다.

.. 내 방식대로 인생을 경험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오로지 보고 듣는 것을 통해서만 인생을 경험하다 보면 무언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 된다. 달리는 사람을 보기는 했지만 막상 달릴 때 다리가 어떤 느낌일지 도대체 알 리가 없다. 야구공을 던질 때 팔의 느낌은 어떨까? 손가락으로 연필을 잡을 때는? 누군가와 입맞춤을 할 때 입술과 입술이 닿는 느낌은 어떨까? ..  (16쪽)

사람 목숨이 꽤 늘어 일흔이나 여든은 아무것 아니라 하는데, 이 가운데 1/3이든 1/4이든 꼭 반토막이든 학교 울타리에서 지새우는 오늘날 사람이 되었습니다. 학교 울타리 바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복닥이며 어깨동무하는 나날은 몹시 줄었습니다. 아니, 학교 울타리 바깥에서 사람들과 처음으로 어울리거나 복닥이며 어깨동무할 '나이'가 자꾸자꾸 높아만 갑니다.

열 살부터 사회살이를 부대껴야 한다고 슬픈 삶일 수 없습니다. 열 살부터 사회살이를 겪는다고 기쁜 삶이지도 않습니다. 그저 삶입니다. 다만, 열 살부터 사회살이를 마주하는 사람하고 스무 살부터 사회살이를 마주하는 사람이랑 서른이나 마흔 살부터 사회살이를 복닥이는 사람은 사뭇 다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회살이를 꾸밈없이 맞아들여 나와 내 이웃을 고루 살피려는 매무새는 옅습니다. 학교 울타리에서 보내는 햇수가 길면 길수록 학교 울타리에서 내 머리속에 집어넣은 지식에 따라 더 움직이고야 만다고 느낍니다.

.. 발작을 하며 경험하는 웃음의 순간들이 나에게는 진정한 행복처럼 느껴진다. 나는 왜 그런 행복을 좀 즐기면 안 되나? ..  (49쪽)

예부터 슬기를 깨우친 어른들은 한결같이 '생각을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요. 생각을 해야겠지요. 그러면, 생각이란 무엇이고 생각이란 어떻게 하며 생각이란 누구랑 어디에서 하는 가운데 이러한 생각들로 내 삶을 어찌어찌 일구어야 좋을까요. 머리를 굴리는 일이 생각이 되나요. 머리를 쓰면 생각하기가 될는지요.

집살림은 어머니라는 자리에 서는 여자가 도맡을 일이 아닙니다만, 예나 이제나 어머니라는 여자들만 집살림을 도맡고 있는데요, 집살림을 도맡은 어머니들은 날마다 생각을 안 할 수 없습니다. 아침밥 낮밥 저녁밥을 어찌 차리는가, 밥과 반찬은 어떻게 마련하나, 쌀을 어느 만큼 푸고 불리나, 봄에는 무얼 하고 겨울에는 무얼 하며 아침과 저녁은 어떻게 차리면 좋을까, …… 집구석 어디에 먼지가 쌓이고, 마룻바닥이나 방바닥을 쓸고닦는 데에 어느 만큼 걸리며, 아이들을 어떻게 뛰놀도록 내보내며, 아이들 주전부리는 또 어찌어찌 마련하는데다가, 아이들한테 무슨 심부름을 시키고 무슨 일을 맡기며 밤에는 어떻게 재우나, …… 나날이 무럭무럭 크는 아이들 몸에 걸맞게 어떤 옷을 지어 입히고, 씩씩하게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쳐야 좋으며, …… 이웃집 살림살이는 어떠하고 우리 집 살림살이는 어떠하며, 길손이나 동냥하는 거지한테는 어떻게 대접하고, …… 텃밭과 논밭은 어찌어찌 돌보며, 나물은 어느 만큼 언제 뜯어서 삶고 무치고 볶고 데치고 말리고 해야 하며, 명절과 제사는 언제 돌아오는지, 아이들과 어른들 난날은 언제이고, …….

살림이란 옷과 밥과 집입니다. 차례를 따진다면 옷·밥·집이라기보다 밥·집·옷이 되지 않으랴 싶은데, 차례가 이리 되든 저리 되든 우리들은 옷과 밥과 집을 모두 알뜰히 건사할 때 비로소 살림을 한다고 말합니다. 옷·밥·집을 건사하지 못하면 살림꾼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설거지 좀 한다거나 밥 한번 했다거나 걸레질 몇 번 했다고 살림을 했다 말할 수 없어요. 아이랑 몇 시간 놀아 주었다느니 아이한테 그림책 몇 번 읽어 주었다느니 하면서 아이키우기를 했다고 우쭐댈 수 없고요.

살림이란, 여자만 한다거나 남자가 거든다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살림을 건사할 일입니다. 내 옷과 내 밥과 내 집을 내 몸과 마음을 써서 가다듬으며 붙잡을 수 있어야 비로소 우뚝 서는 '어른' 한 사람입니다.

시집장가를 간다 해서 어른이 아니고, 사랑놀이를 홀가분하게 즐기거나 술담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나이라 해서 어른이 아닙니다. 아이를 낳았대서 어른이 아니며, 아이를 둘이나 셋쯤 낳았다고 어른이 되지 않아요. 어른은 "살림할 줄 알며, 살림을 즐거이 하는 사람"만을 일컫습니다.

.. 내가 기침을 하다가 아빠 얼굴에 밥과 으깬 채소를 한입 가득 뱉어 내자, 아빠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제기랄!" 아빠는 나한테 점심을 먹이던 중이었다.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얼굴에 묻은 침과 음식 찌꺼기들을 닦아 내며 아빠가 투덜거렸다. "도무지 적응이 안 돼." 아빠는 건너편 주방 벽으로 숟가락을 내동댕이쳤다. 아빠의 입에서 또다시 욕이 튀어나왔다. "이런 짓은 애기들이나 하는 줄 알았지! 그런데 넌…… 어휴, 젠장!" ..  (69쪽)

아이가 코를 훌쩍입니다. 아빠도 코를 훌쩍입니다. 아이에 앞서 아빠부터 코가 나쁩니다. 어쩌면, 아빠를 낳은 어머니(아이한테는 할머니)부터 코가 안 좋았는지 모르며, 할머니를 낳아 기른 어버이부터 코가 궂었을는지 몰라요. 아이는 가을로 접어들고부터 늘 코를 훌쩍입니다. 아빠 또한 노상 코를 훌쩍입니다. 아이는 아직 스스로 코를 시원하게 풀지 못합니다. 코에 소금물을 넣어 준 다음 엄마나 아빠가 풀어 주어야 하고, 면봉으로 살살 코딱지나 콧물을 빼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도 아이는 코훌쩍임이 그치지 않습니다.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아이이지만 도시와 견주어 맑은 바람과 물만으로는 몸이 금세 튼튼해지지 않습니다. 한 해를 살고 두 해를 살며 열 해와 스무 해를 보내야 여리거나 아픈 몸이 비로소 제법 튼튼하거나 퍽 단단하게 거듭나리라 봅니다.

그러나 한결 맑은 물과 바람과 햇살과 곡식을 받아들인다 해서 언제나 튼튼하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시골에서도 여린 몸으로 태어나는 사람이 있고, 노상 골골 앓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한결 맑은 물과 바람과 햇살과 곡식으로 내 몸과 마음을 한결 맑고 밝으며 싱그럽게 다스릴 수는 있다고 느낍니다. 여리고 아프지만, 여리고 아픈 내 몸을 고이 껴안으면서 내 삶을 맑고 밝으며 씩씩하게 일구며 하루하루를 즐길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 만약 어떻게든, 어떤 식으로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알아줄 그런 사람이 생긴다면? …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고, 반대로 진정한 나 자신으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 ..  (83, 84쪽)

코를 훌쩍이는 아이를 품에 안습니다. 어제 읍내에 마실을 가며 사 온 능금을 반토막으로 잘라 껍질을 벗겨 건네고, 아이가 까까 사 달래서 쥐어 준 뻥과자 한쪽을 건넵니다. 물을 끓여 따숩게 마시도록 합니다. 아빠도 따뜻한 물을 한 잔 천천히 마십니다.

아빠는 아빠 일을 조금 하고 싶어 어린이 만화영화를 하나 셈틀에 걸어 놓습니다. 슬슬 아이가 배고플 무렵이라, 두부를 썰고 김에 밥을 말아 아이 입에 넣어 줍니다. 아이는 밥과 두부를 냠냠 받아먹으면서 만화영화를 들여다봅니다. 아빠는 살짝 숨을 돌립니다. 나란히 밥을 먹고 나란히 놀며 나란히 일을 한다면 가장 좋겠지요. 아직은 어렵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느긋이 지낼 수 있을까 하고 꿈을 꿉니다. 우리 식구가 도시에서 지낸다면 달삯을 치르느라 무척 버거워 그저 꿈만 꿀 테지만, 시골집에서는 달삯을 치르지 않기 때문에 이제부터 꾸준히 살림돈을 추슬러 본다면 돈 몇 푼 더 벌려고 도시로 볼일 보러 오가는 일을 줄이면서 시골집에서 밭이랑 논이랑 일구며 오순도순 조용히 지낼 날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아주 똑똑한 탓에 너무 바보스러운 아빠들

푸른문학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를 읽습니다. 이 작품은 '줄거리 읽기'에 눈길을 둘 까닭이 없기에 줄거리를 말씀드리자면, 책이름 그대로 '아빠가 나를 죽일까 걱정하는 아이' 눈높이로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작품 끝자락을 보면 '아빠는 끝끝내 나를 죽이고야 마는구나' 하는 실마리를 남긴 채 맺습니다.

..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서 보면 나는 바보천치다. 의사들이 내가 왜 멍청한지 엄마 아빠한테 설명하고, 엄마 아빠가 친구들한테 설명하는 말을 수억 번도 넘게 들었다. 그들은 내 뇌가 작동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그들은 알지 못한다 … 내 손을 붙잡아 점자판에 대 보는 사람도, 가슴에 대고 손가락으로 글자를 그려 보려는 사람도 없다 … 나는 바보가 아니며 이 쓸모없는 몸뚱이 안에 진짜 내가 있다는 사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난 단지 이도저도 아닌 어딘가에 갇혀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안다면, 아니 단 한 사람이라도 알게 된다면 과연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하고 이따금 정말로 궁금해진다 ..  (10, 12, 18쪽)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를 이끌어 가는 목소리는 '장애를 앓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처음에는 아기였고, 나중에는 어린이였으며, 죽을 무렵에는 푸름이입니다. 이 사람이 아기였을 때에는 장애가 있으리라 여기지 않습니다. 나중에 어린이가 될 무렵 아빠랑 엄마 되는 사람은 '아이한테 장애가 있군!' 하고 느끼는데, 엄마는 아이한테 장애가 있건 없건 똑같이 사랑하지만 아빠는 아이한테 장애가 있기 때문에 '다르게 사랑하려' 합니다. 이를테면 '안락사'입니다.

.. 열네 해를 사는 동안 아빠가 내 앞에서 내 이름을 소리내어 부른 게 전부 해서 열여섯 번이다 … 아빠의 눈에 내가 식물인간이라면, 식물인간이라면, 나는 절대로 삶을 즐기거나 생산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 … 지체라는 말은 '느리다'라는 뜻이면서 동시에 단지 느린 부류의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기도 한데, 모든 사람이 모든 일을 똑같은 방식과 똑같은 속도로 처리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정상인들이 우리를 저능아라고 하니까 우리는 저능아가 되는 거다 ..  (29, 39, 59쪽)

푸른문학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에 나오는 어머니는 집안살림을 도맡습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아버지는 집안살림을 거의 하지 않을 뿐더러 잘 모릅니다. 아버지 되는 분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두루 알려진 시인이며 작가이자 지식인입니다. 어머니 되는 분은 그예 '어머니'입니다.

책을 읽는 동안 생각에 잠깁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생각을 잇습니다. 시인이든 아니든 작가이든 아니든 지식인이든 아니든, 아이 하나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라 한다면 집안살림을 함께 해야 합니다. 밥을 마련하든 옷을 장만하든 집을 짓는 어버이 된 사람은 어버이 당신과 아이가 함께 살아가도록 살림을 꾸려야 합니다.

앤서니 브라운 님이 빚은 그림책 <돼지책>을 보면 '아주아주 커다란 일'을 하는 남자들(아버지와 아들들)은 집안살림을 도무지 안 할 뿐 아니라, 눈길조차 안 두고, 알아야 할 까닭이 없다고 여기지만, 모든 권리와 권력과 물질을 누립니다. 푹신한 걸상에 몸을 기대어 "엄마!(또는 여보!)" 하고 부르면 밥이 나오고 옷이 나오며 주전부리가 나옵니다. 아침에 '아주아주 커다란 일'을 하고자 일터(또는 학교)에 가서 저녁나절 집으로 돌아오면 집은 늘 말끔하며 가지런한데다가 코를 건드리는 맛난 냄새가 집안을 감돕니다. 옷을 벗어 아무 데나 휙휙 던져 놓아도 이듬날 옷을 챙겨 입으려고 옷장을 열면 보송보송 잘 마르고 개킨 채 알뜰살뜰 놓여 있습니다. 밥 걱정 옷 근심 집 끌탕이란 한 번도 하지 않는 "버르장머리없는 돼지들"이에요(돼지한테는 안 된 말씀입니다만).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라는 작품에서 '주인공이자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나'를 끝내 죽이려 드는 아빠라는 사람 또한 "버르장머리없는 돼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집안일이란 모르며 살림살이 또한 생각하지 않는데다가 '다른 사랑'을 하고자 할 뿐입니다. '다른 사랑'이란, 한자말로 하자면 '다양성을 살리는 사랑'이 아닙니다. '사람을 다르게 보는' 사람, 또다른 한자말로 하자면 '차별을 하는 사랑'입니다.

.. "당연히 보수는 전부 다 지급될 겁니다. 오늘 밤 내가 따로 할 일이 없으니까, 난 그냥 좀 돕는 것뿐이니까요." "와, 그러면 좋겠네요." "그럼 거래가 끝난 겁니다." 평생을 통틀어 아빠 혼자서 나와 함께 밤을 지새운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 문득 머리를 스친다. 그런데 느닷없이 아빠가 나를 돌보겠다며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뭐, 거래가 끝났다고? 내가 끝난 거래란 말인가? ..  (151∼152쪽)

책을 읽으며 느낍니다. 좋다고 하는 책을 더 많이 읽어도 괜찮을 테지만, 좋다고 하는 책이라 해서 굳이 더 안 읽어도 괜찮습니다. 좋은 책을 많이 읽어 '온누리에 이런저런 좋은 책이 있답니다' 하고 떠들기 앞서, 좋은 책은 한 가지조차 모르지만 '우리 아이를 사랑하고 이웃 아이를 우리 아이처럼 똑같이 사랑할 수 있는 삶'을 꾸리면 몹시 아름다워요.

좋은 책 한 권에 깃든 좋은 속살을 받아먹으며 내 마음밥을 살찌우는 일은 틀림없이 즐겁습니다. 이와 함께, 좋은 책 한 권이 얼마나 좋은가를 까맣게 모르지만, 내 코앞에 있는 사랑스러운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를 깨달으며 따사롭고 넉넉하게 껴안을 수 있을 때에도 대단히 즐거워요.

이리하여, 저로서는 아무리 돈 많이 준다고 하는 일터라 할지라도 아침저녁으로 오가며 달삯을 받을 수 없습니다. 돈은 거의 못 벌어 살림이 쪼들린다 할지라도 아이랑 엄마랑 아빠가 올망졸망 복닥이며 하루를 길면서 짧게 느끼며 보내는 이 삶이 반갑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양철북,2010)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

테리 트루먼 지음, 천미나 옮김, 책과콩나무(2009)


#청소년문학#청소년책#책읽기#삶읽기#문학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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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작은책집으로 걸어간 서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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