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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문학적 관점

 

.. 그래서 문학의 현실 참여에 대해 무기력하고 민중론에 회의적인 입장이라는 점에서 도출된 것일 텐데, 그 비판이라면 우리의 문학적 관점과 주장이 그런 것이기에 굳이 변명할 것은 아니었다 ..  <김병익-글 뒤에 숨은 글>(문학동네,2004) 231쪽

 

"문학의 현실 참여(參與)에 대(對)해"는 "문학이 현실에 함께해야 한다는 데에"는 "문학이 현실을 담아낸다는 데에"로 손질합니다. '무기력(無氣力)하고'는 '힘이 없고'로 다듬고, "회의적(懷疑的)인 입장(立場)이라는 점(點)에서"는 "믿지 못한다는 생각에서"로 다듬습니다. "관점(觀點)과 주장(主張)"은 "눈길과 생각"으로 손보며, "그런 것이기에"는 "그러하기에"로 손보고, "변명(辨明)할 것은 아니었다"는 "둘러댈 까닭은 없었다"나 "토를 달 일은 아니었다"로 손봅니다.

 

 ┌ 우리의 문학적 관점과

 │

 │→ 우리가 생각하는 문학과

 │→ 우리가 바라보는 문학과

 │→ 우리가 다루는 문학과

 │→ 우리가 문학하는 마음과

 │→ 우리가 문학을 즐기는 마음과

 │→ 우리가 문학을 바라보는 눈길과

 └ …

 

보기글은,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품는 생각을 말하는지, 아니면 문학을 비평하는 사람으로서 품는 생각을 말하는지, 또는 문학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품는 생각을 말하는지 두루뭉술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글이든 흐름을 살피면서 받아들이기 마련이라, 이 글을 쓴 분이 '문학평론가'임을 헤아리면서 살펴본다면, 그렇게까지 두루뭉술하지는 않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 우리는 문학을 그렇게 바라보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 우리는 문학을 이렇다고 말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 우리가 바라보고 말하는 문학은 이러하기 때문에

 ├ 우리가 즐기고 이야기하는 문학은 이러하기에

 └ …

 

그런데, 글쓴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이 보기글을 읽는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는지요. 누군가 제 이름을 숨긴 채 이와 같은 글을 썼다면 어떻게 헤아려야 할는지요.

 

말 한 마디를 해도 좀더 또렷하게 할 수는 없었을까요. 글 한 줄을 쓰면서도 한결 환히 드러나도록 마음을 기울일 수 없었을까요. 문학이란 무엇이고 문학을 평론하는 일이란 무엇이며, 문학과 문학평론으로 나타나는 말과 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말로 담아내어 나누는 문학이란 어떻게 할 때에 아름답고, 말로 펼쳐서 보여주는 문학평론은 어떻게 빚을 때에 아리따울까를 곱씹어 봅니다. 문학이든 문학평론이든, 또 정치이든 경제이든 교육이든, 여기에 사회이든 철학이든 예술이든, 하나같이 말로 나누며 글로 보여줍니다. 아무 말이나 섣불리 할 수 없고, 아무 글이나 함부로 쓸 수 없습니다. 문학이 문학답자면 먼저 말다운 말로 내 넋을 살려쓸 수 있어야 합니다. 평론이 평론답자면 무엇보다 글다운 글로 내 얼을 살찌울 수 있어야 합니다.

 

 

ㄴ. 문학적 행위

 

.. 이청준은 사진이 어떻게 미래를 찍을 수 있는지를 문학적 행위로 완성한다 ..  <진동선-노블 앤 뽀또그라피>(시공사,2005) 93쪽

 

'미래(未來)'는 '앞날'이나 '다가올 날'로 다듬고, '완성(完成)한다'는 '이루어 낸다'나 '마무리한다'나 '일구어 낸다'나 '보여준다'로 다듬어 줍니다.

 

 ┌ 문학적 행위로 완성한다

 │

 │→ 문학으로 마무리한다

 │→ 문학으로 보여준다

 │→ 문학이라는 틀로 이루어 낸다

 └ …

 

이 보기글에서는 "문학적 행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문학을 어찌저찌 하다 보면 "문학적 행위"가 되는가 봅니다. 그렇다면 이와 마찬가지로 "사진적 행위"라든지 "음악적 행위"라든지 "예술적 행위"라든지 "교육적 행위"라든지 "정치적 행위"도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사진적 행위"란 무엇일까요. "정치적 행위"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거나 '무슨 일을 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요. 우리는 우리가 꾸리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라보거나 들여다보거나 헤아리고 있는가요.

 

 ┌ 문학으로 이야기한다

 ├ 문학으로 들려준다

 ├ 문학으로 밝힌다

 ├ 문학으로 아로새겨 놓는다

 └ …

 

문학적 행위란 다름아닌 문학을 하는 삶이요, 이청준이라고 하는 소설꾼으로서는 '소설쓰기'입니다. 소설꾼 이청준 님은 "사진이 어떻게 앞날을 찍을 수 있는지를 소설을 써서 보여준다"고 하는 셈입니다.

 

사진적 행위란 그예 사진찍기입니다. 음악적 행위란 노래를 부르거나 짓는 일입니다. 예술적 행위란 예술을 하거나 보이거나 즐기거나 이루는 일일 테지요. 교육적 행위란 가르치며 배우는 삶이요, 정치적 행위란 정치를 하는 삶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행위(行爲)' 아닌 '함'과 '일'과 '삶'으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무엇인가를 하고 일을 하고 삶을 꾸리면서 내 넋과 몸을 돌보거나 다스립니다.

 

차근차근 살펴보자면 '-적 행위'라는 말투는 우리 말투가 아닌 일본사람 말투입니다. 일본사람이 일본땅에서 다른 일본사람하고 나누려고 글을 쓰거나 말을 하면서 쓰고 있는 말투입니다. 우리가 이런 일본 말투를 받아들여 우리 말투로 삼거나 뿌리내리거나 퍼뜨릴 수 있겠지요. 우리한테 이 말투가 쓸 만하다면 얼마든지 끌여들일 수 있을 테지요.

 

동네에 새로 문을 여는 가게를 보면, 가게마다 붙는 이름이 한글조차 아닌 알파벳이기 일쑤입니다. 동네 빵집 가운데 '빵집'이라 이름 붙이는 곳이란 없고 '베이커리'나 'bakery'라는 말을 쓰는 곳이 수두룩합니다. 동네 가게요 동네 일꾼이면서 스스로를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느끼려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셈틀을 켜고 편지를 읽으려면 naver나 nate나 daum이나 yahoo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지 네이버나 네이트나 다음이나 야후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적어도 한글로 이름을 함께 적으려고 마음을 쏟는 사람이란 없다 할 만하며, 한글을 먼저 적바림하고 나서 알파벳이든 한자이든 옆에 작은 크기로 붙여야 한다는 말법(국어기본법)을 지키는 기관조차 드물다 할 만합니다. 흔히 말하는 수구기득권만 우리 말법을 일그러뜨리지 않습니다. 흔히 말하는 진보개혁세력 또한 우리 말법을 허물어뜨립니다. 뜻이 있고 생각이 있다는 사람들이라 하여 우리 말을 찬찬히 돌아보며 아끼는 사랑이나 믿음이 있지 않습니다.

 

올바른 삶을 널리 나누며 스스로 가꾸려는 이 나라라면, 아주 마땅하게 올바른 넋으로 올바른 말을 펼치는 이 나라로 이루어져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올바른 말을 찾아보기 어렵고, 올바로 말하고 글쓰는 모습을 느끼기 어려운 까닭은, 아무래도 우리 스스로 올바른 삶하고는 등돌리고 있을 뿐 아니라 올바른 삶을 찾지 않는데다가 올바른 삶을 깨닫지 않기 때문이구나 싶습니다.

 

이리하여, "문학적 행위"는 숱한 '-적 행위'를 돌고 돌다가는 "언어적 행위"로 마무리가 됩니다. 말을 다루는 학자라고 하는 언어학자는 언어학을 하며 언어적 행위를 지식인 언어로 다루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태그:#-적, #적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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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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