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다섯 번째 이야기는 교육 강국 핀란드에 관한 이야기다. 인구 530만 명의 핀란드는 수준 높은 복지와 교육제도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핀란드는 1960년대부터 40년 동안 꾸준히 '누구에게나 질 좋은 교육을'이라는 목표를 실현시켜 왔다. 그 결과는 2000년부터 국제학력평가시스템(PISA) 4번 연속 최상위권 기록으로 나타났다. 경쟁과 획일적인 시험이 거의 없지만,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핀란드. 그들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복지제도와 삶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편집자말] |
글 : 임정훈·박수원 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핀란드편' 특별취재팀 애초 핀란드 중산층 가족을 인터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낯선 이방인들에게 수입을 공개하고 아이들 교육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해 줄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을 도왔던 곽수현씨의 핀란드 친척분의 도움으로 간신히 한 가족에게 인터뷰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핀란드와 한국의 월급쟁이 두 가정을 통해 아이 교육을 둘러싼 생활과 고민을 들어봤다.
[핀란드- 피르요씨 가족] "억대 연봉 받지만, 아동 수당 받아요"
헬싱키 시 동쪽에 있는 라이야 살로에 살고 있는 피르요 투오맬라(45, 금융업)씨의 집을 찾아간 것은 지난 10일 저녁이었다. 실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피르요씨 가족은 중산층이 아니라 고소득층에 속했다.
집에서 바다가 훤히 보이는 2층 구조의 연립형 주택(한화로 10억 정도)을 소유한 그는 파일럿이었던 남편과 이혼을 했지만, 산나(14, 쿨로사이렌 종합학교 8학년-우리나라의 중2)와 마이사(12, 콜로사이렌 종합학교7학년-중1) 두 딸과 함께 세계로 여행을 다니면서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다. 집을 얻기 위해 빌린 대출금도 이미 다 갚은 상태다.
월 7000만 원 이상씩 번다는 피르요씨는 수입의 48~50% 정도를 세금으로 내고 있다. 사실상 수입의 절반이 세금인 셈이다.
부모가 부자이지만 피르요씨의 두 딸에게 정부에서는 아동수당으로 매월 220유로(1유로≒1500원, 약 34만여 원)를 지급한다. 원래 두 딸에게 지급하는 아동수당은 210유로(첫째 100유로, 둘째 110유로)이지만, 이혼한 탓에 10유로를 더 받는다. 피르요씨는 이 아동수당을 모았다가 "방학 때 어학연수겸 여행을 가고, 스포츠 활동에도 쓰고, 옷을 사는 데도 보탠다"고 말했다. 4Km 정도 되는 거리의 학교에 다니는 두 딸에게는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버스카드가 주어진다.
피르요씨는 수입의 상당 비용을 아이들과 여행하는 데 지출한다고 말했다. 이집트, 그리스, 아일랜드, 영국, 프랑스, 태국, 싱가폴, 발트3국, 스웨덴, 중국, 캄보디아, 스위스 등등. 동서양을 넘나들면서 20여 개국 넘게 여행했다.
"세금 많이 내지만, 시스템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
아이들의 방학과 피르요씨의 휴가(6주 정도)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다니는 것이 이들 모녀의 일상이었다. 아이들은 방학 때 프랑스어를 배우러 프랑스에 가서 머물기도 하고 스키를 타러 스위스에 가기도 한단다.
큰 딸 산나는 "여행을 통해서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느낄 수 있다"고 여행의 장점을 언급했다.
피르요씨는 너무 많은 돈을 세금으로 낸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덜 내고 싶어도 (핀란드 조세 관련) 시스템이 그렇게 돼 있는데 어쩔 수 없지 않나. 세금을 내는 만큼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나마 교육과 의료가 무료라서 다행이다."그러나 그는 "최근 핀란드에 이민자가 늘어나 본인이 낸 세금이 그들 복지에 쓰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들이 복지를 누리는 것도 그들의 권리"라는 쿨한 답변을 내놨다.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무상급식에 대해 설명하면서 견해를 물었더니, 의미심장한 답변이 돌아왔다. 혹시 본인이 겪은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핀란드에서도 1960년대에 가난한 아이들에게 신발을 사라고 일괄적으로 티켓을 주었다. 그런데 이 티켓으로 살 수 있는 신발의 색깔과 디자인이 똑같았다. 그 신발을 신었다는 건 가난하다는 걸 의미했다. (무상급식도) 마찬가지 경우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에게만 주면 누가 먹겠나?"공교육 시스템에 만족..."영어 자유롭게 구사해서 좋다"두 딸의 교육과 관련해서도 피르요씨는 대체로 공교육 시스템에 만족하고 있었다.
사실 피르요씨는 두 딸 모두 종합학교에 입학하기 전 영어 유치원에 3년 이상 보냈을 정도로 교육열이 높다. 두 딸은 시험을 봐서 영어로 수업을 하는 종합학교에 들어갔다. 최근 핀란드에서는 영어교육이 강조되면서 영어로 수업을 하는 종합학교가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영어 수업이 철저하게 공교육 틀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 두 딸들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했고, 성적도 상위권에 속한다. 둘째 딸 마이사는 또래 아이들보다 학업성취도가 높아 한 해 먼저 학교에 들어갔고, 영어와 수학 실력이 좋단다.
피르요씨는 "여행 가서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선생님들 수준도 높다"며 학교 교육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특히나 학교에서 영어뿐 아니라 스포츠, 예술 등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산나는 여자지만 가방에 축구볼을 항상 넣고 다닐 만큼 축구를 좋아하고, 아이스하키 관람을 즐긴다. 산나는 파일럿, 건축가 말고도 '축구선수'가 되는 게 꿈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영어도 잘 하고 성적도 우수하며 해외여행을 수시로 하는 부잣집 아이들인 산나와 마이사 역시 평상시에는 여느 10대의 평균적인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오후 3~4시 정도에 학교에 갔다 와서는 인터넷도 하고 친구들과 수다 떨며 놀기도 하고 축구도 한다.
요즘은 하루에 인터넷을 2시간 이상씩 켜 놓고 친구와 채팅을 하거나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볼 때가 많아서 엄마인 피르요씨에게 "그만 인터넷 꺼라"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단다.
산나와 마이사에게 "핀란드의 다른 10대와 마찬가지로 18세 이상이 되면 독립을 할 거냐"고 묻자 언니인 산나는 "독립해서 살더라도 엄마와 가까이 살면서 일 주일에 한 번 정도는 집에 오고 싶다"고 했고, 마이사는 "안정적인 직업이 있고 독립을 할 때가 되면 나가겠다"고 말했다.
피르요씨는 아이들이 어떤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냐고 질문하자 "직업에 대한 특별한 욕심은 없다"면서 "우선 고등학교까지 과정까지 잘 마쳤으면 하는 게 바람이고, 그 다음은 아이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산나와 마이사는 여건이 허락한다면 영국이나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도 했다.
[대한민국- 김수영씨 가족] "셋째 낳을까 말까... 큰 딸 선행학습 때문에 고민"
"아이를 낳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남편과 엄청나게 싸웠다."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와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수영(가명, 40, 서울 양천구 목동 거주)씨는 얼마 전 셋째가 생긴 것을 알고 남편과 의견 충돌을 겪었다. 전직 고등학교 교사이기도 한 김씨는 "어차피 생긴 아이니까 낳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남편은 이런 김씨를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했다.
"남편은 '내가 언제까지 벌 수 있을 것 같냐'며 강하게 반대했다. 지금 두 아이에게 드는 사교육비만도 한 아이 당 100만 원씩 200만 원이 드는데 과연 셋째까지 낳으면 감당할 수 있겠냐는 거였다. 지금도 성과급으로 겨우 버티고 있고, 그마저도 회사에서 점점 줄이려고 하고 있는데 무리하지 말자는 거였다. 결국 낳기로 결정했고 지금 마음은 편하지만, 그 아이 키우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김씨 남편은 여의도 증권가에서 일하고 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고액연봉자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한해 8800만 원을 넘게 벌어서 35% 정도의 세금을 냈다. 좋은 학군에서 아이들을 공부시키기 위해서 대출을 받아 목동으로 집을 구해 옮길 정도로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다.
초등학교 6학년 딸은 오후 3시부터 학원 수업을 받고, 매일은 아니지만 일 주일에 두 번 정도는 오후 10시에 집에 들어온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도 영어, 수학 학원은 기본이고 방과후교실과 태권도학원에 다니고 있다.
김수영씨 가족은 그나마 아빠가 퇴근 시간이 일정해 가족들과 거의 매일 저녁을 먹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 그러나 아빠가 회사에 다니는 주변의 다른 집들은 가족들이 함께 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다.
선행 학습 때문에 딸과 갈등 겪는 엄마 김씨는 요즘 딸과 학원 숙제 때문에 자주 갈등을 겪는다. 학원 숙제 때문에 갈등을 겪는 이유는 '선행 학습' 때문이다. 6학년인 딸은 최근 들어 "공부에 부담을 많이 느낀다"고 말한다.
"교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제일 고민스러웠던 점이 선행학습 여부였다. 교사를 하면서는 도대체 왜 엄마들이 선행학습을 시키는 걸까라고 생각했는데, 교사 그만두고 1~2년 지나면서 그 생각이 희미해졌다. 목동에 유명한 ㅎ수학학원이 있다. 지금 딸이 중2과정을 배운다. 그런데 학원 숙제를 안 하고, 시험을 보면 자꾸 레벨이 떨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다른 아이들에게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행을 고집하고 있다."
김수영씨 딸은 특목고를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지만, 특목고 전형이 최근에 내신 위주로 바뀌어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교과부에서는 특목고 전형을 토플, 텝스 등의 영어인증시험 대신 내신 위주로 바꿨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목동에서 특목고를 제일 많이 보내는 ㅇ중학교가 있다. 그런데 내신으로 특목고를 뽑다 보니, 다 내신에 올인하는 분위기다. 영어의 경우 지난 중간고사에서 만점이 전교에서 76명이나 나왔다고 들었다. 6학년 딸도 거기 보내려고 했는데, 지금 시험제도대로라면 과연 그 학교에 보내야 할지 고민스럽다."초등학교 다니는 아들도 손이 많이 가기는 마찬가지다. 목동 지역이 특별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학교 행사에 학부모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맞벌이 엄마들도 매번 참석은 못하지만, 두세 번에 한 번 꼴로 참석을 한다고.
할아버지 재력, 엄마 정보력, 아빠 무관심, 아이 체력그는 방학이 되면 한 달에 한 아이당 100만 원씩 들어가는 사교육비가 더 들어간다고 했다. 영어, 수학뿐 아니라 논술 등에서 특강이 많이 편성되고, 초등학교 아들의 경우 국내 대학에서 하는 영어캠프에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나 그의 남편은 월급쟁이 중에서 가장 많은 세금을 내고 있는 것에 대해서 크게 불만은 없다. 어차피 함께 사는 사회이고, 많이 버는 사람이 당연히 많이 세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금을 내는 것에 비해서 본인에게 돌아오는 뭔가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나 주택, 교육 부분에서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 너무 크다고 생각한다.
"사실 특목고나 대학입시가 내신 위주로 가든, 인증시험으로 하든, 입학사정관제로 하든 거기에 맞춰 과열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어차피 서열화된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그게 쉽게 바뀔 거라고 생각은 안 한다. 문제는 일관성이다. 매번 제도가 바뀌면서 거기에 적응하려면 엄청난 에너지를 쏟게 된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참견하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아이의 체력이 뒷받침돼야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다는 말이 있는 것 같은데, 그 말에 공감한다." '<유러피언드림> 핀란드편' 특별취재팀 : 박수원 기자(팀장), 임정훈 시민기자, 윤정현 해외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