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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다피 퇴진 문제를 놓고 유혈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리비아 상황을 보도한 BBC.
카다피 퇴진 문제를 놓고 유혈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리비아 상황을 보도한 BBC. ⓒ BBC

 

"군사적 교착 상태와 정치적 진공 상태(의 지속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반독재 민주화 요구와 부족 간 갈등이 얽혀 유혈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리비아에 대해 영국 공영방송 BBC는 3일(현지 시각) 이렇게 보도했다. 

 

현재 리비아 서부의 주요 지역은 42년 독재자 카다피 세력이, 동부의 주요 지역은 반카다피 세력이 장악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카다피 퇴진을 요구하는 봉기가 시작된 이래 카다피 세력은 벵가지, 토브룩 등 동부의 주요 도시들을 내주며 영향력이 위축되긴 했지만, 수도 트리폴리를 중심으로 한 서부를 여전히 수중에 넣고 있다.

 

동부와 서부의 이러한 대립 구도는 리비아 역사에서 이전에도 나타난 적이 있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던 시절 리비아는 서부, 동부, 남서부 셋으로 나뉘어 있었고, 독립 후에는 동부를 중심으로 한 왕정이 세워졌다. 카다피는 1969년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무너뜨린 후 서부 출신들을 중용하고 동부를 차별했다. 카다피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동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카다피 세력을 몰아낸 동부 주민들 중 일부가 옛 왕정 깃발을 흔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동안 밀리던 카다피 세력은 3일(현지 시각) 반카다피 세력이 장악한 석유 수출 항구인 브레가를 공격했다. 일진일퇴 끝에 반카다피 세력은 브레가를 지켜냈다. 그렇지만 반카다피 세력 역시 트리폴리에서 카다피 세력을 단번에 몰아낼 만한 힘은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3일(현지 시각) 카다피가 핵심 지지 부족과 군대라는 기반을 갖추고 있으며, 트리폴리에서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어느 한쪽도 상대방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 리비아의 내전이 길어져 자칫하면 소말리아 같은 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소말리아에서는 1991년부터 내전이 계속되고 있고, 해적 활동이 활발해진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것이다.

 

"카다피 세력, 초기 충격 흡수하고 장기전 준비"

 

<로이터통신>은 3일(현지 시각) "카다피가 튀니지와 이집트의 동료 독재자들처럼 조용히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상황을) 재고해야 할 것"이라며 리비아가 소말리아 같은 혼돈 상태로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카다피가 리비아 국토의 상당 부분에 대한 통제권을 잃을지라도, 권력을 포기하기보다는 나라를 소말리아 같은 폐허로 만들 준비를 하는 것 같다고 보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에서 중동 정치를 가르치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 교수는 <로이터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리비아가 기나긴 내전의 수렁에 빠져들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파와즈 교수는 "카다피는 궁지에 몰려 있고 그에게는 출구 전략이 없다"며 "카다피는 끝까지 싸울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파와즈 교수는 "지난 48시간 동안 카다피는 초기의 충격을 흡수한 것 같다"며 "카다피는 제한된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와즈 교수는 카다피 세력이 장기전을 하기 위해 체제를 정비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알제리 출신 변호사 사드 제바르(Saad Djebbar)는 "카다피의 목표는 혼돈 상태를 창출해 내전을 겪게 하거나 소말리아처럼 만드는 것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드 제바르는 소말리아화에 대해 "중앙 권력이 없고, 카다피가 쪼개진 나라의 일부에서 계속 힘을 발휘하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사드 제바르는 로커비 사건(1988년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출발한 팬암항공 소속 보잉747기가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폭발해 270명이 숨진 사건)에서 리비아 쪽 변호인으로 활동했다.

 

사드 제바르는 카다피에게 충분한 돈, 사람들을 무장시킬 무기,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이 있다며 "(현재 상황에서는) 혼돈이 커질수록 (카다피에게) 좋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BBC는 "카다피가 말리 출신 용병 수백 명을 고용했다"고 보도했다.

 

사드 제바르는 "카다피의 메시지는 '뒷일은 될 대로 되라. 너희들이 나를 힘으로 몰아내려 하면 나는 쪼개진 나라 아니면 소말리아 같은 내전 상태의 나라를 남겨줄 것이다'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카다피 세력과 반카다피 세력, 힘의 균형 상태... 장기간 대치 가능성"

 

캠브리지대학의 중동 전문가 조지 조페는 "카다피는 포기하지 않았다, 브레가에 대한 공격은 카다피가 싸움을 계속할 것임을 보여줬다"라고 말했다.

 

조지 조페는 "두 세력 간의 힘의 균형이 이뤄졌고 이는 상당 시간 지속될 수 있다"며 "장기간 서로 대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카다피가 이 상황을 "곱게 끝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리비아의 소말리아화' 가능성에 대해 2일(현지 시각)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도 우려한 바 있다. 힐러리 클린턴 장관은 "가장 크게 우려되는 건 리비아가 대혼란에 빠져 또 다른 거대한 소말리아가 되는 것"이라며 개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와 달리 카다피는 같은 날 "200만∼300만 명에게 무기를 나눠줄 준비가 돼 있고 (국제 사회가 무력으로 개입하면) 또 다른 베트남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으로서는 뼈아픈 기억인 베트남전쟁 같은 일을 리비아에서 다시 겪을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이처럼 리비아 문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카다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리비아 문제를 풀기 위한 국제평화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카다피는 이를 받아들였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반카다피 세력은 '카다피가 퇴진하지 않으면 협상도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체포·처형·실종·감시... "트리폴리 사람들은 희망을 잃었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3일(현지 시각) "카다피 세력의 브레가 공격을 격퇴한 (동부의) 반군 전사들이 승리를 축하하고 있을 때 트리폴리의 많은 사람들은 튀니지와 이집트에서처럼 평화 시위로 권력자를 끌어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잃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트리폴리 주민들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가 이뤄지고,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든 민병대원들이 곳곳에서 차량은 물론 휴대전화까지 조사하고 있으며, 지난 주 '카다피 퇴진 요구' 시위 관련자들이 연이어 실종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어떠한 시위라도 하면 이제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안다. 그래서 트리폴리 사람들은 자신들을 도와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중략) 여기서 사람을 죽이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런 모습을 내 눈으로 봤다"는 트리폴리 주민의 말을 전했다.

 

또한 <뉴욕타임스>는 "트리폴리 인근 페쉬룸과 타주라의 몇몇 사람들은 카다피에게 충성하는 민병대가 지난 주 카다피 퇴진 요구 시위 때 찍은 사진을 활용해 반카다피 세력을 찾아내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들은 카다피의 비밀경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익명을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BBC도 "카다피의 보안군이 트리폴리 사람들을 체포·처형하고 시민들이 실종되는 일이 최근 며칠 동안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카다피#리비아#아랍 민주화#시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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