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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 마을에 세워진 소통이 있어 행복한 집 '소행주'
 성미산 마을에 세워진 소통이 있어 행복한 집 '소행주'
ⓒ 한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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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와 기대, 망설임과 결단 끝에 공동주택이 완성되었습니다. 성미산 마을 사람들은 까만집이라 부르고 입주민들은 이 집 이름을 '소행주'라고 지었습니다. '소통이 있어 행복한 집'이라는 뜻입니다. 얼핏 보면 컨테이너로 만든 집 같아 실망했다는 분도 있지만 지나가는 사람마다 궁금해서 들어와 살펴보고 싶어하는 집입니다. 성미산마을 투어 코스로 지정되고 집 내부공개를 요청하시는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공동주택이 입주자들의 요구와 바람대로 지어지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소행주는 그야말로 입주자 '입맛대로' 지어진 집입니다. 17평밖에 안 되는 우리 집도 방 2개, 화장실 2개를 만들었습니다. 다섯 식구가 살다 보면 바쁜 아침에 화장실 앞에서 발을 동동거려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화장실 2개는 우리 가족에겐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좁은 평수라는 조건에 실망하지 않고 아이들 방 한구석에 달랑 변기만 한 개 들어간 화장실을 만드는 것으로 우리 가족은 오랜 소원을 이뤘습니다.

들어와 살 사람들이 다양하고 개성 있는 분들이다 보니 어떤 집은 문이 없는 화장실을 두었답니다. 냄새와 소리 등 발생하는 문제를 어쩔지 걱정스럽긴 하지만 사는 분들이 좋으면 그만입니다. 방 3개를 줄줄이 연결해 긴 복도를 연출하기도 했고 거실 겸 방으로 쓸 수 있는 다용도 방을 만든 집도 있습니다. 다락방을 만들고 그 안에 침대와 책상을 들여 아이에게 근사한 공간을 선물한 집도 있습니다.

허리를 다 펼 수 없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혼자만의 공간을 갖고 싶었던 우리 집 큰아이가 제일 부러워하는 다락방입니다. 복층을 지은 분은 혼자 고독을 즐기기 딱 좋은 서재를 꾸며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 서재에서 책 한 권은 집필되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10평이 채 안 되는 공간에 책장과 책상, 침대를 절묘하게 짜 넣어 맞춤가구의 진수를 보여준 집도 있습니다.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집이 소행주입니다.

복도는 마루를 깔아 신발 벗고 다닐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신발장을 복도에 놓아 집을 좀 더 넓게 쓸 수 있게 되었으며 아이들이 다른 집에 갈 때도 신발을 신지 않고 편하게 다닐 수 있습니다. 택배가 왔을 때도 누군가 1층 문만 열어주면 택배기사가 엘리베이터로 올라와 복도에 물건을 내려놓고 가면 됩니다. 급히 냉장고에 넣어야 할 물건이 오면 다른 집이 대신 냉장고에 넣어주기도 합니다. 이러려고 공동주택에 온 거지요.

설계를 내 맘대로 해서인지 내 뜻대로 변경이 잦은 편입니다. 이미 만들어진 창틀을 새로 짜고 싶어 하는 분도 있었고 이미 설치된 것을 다른 것으로 교체하기도 했습니다. 위층 아래층 뛰어다니는 건설사 실무자의 피곤한 얼굴을 보기가 미안할 정도입니다. 확정된 것을 변경하거나 잘못 시공된 것을 교체하는 공사가 겹치는 바람에 4월 초부터 입주가 시작되었지만 5월 중순이 지나도 내부 공사가 이어졌습니다. 매일 먼지를 쓸어내야 했고 공사 소음을 들어야 했습니다. 방음이 잘 돼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입주자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고 이웃과 소통하는 미덕

'소행주'는 지역 예술가들의 도움으로 아이들이 쉬고 놀 수 있는 설치물도 마련했다.
 '소행주'는 지역 예술가들의 도움으로 아이들이 쉬고 놀 수 있는 설치물도 마련했다.
ⓒ 한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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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분들이 원하는 대로 짓는다고 완벽한 주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건설 효율성에서 이번 공동주택은 후한 점수를 받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방 위치뿐 아니라 거실, 주방, 욕실의 위치가 전부 제각각이라 어떤 집 안방 위에 화장실이 만들어질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건축 코디를 맡아주신 이일훈 교수님께서는 설계도를 보면서 '이 집을 기한 안에 다 지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하셨습니다. 층마다, 집마다 평수와 구조, 골격이 다 달라 건물의 중심부를 한 곳에 모으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기본 골조가 완성된 후 입주자들은 벽 두께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일반 주택의 벽보다 훨씬 두꺼웠기 때문입니다. '맘대로' 설계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많은 철근을 넣어 골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공사장의 인부들도 '이렇게 굵은 철근을 많이 쓰는 곳은 처음'이라고 했답니다.

생각보다 방이 작아 보인 것도 벽 두께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살면서 벽을 숟가락으로 조금씩 갉아내야겠다'라고 했을 때 모두 박장대소했습니다. 각자의 개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다 보니 효율성은 떨어지고 그만큼씩 입주자들은 손해 아닌 손해를 입은 셈입니다.

공동주택이 입주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고 이웃과 소통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것은 모두 반겼습니다. 설계에서부터 마감재 선택까지 모여 살 사람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취합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으니까요. 설계하는 동안 수차례 입주자 모임을 열고 의견을 취합하고 설계 수정 모임도 수차례 했습니다. 터파기 공사 고사, 상량식 고사도 참석해야 했습니다.

여름과 겨울 방학에는 1박2일로 입주자 나들이도 다녀왔지요. 공동주택이 지어지기까지 모든 과정에 입주자들이 참여하는 방식이니 소통의 기회는 참 많았습니다. 그런 모임이 대부분 평일 저녁에 이뤄지다 보니 피곤한 남편들은 심드렁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또 모여? 그냥 알아서 하면 안 되나?' '사사건건 다 의견 들어야 해? 개략적인 것만 합의하면 되는 거지.'

소통은 지속적인 관심을 갖지 않으면 이어지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내 의견이 꼭 반영되기를 바라지만 피곤한 어느 순간은 외면하고 싶어지곤 했습니다. 내 관심사가 아닌 것은 더욱더 귀찮게 생각되더군요. 내 집 내부를 어떻게 만들지는 늘 챙기는 것이지만 공동의 공간, 이를테면 옥상이나 2층 공용 공간, 1층 공간은 관심에서 멀어지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러다가도 그 공간이 내가 쓰는 곳이라는 생각에 미치면 또 눈을 빛내며 힘주어 말하게 되고요. 개인의 영역과 공적인 영역이 공존하는 공동주택에서 개인의 관심사와 욕구, 공공의 선을 위한 배려가 적절히 어울리는 모양새를 찾아가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닌 게 분명합니다.

공동주택 생활의 백미는 엄마들의 저녁 만찬

소통하려는 의지도 필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했습니다.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교환을 했는데도 나중에 알고 보니 서로 다른 말로 이해하고 있었던 경우가 더러 생겼습니다. 공사 시작 전에 건설 실무자가 집집마다 방문해서 갖고 있는 가구의 크기를 세밀히 조사하고 짓는 집에 어떤 방향으로 배치할 것인가까지 꼼꼼히 알아갔습니다.

그 세밀함에 감탄을 연발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골조가 올라가고 내장재가 들어간 후 실측을 해보니 가구보다 작아 가구를 쓸 수 없게 된 경우가 생겼습니다. 충분히 소통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에서 틈이 생겼는지 그런 경우가 생겨 마음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또 최대한 수납공간을 확보해달 라는 입주자들의 요구가 많아 욕실장을 최대한 넓게 짰더니 세면대 사용이 어정쩡해지고 말았습니다.

개인의 욕구가 사용 자체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다면 그런 수납 욕심은 부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입주 후 집집마다 욕실장을 바꾸거나 옮겨 다는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개인의 욕구가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지 경계를 분명하게 긋지 않아 생기는 소통의 오류는 앞으로 살면서도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라고 봅니다.

절반 정도 입주가 이뤄졌을 때 5층 복도에서는 소행주 벼룩시장이 열렸습니다. 쓰지 않는 멀쩡한 물건을 갖고 나와 필요한 집에서 가져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건을 정리해야 할 절박함에서 벌인 행사이긴 했지만 덕분에 아이들 옷 몇 가지를 공짜로 얻었습니다. 아이들도 맘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냉큼 챙겼습니다. 우리 막내가 타던 실내자동차는 아랫집 4살 동생한테 갔습니다. 우리 큰아이는 앞집 언니가 입던 반짝이 트레이닝복을 입게 되었습니다. 선택받지 못한 물품들은 5월 말에 열리는 성미산마을축제 아나바다 장터에 내놓기로 했구요. 너도나도 기분 좋아지는 반짝 잔치였습니다.

입주가 시작되면서 남편이 늦는 가족들은 모여서 자연스럽게 밥을 같이 먹습니다. 주로 아이들이 어린 입주자들이 모이는데 집에서 반찬 한 가지씩 들고 오면 식탁도 풍성해지고 아이들도 즐겁습니다. 바쁜 남편 보채지 않고 엄마들끼리 같이 저녁 먹으려고 공동주택에 입주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엄마들의 저녁 만찬은 공동주택의 백미 중 하나입니다.

다만 아이들이 많다 보니 식사 시간이 너무 소란스러운 데다가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아이들이 잠들 시간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몇 번 시행착오 끝에 맺고 끊는 시간을 정해야 한다는 것을 서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벌어지는 잔치는 더 이상 즐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주말이 되면 아이들의 잔치는 더 소란해졌는데 아이들의 소란함이 피곤한 아빠들은 '사생활이 없다'고 볼멘소리를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이집 저집으로 몰려다니는 식의 놀이를 하는 아이들 때문에 현관문을 닫을 수가 없고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마음 놓고 쉬기가 어려웠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우리 집 큰아이와 윗집 중학생 딸도 꼬맹이들의 동분서주가 피곤한 기색입니다. 입주가 완료되면 입주민들이 모두 모여 아이들 노는 방식에 대해 서로 원하는 것을 충분히 얘기하고 원칙을 정해야 할 듯합니다. 집은 엄연히 휴식공간이기도 하니까요.

공동주택 입주에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닌 용기와 진심

지역 예술가들의 도움으로 '소행주'에 그린 따뜻한 벽화
 지역 예술가들의 도움으로 '소행주'에 그린 따뜻한 벽화
ⓒ 한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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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 즈음 우리 집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남편이 실직한 것입니다. 변고라고 할 만하지요. 공동주택 입주를 망설이게 한 가장 큰 이유였던 '만에 하나 남편이 실직하는 경우'가 생긴 것입니다. 남편의 일이 청룡열차 곡예 같은 경우가 많아 미리 예상은 했지만 입주를 코앞에 두고 그런 일이 벌어지니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입주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앞에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도 공동주택 접자는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누구보다 현실적인 사람인데, 부부라서 근거 없는 낙관성을 조금씩 닮아가나 봅니다. 하지만 막상 대출 상담을 받고 월 단위로 지불해야 할 이자 액수를 확인했을 때 우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집 살 때 누구나 내는 것인데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법무사한테 줘야 할 돈과 은행 수수료가 아까워 배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남편은 실직한 지 한 달 보름 만에 재취업 했습니다. 또 한번 청룡열차의 어지러움을 선사한 것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무심한 척했지만 새집에서 몇 달 못 살고 나가게 되는 건가 싶어 밤잠을 설쳤으니까요.

공동주택이 중산층의 한가한 실험이라고 단정 짓는 분들이 주위에 있습니다. 우리 집은 입주금의 절반을 대출하고 옆집도 아랫집도 대출이 적지 않습니다. 앞집은 생활비는 월급으로 충당하고 대출이자는 강연 등 부수입으로 감당한다고 합니다. 우리 집 상황은 다소 어수선하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고 나중 일은 나중에 걱정하려고 합니다. 복층을 지어 올린 아랫집은 '이자 내다가 못 견디면 그때 팔지 뭐'라고 합니다. 아무튼 배짱이 두둑하다고 해야 할지, 무개념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는 그런 분들이 소행주에 가득합니다.

너도나도 그러니 서로 얼굴 보며 웃을 수도 있습니다. 계약금은 물론 잔금까지 다 빚이라는 입주자는 공동주택을 망설이는 분들이 자신을 보며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용기를 얻기 바란다고 합니다. 어쩌면 소행주같은 공동주택에 입주하는 데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한번 해보자는 용기와 마음을 열겠다는 진심이 더 중요할지 모릅니다.

어느 정도 집 정리가 되고 하루하루 지나면서 우리 집이 어떤 집보다도 마음에 듭니다. 넓지도 않고 특별할 것도 없지만 우리 가족의 아늑한 둥지입니다. 넓은 집을 욕심 내기보다 포용할 수 있는 집을 꿈꾸면서 우리 집 이름을 '너른 둥지'로 지었습니다. 우편물함에도 503호가 아닌 '너른 둥지'라는 이름을 붙일 작정입니다. 주소에도 쓰고요. 다른 집들도 저마다 이름 짓느라 바쁩니다. 삭막한 호수를 현관문에 붙이지 않고 사는 사람들 개성대로 문패 짓는 일도 참 재미나는 일입니다.

이사한 다음날 우리 가족은 성미산에 올라 나무를 심었습니다. 마침 성미산 가족나무심기 행사가 열려 성미산마을에 신고식을 하는 셈치고 정성스레 나무를 심었습니다. 땅을 잘못 골랐는지 쉽사리 구멍이 파지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아이들은 땀 흘리며 구덩이를 파고 물을 주고 흙을 밟아주었습니다. 보도블록 위에서 가끔 마주치는 지렁이를 그렇게도 징그러워하던 아이들이 구덩이를 파다가 나온 지렁이가 삽에 다칠까 걱정하였습니다. 벌써 아이들은 이 마을에 적응한 듯합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은 성미산 바로 아래 있어 매일 오전에 성미산으로 바깥놀이를 다닙니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우리 집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지 꼭 확인하고 엄마에게 보고합니다. 비바람 몰아치던 밤 언덕배기에 심은 우리 나무가 쓰러지진 않았을까 걱정하던 아이들이 어느 날 산에 올라가 보고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우리 나무에 파란 잎사귀가 나왔답니다. 그날 같이 심었던 다른 집 나무에는 꽃이 피기도 했답니다. 공동주택은 성미산 마을이 있고 성미산이 있기에 더 풍요로워질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태그:#소행주, #공동주택, #소통, #성미산마을, #너른둥지, #코하우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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